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시스템과 관리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8-03-03 00:00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정명훈씨가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바니’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라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지만, 느낌상 굉장한 무대였고 관객들의 표정을 통해 장소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역시 세계 톱 클래스 지휘자답게 멋진 음악을 선사했다. 음악에 무게가 있었고 어떤 연주자라도 정명훈씨의 지휘아래서는 좋은 연주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그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정말 그를 세계적인 지휘자로 만들었나? 그가 지나온 과거를 보자. 물론 어릴 적부터 음악에 큰 재능을 보였고 한국적인 가정교육 밑에서 자라왔지만, 일찍 미국 시애틀로 이주해 어려서부터 미국식 음악교육을 받았다. 뉴욕의 매네스(Mannes)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해서 완전히 미국식으로 훈련 받은 지휘자이다. 또, 그는 모든 음악커리어를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 유럽에서 쌓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그를 낳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예로 사라 장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를 보자. 장영주 역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자라고 하는데, 우리가 혈육적인 것 외 과연 어떻게 그녀를 낳았나? 그 역시 어려서부터 미국 음악교육시스템 밑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훈련 받은 연주자이다. 과연 그녀가 한국의 음악 교육시스템에서 자랐더라도 그런 연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예술문화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한복을 보자. 일본의 기모노와 중국의 치파오, 베트남의 아오자이와 비교해 색감은 물론 선과 디자인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흑인음악의 블루스와 재즈처럼 ‘시나위’라 하는 창의적인 즉흥연주가 우리 고전음악에 존재했다. 그리고, 우리음악은 다른 음악과 달리 선이 매우 굵어서 굉장히 신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로 축구를 응원할 때 나오는 우리 응원가를 들으면 우리의 정서와 음악적인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동과 서를 떠나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재능만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시스템 안에서 관리되고 길러져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재능은 있지만, 이런 제도와 관리시스템이 없다. 왜 우리는 늘 가꾸고 키우는 일에 인색한 것일까? 아직도 가난하기에 그럴 여유가 없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하자. 가꾸고 길러내는 노력은 전혀 없는데 남의 나라의 좋은 시스템에서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낳은 XXX 연주자’라는 구호가 너무 창피하지 않는가?

잠시 미국으로 눈을 다시 돌리자. 모든 문화예술의 중심지라 하는 그쪽 동네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시스템과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필자 역시 그 쪽에서 중요한 공부와 경험을 쌓았기에 그 시스템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캐나다 역시 초등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괜찮은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인 철학부터 교육론, 방법론 등등 아직 따라가기에는 더 많은 학계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의 음악교육협의회(MENC)를 보면 놀랄 만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매달 MENC로부터 학계의 움직임과 연구내용들을 책자로 받아보는데 미국 내 많은 학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인프라 역시 좋다. 어려서부터 공연이란 중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더 나아가 많은 음악 청취자들과 거대한 시장이 있기에 지치지 않고 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 좋은 음악가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발전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인구 5000만의 한국과 4000만이 안 되는 캐나다가 미국같이 거대한 나라의 시스템과 관리체계를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무엇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키우려는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에 갑작스레 생기는 것은 없다. “저 사람은 천재야” 라는 말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 아마도 우리일 것이다. 이것은 나도 저렇게 그냥 천재였으면 하는 ‘로또심리’와는 반대로,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못한다는 아주 도움이 안 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정명훈 지휘자나 장영주 등 여러 훌륭한 우리 음악인들을 볼 때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가 정말 낳았는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앞으로 정말 우리가 낳은 훌륭한 연주자가 많이 나오려면 다시 처음 기초공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상 준
intothejazz@paran.com
blog.paran.com/intothejazz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