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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진리(四聖諦) (2)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5-11-12 00:00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불교이야기(11)

둘째, 집제(集諦):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 '일어남'(samudaya)의 원인에 대한 진리이다.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목마름'(팔리어 tanha)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갈애'(渴愛)라 번역되는 이 목마름이란 집착, 정욕, 애욕, 욕심, 욕정으로 목마름을 뜻한다.  우리에게 이런 '타는 목마름'이 있기에 우리에게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팔리어 본문에 보면 집착에는 '쾌락'에 대한 집착, '있음'에 대한 집착, '있지 않음'에 대한 집착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를 우리 나름대로 다시 정리하면, 첫째, 감각적 쾌락, 재물, 명예, 권력 등에 집착하는 것, 둘째, 사상이나 견해나 이론이나 관념이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등에 집착하는 것, 셋째,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쾌락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자기의 고정관념에 집착하는 것이고, 더욱 더 크고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런 자기중심적, 이기적 태도 때문에 다른 모든 잡다한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집착이란 결국 절대적인 아닌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돈이나 이성(異性)이나 권력 같이 상대적인 것에 '궁극 관심'(ultimate concern)을 가지고 달라붙는 것이다. 이를 종교적 용어로 바꾸면 '우상 숭배'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살아가는 노예적 삶이다. 

 남양군도나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잡으려 할 때 나무에다 줄을 메고 그 끝에 코코넛 열매를 묶어 놓는다. 코코넛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고 그 속살을 파낸 다음 거기에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땅콩 같은 것을 넣어 둔다. 원숭이가 와서 그 구멍에다 손을 집어넣고 땅콩을 움켜쥔다. 그러면 손이 그 구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원숭이 사냥꾼이 유유히 다가가서 그 원숭이를 잡는다. 어느 면에서 우리는 모두 이 원숭이들이다.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와서 이렇게 천재일우(千載一遇)로 땅콩을 잡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그냥 포기하고 주먹을 편단 말인가. 무지와 욕심에서 오는 이런 집착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노예 신세에 떨어지게 한다.

 셋째, 멸제(滅諦):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음'(nirodha)에 관한 진리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위대한 선언이다.  우리가 지금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이제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선포하는 셈이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이 고해의 세상에서 열반 혹은 니르바나를 얻을 수 있다는 기쁘고 복된 소식이다. ‘니르바나’(nirv??a, 涅槃이라 음역)는 어원적으로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이다. ‘열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처럼 우리가 죽어서 들어가는 무슨 특별한 '장소' 가 아니라 우리 속에 타고 있는 욕심과 정욕의 불길을 '훅'하고 불어서 끈 상태, 그리하여 괴로움 대신에 시원함과 평화스러움과 안온함과 놓임과 트임을 느끼는 상태, 바로 이런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올라 정상에서 그 짐을 벗어놓을 때처럼 홀가분해지는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말하자면, 불교에서 표방하는 지고선(至高善, summum bonum)의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불교든 어느 종교든 이런 지고의 경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음'이라는 표현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가르친다.  마치 물고기에게 마른 땅을 걷는 것에 대해,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모기에게 얼음에 대해, 음치에게 교향곡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들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열반이라는 구경의 경지는 말이나 사변의 대상이 아니라 직관과 체험의 대상이라는 것.  부처님은 우리가 직접 이런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다음에 말하는 넷째 진리다.

 넷째, 도제(道諦): 괴로움을 없애는 '길'(m?rga)을 말하는 진리이다.  이 길의 구체적 내용을 말하는 것이 바로 '팔정도'로서, '여덟 겹의 바른 길'이라는 뜻이다. 이제 그 여덟 가지 구성요소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soft103@hotmail.com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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