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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간의 갈등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8-03-28 00:00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갈등이라는 것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 세대간의 갈등, 인종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그리고 이성간의 갈등 등 정말 아주 많은 갈등들이 있다. 음악 안에도 아주 여러 갈등이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장르간의 갈등이다. 예전에도 칼럼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재즈와 클래식간의 갈등, 락과 팝음악간의 갈등 등 장르가 장르를 만나면 늘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물며 같은 장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스타일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아마도 갈등을 즐기는 것 같다. 음악은 이른바 떨림화음(dominant)과 으뜸화음(tonic)이 균형과 불균형을 이루면서 만들어진다. 다시 이야기하면, 갈등과 해결이라는 긴장과 완화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장르간의 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늘은 완화라는 해결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먼저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간의 다른 시각과 다른 반응에서 시작된다. 한가지 예를 들면 필자는 예전에 한참 락 음악을 할 때 클래식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락이라는 음악자체가 정열적인 무대를 전제로 시작되고, 또 사회에 대한 거친 저항을 가진 것이라면 클래식 음악은 정열보다는 고상하고 사회에 대한 저항보다는 오히려 친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락은 창작을 기반으로 시작하지만 유럽의 고전음악은 말 그대로 고전음악을 다시 재해석하기에 갈등은 늘 생긴다. 락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의 시각은 또 다르다. 락의 거친 소리가 좋지가 않다. 클래식 악기와 연주의 내공은 어느 장르의 음악도 흉내 낼 수가 없다. 클래식 매니아들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악기나 오디오를 구입하는 이유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들은 락의 거친 소리가 천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재즈도 팝이나 락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큰 공격을 받는다. 대부분의 재즈 연주자들은 정통재즈 곡들을 많이 연주한다. 필자 역시 무대에서 주로 하는 곡들은 대부분 재즈 팬이라면 다 아는 노래위주로 한다. 정열적인 음악과 창작을 밑바탕에 두고 하는 팝이나 락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창작은 하지 않으면서 사회에서는 클래식 음악보다 더 많은 프리미엄을 가져가는 재즈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재즈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이런 주장들이 소위 아주 가소롭다. 창작을 미리 만들어 놓고 준비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 재즈 연주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한다. 또, 이런 창작은 그날의 컨디션, 날씨, 관객 반응에 따라 아주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그런 즉흥적인 창작을 위해 평소에 많은 연습과 생각을 한다. 창작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별 대응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이 사실이고 반대로 미리 준비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음악이 재즈연주자에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마지막으로 일반 가요나 댄스 같은 팝음악의 시각에서 보자. 그들이 봤을 때 이른바 아티스트라고 하는 연주자들은 그저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어울려 다같이 흥겹게 노래하고 노는 것인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철저히 1인칭이 지배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과연 음악을 제대로 하는 것인가 하는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크게 있어 보인다. 또, 맨날 돈 없고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며 환경 탓만 하는 아티스트들이 한심하게 보일 때가 많다. 필자도 가끔은 가요나 팝음악이 참 좋을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에 자극을 안 받는다는 것을 솔직히 거짓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인스턴트 식품처럼 수명이 짧은 팝 음악을 한다는 것은 아티스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공부도 많이 못 했고 깊이도 없는 그런 음악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저 싫을 뿐이다.

필자가 지난 10년 넘게 음악을 하면서 나름대로 경험한 갈등을 적어봤다. 역시 갈등은 차이에서 생긴다. 우리의 갈등이 다른 민족보다 더 깊은 이유는 늘 모든 것을 세로로 세워 순위를 정하려는 의식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단일민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통일성을 강조하는 민족이라 더 하다. 그러나, 세상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뜻한 것과 달리 반대로 가고 있다. 이른바 ‘해체주의’ 그러니까 경계를 무너트리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이미 자리잡은 지 오래고 남을 인정하고 받아드리지 않는 자는 발전보다는 후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세기 이후 전세계를 제패한 징기스칸은 다른 문명, 문화와 교통하지 않은 민족일수록 더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장르간에 생기는 갈등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것이지만,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매력을 조금 더 보면 갈등이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 차이를 좁히려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요즘 세상에는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 상 준
intothejazz@paran.com
blog.paran.com/intothejazz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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