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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그리고 헨리 8세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10-02 00:00

저희 집에서 요즘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는 <선덕여왕>입니다. 최근 몇 년동안 대한민국 사극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으니 그 것은 그 시대배경이 조선과 고려를 넘어 삼국시대까지 넓혀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이전의 사극은 대체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물론 드라마로 만들 만한 소재가 풍부했기 때문이고, 그 소재가 풍부한 까닭은 물론 기록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물은 드라마 작가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인가부터 사극의 시대배경이 신라와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러고 보면 백제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오래 될수록 자료가 부족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역사적 사실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핵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역사책에 서너줄 적힌 것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니 그렇습니다.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을 고증하여 되독 사실에 가깝게 만드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다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전혀 현실성도 없고 그저 우연 투성이인 이야기 전개, 복고풍 대사와 현대판 조폭영화 풍의 대사의 뒤죽박죽, 늘 착하고 언제나 대의만을 생각하는 주인공과 일분일초도 나쁜 마음을 내려놓을 줄 모르는 악역,  게다가 벌건 대낮에 싸우다 칼 한번 더 부딛히고 나니 밤이 되어버리는 보는 사람을 우습게 아는 몰염치한 촬영, 편집에까지 이르면 그래도 방송 해본 사람으로서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좋지 못한 소리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나면 물론 같이 보던 아이들과 집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그냥 보세요, 뭘 그리 따지십니까?”

서양 사람들도 물론 사극을 만듭니다. 서양 사극은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주로 영국이나 프랑스 이야기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극의 소재가 되었던 왕이 바로 영국의 헨리 8세입니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왕입니다. 캐나다의 CBC방송을 포함한 몇 나라의 제작사가 모여 그 헨리 8세의 이야기를 다시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그 것이 바로 지난 주부터 CBC에서 방송하기 시작한(물론 캐나다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방송이 끝났다지요) <The Tudors>입니다. 이번이 시즌 3입니다. 내년에 방송될 네번째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라는군요.

이 <The Tudors>라는 드라마가 <선덕여왕>이나 기타 우리나라 사극보다 얼마나 훌륭하게 만든 드라마인지 이야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사실 일대일로 견준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단 돈의 규모가 다릅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한 쪽 편에는 활과 화살을 주고 다른 한 편은 탱크로 중무장한 군대와 싸우는 격입니다. 애당초 비교의 대상이 안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서글픈 일이기는 합니다만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여야합니다.

하지만 돈문제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충분히 쓸 수 없는 건 알겠지만 꼭 그래야겠냐고 묻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제작기간입니다. 한마디로 오늘 찍고 내일 편집해서 모래 방송하는 식입니다. 뭘 제대로 해보고 말고 할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드라마가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계획이 없는 것이지요. 또 설령 언제 끝내리라는 계획이 있다손치더라도 시청율이 올라가고 광고가 많이 붙으면 엿가락 늘어지듯 슬슬 늘어가기 일수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서양친구들이 만드는, 아니 비단 서양친구들 뿐 아니라 뭔가 제대로 방송하는 나라에서 만드는 드라마는 적어도 방송 반년 전에는 촬영이 끝납니다. 그리고 촬영 반년 전에는 대본이 나옵니다. 사실 이 대목이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것을 전작드라마라고 합니다. 미리 다 만들고 방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도 늘 그래야한다고 말하고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만든 드라마도 몇 편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러지 못합니다. 그 까닭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합니다.

그 까닭을 살펴보기보다 우리가 좋은 드라마를 많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드라마를 가려 보는 일 것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가려 보려면 무엇이 좋은 드라마인지 가려내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음 주에 <The Tudor>를 한번 보시지요. 그리고 제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뭐든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집니다.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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