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Blues를 기반으로 둔 연주자 #7-1: Herbie Hancock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5-30 00:00

이번주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둔 연주자 Herbie Hancock를 소개한다.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재즈를 종종 듣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정도로 재즈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재즈피아니스트 중 Keith Jarrett, Kenny Barron, McCoy Tyner등과 함께 가장 영향력있는 연주자가 아닌가 싶다. 그는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연주 역시 화려하고 스타성이 뚜렷한 연주자이다.  지난 60년대 Miles Davis와 함께 할 당시 부터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연주와 음악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실험적이었으며 음반을 낼때마다 늘 기대가 되는 그런 연주자이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둔 재즈피아니스트 Herbie Hancock은 인생의 한 번 받기도 힘들다는 그래미상을 수차례나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의 프로필을 보자. 그는 1940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역시 블루스 도시 시카고출신이라 어려서부터 블루스음악에 큰 영향을 받고 자란다. 만 7세가 되던 무렵 그는 처음 피아노를 통해 음악을 접하게 된다. 워낙 음악적 재능이 있던 Herbie Hancock은 어린나이지만 음악적으로 무섭게 성장한다. 그리고 만 11세가 되던해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협연을 하는 영광을 누린다. 이 큰 경험을 통해 그는 음악적으로 큰 자신감과 포부를 가지게 된다. 또 그는 이른바 신동이라는 소리를 여기 저기서 듣기 시작한다.

Grinnell College 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그는 곧바로 재즈의 메카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리고 그 곳에서 Donald Byrd와 함께 연주활동을 한다. 뉴욕에서 그의 음악적 재능과 실력이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 메이저 음반사 Blue Note에서 음반제작제의를 받는다. 이런 과정으로 통해 그는 자신의 첫 데뷔음반 Taking Off를 1962년에 발매한다. 지금 음반의 의미와 상징은 다소 많이 위축됐지만 60년대 당시 메이저 음반사의 이런 적극적인 대우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이정도 대우는 곧 스타가 될 만한 재목으로 확신을 했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그 음반사의 예측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1963년 그는 영원한 재즈대부라고 하는 Miles Davis Quintet의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이 것은 재미있는 표현으로 지역구도 전국구도 아닌 세계구를 뜻한다. 다시 이야기하면 전 세계 모든 재즈팬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된다. 23세 비교적 어린나이에 Miles Davis밴드에 들어간 그는 당시 최고라고 하는 또 일반 재즈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Ron Carter, Freddie Hubbard, Wayne Shorter 그리고 Tony Williams와 함께 연주한다.

Miles Davis와 함께 한 약 5년의 시간은 그에게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계기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크게 진보할 수 있는 계기였다. 60년대 초 이른바 Modal Jazz라 하는 조(Key)의 해석이 자유로운 음악을 선호했던 Miles Davis의 영향을 받아 Herbie Hancock역시 이후 Modal Jazz에 크게 심취한다. 우리가 잘 아는 그의 음반 Maiden Voyage, Cantaloupe Island 등 그의 많은 곡들이 이런 다양한 조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음악은 70년대 80년대에도 계속 된다.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은 Herbie Hancock이 펑크(Funk)연주자로 알고 있는 사람도 몇 몇 있다. 그는 70년대를 펑크음악과 함께 한다. Head Hunters, Thurst, Sextant, 그리고 Flood 등 많은 펑크음반을 통해 음악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70년대를 그는 장식한다.  James Brown, Parliament, EWF등 펑크음악의 주류들과 함께 그는 펑크가 무엇인지 당시 많은 팬들에게 보여줬다. 80년대는 모든 연주자들이 그랬듯 뮤직비디오의 큰 영향으로 그 역시 음악과 함께 영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접근을 많이 시도한다. 그리고 화려한 연주와 스타성을 다소 중요시 하는 그에게 영상작업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전해진다.

90년대와 2000년대 역시 그는 쉬지 않고 많은 활동을 한다. 한때는 New Standard라고 하는 음반을 통해 여러 유명한 팝음악을 재즈로 편곡해 선보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John Mayer와 같은 유명팝스타와도 함께 작업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