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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인만 믿고 시작한 가게, 만족합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1-09 00:00

이재연 기자의 창업 네트워크 ‘선샤인 컨비니언스 스토어’대표 원정희씨

투자이민자로 밴쿠버에 오게 된 원정희씨는 이민 첫해 ESL 학교를 다니며 2년 동안 영어공부와 자녀들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투자이민자에게 주어지는 적응기간 2년은 주부들에게 창업 준비기간으로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사람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눈 깜짝 할 사이’에 2년이 끝날 무렵, 우연히 현재 운영하고 있는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인수하게 되었다.

“이전에 장사를 해 본 경험이나 창업할 때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라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습니다. 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오로지 전에 운영하시던 주인의 말만 100% 믿고 시작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괜찮냐고……  물론 만족하고 있죠.”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원정희씨의 창업과정은 다소 황당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운 좋게도 이전 주인을 잘 만나 전혀 어려움 없이 매출이 조금씩 신장하는 재미에 하루 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 주부들의 창업은 유동거리와 근무 시간, 위험 등의 여러 조건이 있지만 무엇보다 체력에 맞는 업종을 선택해서 ‘즐겁게 일하라’고 말하는 원정희씨. 출근하는 아침마다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창업을 하면서, 정직한 전 주인을 만난 덕분에 전혀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 황당하기까지 한 창업계기

불교 신자인 원정희씨는 2년의 기간을 불과 얼마 앞두지 않던 즈음 ‘서광사’에서 기도를 하고나오던 길에, 앞서 걸어가는 한국인들의 뒤에서 나란히 걷게 되었다. 일상적인 안부를 나누며 걷고 있던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조건이 해지되어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빨리 팔아야 되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뒤 설명도 없이 ‘우리 주세요!’ 했더니 그분들이 더 놀랐어요. 어떤 조건이냐고 물으시는데 조건 없다며 그냥 한번 가게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따라 와 보세요’ 하면서 데리고 가셨어요.”
원정희씨는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의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 가게를 달라고 한 지 한 달 만에 컨비니언스 스토어 주인이 되었다. 

컨비니언스 스토어와 같은 가게를 창업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재고파악 및 이전 매출 기록 등 기본적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인수 금액 흥정 같은 건 더욱 없었지만 반품하기 어려운 오래된 재고도 있다며 전 주인이 알아서 조정해 주었다.

“사람들은 전 운영자의 말만 믿고 인수하는 걸 무척 걱정하셨지만,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믿음 같은게 있었어요. 인수 후 운영해 본 결과 매출이나 재고, 물건을 사입 하는 일, 원가와 이익 등 큰 것부터 아주 사소한 것까지 하나도 틀린 게 없었어요. 계약기간이 5년 남았다고 해서 인수하고 보니 5개월이더라는 등 한국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지나가던 행인들끼리 만나서 그렇게 시작 된 거래를 한 것이 1년 전 일이다. 전 주인과는 지금도 서로 왕래하고 지낸다.

■ 5개 판매대 1개로 줄이는 것부터 시작

“그동안 주인들이 팔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몇 년 동안 쌓아 둔 물건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어요.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 ‘조건 해지’를 위해 운영했던 탓도 있었던 것 같아요.”

컨비니언스 스토어, 스모크숍은 기존의 가게를 인수하고 나서 비어있는 매장을 채우기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원정희씨의 경우 기존의 물건이 너무 많아서 가게를 비우는데 더 노력해야 할 만큼 쌓여 있었다. 전 주인은 원정희씨가 가게를 인수하기 전 15명이 보고 갔지만, 재고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만큼 구석구석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게를 인수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과감하게 이 물건들을 치우는 일이었어요. 컨비니언스 스토어는 손님이 찾는 모든 물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가게를 들어 섰을 때 상품을 구경할 만한 공간이나 조명도 환해야 할 것 같아서 오래 된 건 무조건 대폭 없앴어요.”

식품이 아니라 해도 진열대에 물건이 너무 많으면 먼지가 쌓이게 되고, 손님들로부터 오래 된 물건으로 오해 받을 소지도 있다. 공간이 좀 생기면서 가게가 넓어 보인 탓인지 한결 밝아 보였고, 생동감의 효과까지 생겼다. 예상대로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매출도 상승했다.

■ 주부 창업은 ‘체력’에 맞는 업종 중요

“가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닦고 쓸고 아끼니까 찾아오는 손님들마저 사랑스럽더라구요. 아침마다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출근하면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전혀 힘들거나 피곤하지가 않아요.”

사무실 건물 내에 있는 그의 가게는 주5일 동안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5시에 닫는다.
원정희씨도 이민 초기 남편과 번듯한 호텔이라도 해볼까 해서, 밴쿠버 구석구석 다니며 찾아본 적도 있었다. 가게를 인수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들의 농담을 받아 줄 만큼 여유로워 진 그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기 이전에,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가게가 고맙다’고 말한다. 

“남의 이목은 내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와 같은 주부들이 창업을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내 체력에 맞는 업종, 내 세대에 맞는 업종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몸이 힘들면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또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면, 동전 하나 바꾸어 주는 일도 행복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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