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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로 듣는 음악의 맛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8-01-07 00:00

필자는 LP로 음악을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오디오 앰프의 전원을 켜고 이상한 접시처럼 생긴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그 순간은 음악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하게 만든다. CD가 대중화 된지 벌써 20년이 지났고 MP3가 나온 지 10년이 되는 2008년에 아직도 LP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구닥다리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편으로 무척 진보하고 세상을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고리타분한 부분도 많이 있다. CD처럼 듣고 싶은 곡을 간단히 리모컨으로 선택해 들을 수도 없고,  MP3처럼 수많은 곡을 손바닥보다 더 작은 곳에 저장해 들을 수도 없는 아주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LP의 특징들을 오늘 이야기하자.

여전히 LP를 듣는 많은 음악팬들은 디지털 방식의 CD에서 들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따듯한 소리가 LP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그렇다. 필자 역시 LP에서 듣는 소리는 디지털 방식인 CD의 깨끗한 소리나 영화관에서 들을 수 있는 그런 세련된 소리는 아니지만, 아주 따뜻한 인간적인 소리라고 생각한다.  이메일이 아닌 과거 손으로 직접 쓴 편지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필자 개인적으론 전자우편이 생긴 후 우리가 쓰는 글들을 자세히 보면 표현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편지는 과거 마음을 전하는 것에서 사무적인 기능으로 그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컴퓨터 자판기로 나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조금은 매끄럽지 않고 딱딱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와 같이, 음악 역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옮겨가면서 느낌과 표현력이 줄어들고 다소 기계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사실이다. LP를 지금도 즐겨 듣는 사람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비교해 볼 때 부드러움과 풍부한 표현력의 차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LP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음악을 더 감동적으로 듣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데뷔한 디지털 감성이 지배하는 어린 뮤지션의 음반을 굳이 LP로 들을 이유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1940년대 찰리 파커의 연주를 듣는다고 가정하자. 요즘엔 음질 좋은 그의 CD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LP만 존재했던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아날로그로 듣는다면 그 감동이 더 할 것이다.  또, 그 당시 연주자들은 지금처럼 CD를 들었던 세대가 아니라 과거 아날로그식의 감성이 몸에 담겨 있기에 디지털 소리보다는 아날로그로 듣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더 나아가 이왕이면 LP도 그 당시에 발매됐던 것으로 듣는 것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더 신중하게 들을 수 있는 진지함이 생긴다. 많은 음악 매니아들은 CD가 나온 80년대 말부터 음악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나쁜 습관이 우리에게 생겼다며 디지털 방식을 비판하곤 한다. 필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나름대로 매니아라고 자부하고 또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필자 역시 최근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음악을 들은 기억이 없다. MP3가 나온 후 음악은 하나의 예술이 아닌 컴퓨터의 배경음악으로 전락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단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나오는 음악을 분석해 보면 곡의 길이가 크게 줄었으며 클라이맥스가 종종 시작부분부터 터져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듣는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 급격한 변화로 그다지 음맥에 맞지 않는 놀라움과 과도한 효과음을 쓰는 것 역시 최근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컴팩트해지고 화려함만 있을 뿐, 아름다움과 아티스트의 깊은 철학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요즘 디지털 세대의 음악인 것 같다.

최근 음악에 대한 답답함이 있어 창고에 있는 턴테이블과 오디오 앰프를 리빙룸으로 가져와 다시 LP를 듣기 시작했다. 나 역시 편리한 CD와 수 많은 곡을 한 손에 들고 다녔던 버릇이 있어 다시 아날로그 음반을 듣는 것이 무척 어색했다. 그러나 그 불편한 만큼 LP가 주는 따듯한 소리와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시대를 보다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은 것이 내겐 아주 특별하다. 더 나아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음반전체를 소중히 들을 수 있는 진지함을 되찾은 것이 필자는 너무 기쁘다. 2008년 초에 느낀 이런 소중한 느낌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이 상 준
intothejazz@paran.com
blog.paran.com/intothejazz



이상준 음악칼럼
이상준 글쓴이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편곡을 전공했고 캐필라노 음대에서 재즈기타 전공 및 Linda Falls 교수의 이론 및 청음 조교로 일했다.
이후, UBC사범대를 거쳐 현재 재즈기타리스트, 작편곡활동 그리고 South Delta Secondayr School과 English Bluff Elementary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국 뉴저지주 Paul Pope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NYU대학원 함께 뉴욕에서 음악활동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준 | Web: www.jonleemusique.com
  • John Wilkins (Berklee),Randy Johnston (NYU), Jared Burrow
  •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jonleemusique
  • (SFU & Univ of Oregon) 사사
  • 블로그: blog.paran.com/intothe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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