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지금 이순간 무엇을 할 수 있나 돌아봅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2-13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 전 KBS 영상제작국 촬영감독 / 현 Time Digital Video Production 대표 박재운씨

흔히 사람들은 TV는 빛의 예술, 영상미학이라는 말로 화면에서 보여지는 영상의 중요함을 이야기 한다. 이 영상을 담아내는 사람들이 카메라맨들이다. ‘Time Digital Video Production’ 대표 박재운씨는 25년 동안 KBS의 간판 드라마와 쇼 등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촬영 감독. 즉, 카메라맨으로 출발했다.  

호기심 갖는 부분, 그에겐 일상

일요일 오후, 늦둥이 딸 지수와 느긋한 휴일을 즐기려다 갑작스런 전화에 기자와 마주앉게 된 그는, 20여 년 동안 수 백 편 촬영한 작품 속에서 타이틀을 기억해 내는 것도 이제 ‘가물거린다’고 했다.
주인공, 줄거리…… 어떤 부분에서는 촬영했던 그의 기억보다 시청자였던 기자의 기억이 더 선명할 때도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열광하는 인기 탤런트들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촬영한 그에게까지 연결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다섯살에 낳은 늦둥이 딸‘지수’와 한 컷. 첫 직장이던 ‘한국홍보자료개발원’에서 만난 선배 영화감독은 카메라맨이 익혀야 할 많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다. 박재운씨는 아날로그 방식의 편집에서 디지털 방식의 편집까지 기본지식을 알려 준 선배를 만난 것은 ‘운이 좋았다’며 지금도 고마워했다.

 그렇게 그에게는 그저 일상에 불과한 과거 속에서 찾아 낸 드라마는 ‘용의 눈물’, ‘바람은 불어도’, ‘꽃피고 새 울면’ 등. 이 드라마 모두 한때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을 앞당기게 하고, 우리나라 저녁 시간과 휴일 오후 온 가족을 TV앞에 끌어 앉히던 인기 드라마들이다. 간간이 ‘이소라의 프러포즈’와 ‘뮤직뱅크’ 같은 쇼 프로그램과 ‘회장님 회장님’ 등의 개그 프로그램도 끼어들었다.

■82년 KBS 입사, 20년 카메라와 동고동락

일반적으로 카메라맨은 크게 스튜디오(ST) 카메라맨과 야외촬영을 하는 ENG 카메라맨, 그리고 보도 카메라맨(카메라기자, 촬영기자)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의 포지션은 스튜디오 카메라맨.
스튜디오(ST) 카메라맨의 경우 쇼, 오락, 드라마, 교양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들을 잡아야 하므로 구도 및 영상에 대한 감각 이 뛰어나야 한다. 또한 기술 외 적인 영상의 심미안을 필요로 한다.
1982년 공채 10기생으로 KBS 영상제작국에 입사, 사직서를 제출한 2000년 6월까지, 그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KBS 한국방송 카메라맨, 촬영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햇수로 꼬박 20년, 50대인 그의 삶에서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장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시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6년 ‘바람은 불어도’에서 함께 작업한 최수종과 함께 찍은 사진.

 우리나라에 컬러 텔레비전이 나온 시기에 입사해 강산이 두 번 바뀐 긴 시간을 방송국에서 카메라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살아온 그의 과거 속에서, 노주현 전원주 사미자 이효춘 김보연을 비롯해 40대 이후 세대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마치 TV채널을 다시 흑백의 추억으로 돌려 놓은 듯 흥미롭다.

■방송은 교내 방송반서 아나운서로 첫 인연

그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서울 인창고등학교 방송반 아나운서로 교내방송을 시작한 것이 방송과 첫 만남이었다. 의외로 방송이 적성에 잘 맞았던 그는 진로를 ‘방송인’으로 정하고, 쭉 그 길을 바라보는 학창시절을 보낸 후 TBC 동양방송국 탤런트 공채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요즘이야 개성이 뛰어난 사람도 뽑히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리 뛰어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도 우선 미남 미녀들이 대세였으니 제가 될 턱이 없지요. 허허허…….”
탤런트는 경험 삼아 응시한 것일 뿐 모든 관심은 카메라 촬영에 있었던 그는, ‘한국홍보자료개발원’에 입사했다. 이후 생긴 삼화프로덕션이 생기긴 했지만 ‘한국홍보자료개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디오 영상 제작 프러덕션이었다.

■첫 직장서 운 좋게 만난 좋은 스승
 
“첫 사회생활에서 선배나 상사가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많이 달라지지요. 원래 영상관련 엔지니어들이 자기의 노하우나 기술을 쉽게 잘 가르쳐 주지 않는데 저는 운 좋게 좋은 스승을 만났죠. 덕분에 이후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획이 좋고, 대본이 훌륭하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더라도 적절한 각도의 샷과 이미지를 잡아내지 못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가 없고, 카메라맨은 편집 후의 화면까지 미리 그리는 기술을 배웠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이 편집 후 완성된 화면을 머리 속에서 미리 그리고 촬영하는 것과 촬영 기술만 좋은 것과는 완성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카메라 맨.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 능력 외에 훈련된 영상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이때 배운 실력만으로 KBS 입사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행복한 이민생활에 만족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영상매체학을 전공한 그의 대표작은 대하사극 ‘용의 눈물(99년)’외 김혜수, 나한일, 전혜진 주연의 ‘연인(93년)’, ‘그대 나를 부를 때(97년)’ 등 일일 연속극을 비롯, ‘이소라의 프로포즈’ 와 ‘뮤직 쇼’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저보고 잘 나갈 때 왜 이민을 왔냐고 묻는데, 그 질문 이전에 ‘잘 나갈 때 왜 이민을 가냐’는 질문을 더 많이 들으면서도 떠났겠지요? 허허……”
동아방송대학 영상제작과 겸임교수로도 활약하던 그가 이민을 처음 생각한 것은 캐나다 토론토 CBC 드라마 연수를 떠나왔던 95년. 3년 후인 98년 가족들이 먼저 이민을 왔다.  
“내가 한국서 배우고 갈고 닦은 지식을 이곳에서 한번 펼쳐 보고 싶다는 호기가 생겼습니다. 나를 모르는 이 사회가 처음부터 나를 인정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인 욕구에 적합한 컨텐츠를 개발한다면 그들도 기득권만 고집하지 않고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밴쿠버 이민 7년이 된 그는 현재 디지털 전광판(Digital Signaze)광고 동영상 제작회사인 ‘Time Digital Video Production’을 운영하면서, 밤샘 촬영과 일에 치어 가족들과 지낼 시간이 없었던 한국에서 꿈꾸던 ‘아버지다운 아버지’로서 행복한 이민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