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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예술, 영화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12 00:00

지금 누군가 저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꿈이라 하면 무언가 이루려고 애쓰는 희망이라는 뜻도 있고, 아니면 이루지 못할 망상 같은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의 꿈은 첫 째 뜻이었다가 이제는 두 번 째 뜻으로 기운 듯합니다.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모두들 저보다 젊은 친구들이니, 그들에게는 아직 그 꿈이라는 것이 망상이 아니라 희망 쪽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 마흔이 다되도록 결혼 할 생각도 없이, 일정한 직업도 없이, 그저 영화 만들고자 하는 꿈 하나로 매진하는 사람을 여럿 압니다. 그 정성으로 고시 공부를 했으면 아마도 셋 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붙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척 걱정되면서 한편으로는 몹시 부럽기도 합니다.

영화란 모든 예술 장르가 함께 합쳐진 이른바 종합예술인 동시에, 첨단과학의 실현이고 또한 그 전망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는 돈을 빨아먹는 공룡입니다. 재수가 좋으면 빨아먹은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뱉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수가 좋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화는 꿈의 실현이자 큰 돈이 들어가는 커다란 투자입니다. 그 돈의 규모는 간난아기 자라듯 쑥쑥 자라서 이제는 몇 십억 원 가지고는 축에도 끼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물론 적은 돈으로 만드는 영화도 있습니다. 몇 억, 혹은 몇 천만 원으로 만드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런 영화를 우리는 흔히 독립영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극장 주인이 틀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영화가 상영할 극장을 찾지 못해 세상에 선도 보이지 못하고 질식해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는 어떻게 어떻게 만들었는데 막상 극장에서 틀어주지 않은 겁니다.

영화관에서 여러분이 내는 돈은 대체로 극장 주인과 영화를 만든 사람이 반반씩 나누어 갖습니다. 그러니까 극장 주인은 되도록 손님이 많이 올만한 영화만 골라서 틉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틉니다.

영화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은 유명한 배우를 잡는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장동건>에게 출연 약속을 받는다면 그 다음은 아무 것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돈은 저절로 모입니다. 사람도 저절로 모입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저 <장동건>이 혹시나 변심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일 뿐입니다. (혹시 <장동건>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저 좀 소개시켜 주십시오. 아니면 <박신양>이나 <설경구>도 좋지요)

영화는 감독이나 제작자 뿐이 아니라 배우에게도 꿈의 무대입니다. 지금 로스앤젤레스에 가셔서, 그럴 듯한 식당에 들어가시면 거기서 밥 나르는 사람 중 반은 배우, 아니면 가수 지망생입니다. 뉴욕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기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들의 고생담은 늘 눈물겹습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황정민>이 한 때 차비가 없어서 서울시내 절반을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유명한 <스필버그>가 차린 영화회사의 이름이 <드림웍스(dream works)>입니다. 아마 이 양반도 저와 같은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꿈을 이룬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경규>와 <서세원> 그리고 <심형래>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셋 다 현직, 혹은 전직 희극배우들이군요. 꿈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전 이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 꿈의 결과물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처참한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새삼 이런 명언이 떠오릅니다.

<영화는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하튼 영화는 꿈입니다. 그래서 동시에 후회이고, 아픔이고, 미련이고, 절망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유명한 가수였던 박중훈이 시골에서 조그마한 음악회를 엽니다. 물론 한물간 상태에서 말이지요. 박중훈의 매니저인 안성기가 박중훈에게 묻습니다.

<왜 너도 한 곡 하지 그래?>

박중훈이 대답합니다

<싫어, 다시 노래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마침내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지만, 세상에는 그 꿈을 쫓다가 망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약삭빠르게 저버렸다가 나머지 삶을 아쉬움 속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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