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다큐멘터리를 위하여(1)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8-22 00:00

아주 오랫만에 방송국 다니는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무언가 부탁할 일이 생긴게지요. 정말이지 가뭄에 콩나듯이 방송국 후배들에게 국제전화가 오는데 십중 팔구가 아니라 십중 십이 다 무언가 부탁하려는 전화입니다. 그러나 그나마 부탁전화라도 반갑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아직 내게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신기합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번 부탁은, 뭐 거의 대부분 같은 부탁이지만, 캐나다에 촬영을 오니 이것저것 좀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뭐 제가 특별히 도와줄 것이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번 촬영은 좀 특이합니다. 저 북극에 가서 한달 동안 배를 타고 촬영을 한답니다. 아시겠지만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아서 전에는 배가 다닐 수 없었던 곳에 배가 다닐만한 길이 생겼습니다. 그 길을 캐나다에 있는 무슨 연구소가 배를 띄워 이것저것 조사를 하는데 같이 가서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 꼼짝없이 한달을 배에서 촬영을 해야할 판이라고 투덜대더군요.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그 것이 새로운 소식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때로 그저 새소식으로 전하기는 너무 크고 깊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전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입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상 일은 여러분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저 눈과 귀 보다는 마음으로, 가슴으로 혹은 머리로 보아야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뱃길이 생기니 많은 사람이 걱정을 하고, 또 한 편에서는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쁩니다. 표정관리하느라고 힘든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는 또 한 편에서는 그 일을 세상에 알리려고 지구 반바퀴를 날아와 한 달 배멀미을 참습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는 일은 내 문제도 네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은 다 압니다. 다만 아직 실감이 안 날 뿐이지요. 제 후배가 촬영을 해가서 편집을 하고 방송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실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다큐멘타리입니다. 몇몇만 아는 채로 스쳐지나갈 뻔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만방에 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뭐 꼭 문제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 중요한 이야기들이 대체로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러고보면 세상이라는 것자체가 그리 즐거운 곳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너무 심각한 다큐멘터리는 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때로 너무 슬프고, 때로 너무 화가 납니다. 한 마디로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 한 몸 추스리기도 벅찬데 세상 돌아가는 것까지 내가 어찌 신경을 쓰겠는가 생각도 들고, 또 어느덧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오락프로그램을 자주 봅니다. 다큐멘터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지요. 내일 지구가 두 쪽이 나도 즐겁기만 할 것 같은 친구들이 나와 웃고 떠들고 신나게 놉니다. 그러면 나는 그 노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같이 놀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때로 그저 바보로 세상을 사는 것이 편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과 멀어지면 아마 다시는 방송국 다니는 후배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겠지요.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