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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화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8-01-11 00:00

지금 토론토 피어슨 공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중이다. 친절한 승무원이 여러 신문을 내게 권했다. 내셔널 포스트를 즐겨 읽지 않는 필자이지만 오늘은 왠지 이 신문을 읽고 싶었다. 습관적으로 꼼꼼하게 모든 기사를 읽는 나는 신문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면 꼭 스크랩을 한다. 이 신문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신문이지만, 흥미있는 기사가 있어 독자들에게 이번 주 칼럼을 통해 소개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노트북을 꺼내 든다. “There is a Culture of Recording the Moment”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떤 구체적인 경험보다는 그 순간순간을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이미지화 시켜 저장하는 최근 문화적 변화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이다.

이 기사에는 토론토 대학 리스 제프리 박사의 디지털기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제프리 박사의 말대로 실제로 음악 공연장 또는 MTV 라이브 현장을 보면 연주 동안 대부분의 관객들이 음악을 감상하기보다는 핸드폰 또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분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공연 후 자신의 홈피(싸이월드 또는 페이스북)에 음악과 상관없이 자신이 그 순간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긴 채 곧바로 포스팅된다. 그리고, 많은 온라인 방문객들은 이 순간을 시각적으로 감상만 할 뿐 청각적으로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알 수 없고 실제로 관심도 없는 듯하다. 또, 최근 음식사진을 온라인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미지만 있을 뿐 음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프리 교수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기록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기록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문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일반화되면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혁명적인 시대를 열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최근 밴쿠버 공항에서 폴란드계 이민자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어이없게 사망한 것을 전세계인들이 알 수 있었고 미얀마사태 때 일본인 사진기자가 총격으로 숨지는 실제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학교 내 교사의 폭력 등 각종 범죄 또는 사회부조리 등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이제는 찾기가 마땅치 않다. 한때 부정부패가 심했던 90년대와 달리 인터넷과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우리가 이제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만 봐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기능을 아날로그 맹신론자들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첨단기술이 가져온 또 하나의 특징을 이야기하자. 디지털문화는 우리에게 활자와 이미지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것이 사각형의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는 것으로 시작되어 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텍스트는 예전처럼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내용의 메시지를 핸드폰으로 보낼 때도 필요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디지털문화가 발달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배우기 싶고 사용하기도 쉬운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예전엔 관심도 없었던 사진을 필자가 몇 년 전부터 취미생활로 시작한 것도 이미지가 우리생활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대학에서는 이른바 ‘시각 사회학(Visual Sociology)’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필자도 사회학을 전공하는 후배로부터 소개를 받아 ‘시각 사회학’을 청강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시각적인 요소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효과는 엄청난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날로그 음악교육을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음악은 듣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 음악을 들음과 동시에 그림으로 느낌을 표현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청각적인 감성과 시각적인 감성은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따라서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관람할 때 시각적으로 음악을 지각(Perception)하는 것과 청각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관객이 이런 구분을 확실히 해주지 못하면 인류의 음악은 아마도 정체되고 모든 음악인들이 오직 시각적인 표현에만 매달릴 것이다. 필자 역시 연주를 할 때 미장원에서 머리를 만지고 깔끔한 옷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디자인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미리 연습하는 철저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연주 후 내게 남는 것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한다는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듣는 이들이 시각적인 것에 속지 말고 철저히 평가해야  나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이 발전할 수 있다.

첨단기술을 무조건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누구보다 더 이런 첨단기술을 즐기는 편이다. 다만, 우리가 변화된 환경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간과해서는 안 될 부정적인 효과를 구분해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배제해야 첨단기술을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디지털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이제 많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이제는 좀더 성숙한 자세로 디지털문화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상 준
intothejazz@paran.com
blog.paran.com/intothejazz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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