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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경쟁과 과대 포장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8-04-21 00:00

토론토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지난 달에 만났다. Runnymede 역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이런 저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한 가지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경력에 대한 것이다. 친구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다지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다고 내게 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사실 그렇다. 많은 연주자의 프로필을 보면 주눅이 들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적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보면서 “정말 사실일까?” 또는 “왜 그다지 필요 없는 것까지 적어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필자는 그다지 내세울 경력이 없다고 말한 그 친구의 경우가 아주 정상적이라 생각한다. 이번 주는 경력 경쟁과 과대 포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경력 경쟁과 과대 포장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불행하게도 연주자들이 최종적으로 생계할 수 있는 방법은 작품활동이 아니라 과외나 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일이다. 필자 역시 일주일에 30시간 넘게 학교에서, 또 개인레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실력도 무척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력이라는 것을 나는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배울 수 있었다. 또, 독주회나 어디서 연주를 위한 일을 할 때도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어디 학교를 나왔고 또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연주를 아무리 잘 해도 조금 미진한 독주회가 되는 경우가 있고 어디서도 불러주지 않는다. 재즈클럽 사장이 이왕이면 경력이 조금 화려하게 보이는 연주자를 찾는 것은 사업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경력이 필요한 환경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친 경력 경쟁과 과대 포장이다. 작년에 신정아씨 사건이 있었다. 조금 심하긴 했지만 사실 내겐 그다지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 예술문화계의 이런 과대포장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어떤 선배가 과대 포장도 아닌, 있지도 않았던 일을 거짓으로 자신의 웹사이트에 기재한 것을 보고 씁쓸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대학입시를 위한 고등학교 수료과정 칼리지를 다닌 것을 마치 캐나다 명문대를 나온 것처럼 포장해 현재 한국 내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런 거짓과 과대 포장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 연주자들의 프로필을 보아도 적혀있는 것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토론토에 있는 친구처럼 잘 모르는 경우는 늘 주눅이 들 수밖에 없고 나는 유학을 하면서 무엇을 했나 하는 자멸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경력 포장은 우리의 경우만은 아닌 것 같다. 토론토에서 이제 보스턴으로 가보자. 나의 은사 존 윌킨스(John Wilkins) 교수와 이런 저런 음악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이야기 중 하나도 요즘 지나친 경력 과대 포장이었다. 대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든지 아니면 잡(job)을 찾을 때 해당교수에게 추천서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수입장에서는 제자가 잘 되는 것을 원하기에 조금 과장되게 추천서를 써주는 것은 아주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추천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홈페이지 등 공개적인 자리에 악용되고 있다고 윌킨스 교수는 이야기한다. 교수가 추천서를 쓴 목적과 달리 앞뒤 다 삭제되고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 자신의 홈페이지에 써버리는 요즘 분위기에 윌킨스 교수는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또, 수석졸업이라는 말이 음악계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데, 어느 누가 수석을 했는지 학교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혹시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로 학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것을 수석졸업이라고 한다면 필자 역시 졸업 당시 재즈 빅밴드 제 1 기타리스트였기에 수석졸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수석졸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역시 과대포장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특정 학력을 요구하고 또 어느 정도 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또, 음악으로 생계를 한다는 것이 여간 쉬운 것이 아니라 경력경쟁도 심한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과대 포장을 하는 것은 물론 거짓 경력이 난무하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나 싶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정작 연주자들이 해야 할 일인 음악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이 상 준
intothejazz@paran.com
blog.paran.com/intothejazz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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