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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씨 "후손들에게 한국인 뿌리 심어 주고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18 00:00

캐나다 이민생활 36년 자전 에세이 집 펴낸 허억씨

36년 전인 1971년 단돈 1500달러를 손에 쥐고 밴쿠버로 이민 온 허억씨가 세 자녀를 키우며, 정착하기까지 겪은 어려움과 기쁨 등 생활의 애환을 담은 자전에세이 ‘My New Life in Canada’를 출간했다.

사실적인 기록을 통해 후손들이 선대의 이민 이후 형성된 가족사의 뿌리를 분명하게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민자로서 겪은 어려움과 생활, 지인들과의 만남, 이민자로서 도전과 좌절, 소망했던 일 등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캐나다 초기 이민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이민자들의 애환과 소망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 볼 수 있어 미소 짓게 하다가 또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뭉클함이 있다. 더불어 최근 이민자들이 이민생활의 지혜와 인간관계의 해법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가 소릇이 숨어 있다.
 
◆ 후손들에게 한국인 뿌리심기 위해

허억씨는 책에서 한국의 촉망 받던 회계사로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던 때부터 이민을 결심하게 된 동기와 이민 후 군대 동기의 도움을 받으며 무일푼으로 지하 셋방에서 시작한 막막한 시절의 어려움, 남편만 믿고 따라 온 부인과 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 온 그의 지난 36년간 이민사를 직접 화법으로 기록하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조상의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을 보고,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임을 잊고 살아 갈 것을 염려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발간이유를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24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 속에는 지난 삶을 열거하며 옳고 그름의 잣대로 후손들에게 '닮기'를 강요하지 않고,  내성(內省)을 통해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어 더욱 진한 감동이 전해 진다.
그는 또 자녀들과 결혼한 일본인 며느리와 캐네디언 사위 사이에서 태어난 손주 손녀들이 만약 한국인의 뿌리를 잊게 된다면, 이는 곧 조부인 자신의 책임이며 그들 부부가 30년 동안 쌓아 놓은 이민생활의 보람이 ‘허사가 되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에세이 집 출간이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 일, 혹은 책을 판매해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진솔한 과거와 현재 모습 그려

회계사이면서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비슷한 성격의 회고담이 흔히 자화자찬과 신변잡기로 빠지는 것에 반해, 문인으로서의 좋은 글쓰기를 억제하고 진솔하게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가령 이렇다. “나는 학력과 경력이 좋을수록 취직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경영학 석사학위와 국제 회계법인에서 감사관으로 일한 경력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것이 취업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몇 년 뒤 내 이력서를 검토했던 회계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내용에서 말단으로 취업후 경력을 쌓은 다음 옮겨가게 되는 사회구조를 몰랐던 무지를 고백하며, 이력서 60통을 낸 다음에도 취업에 실패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후 학벌과 학위, 한국에서 경력을 버리고 백의종군, 우체국의 막노동 자리를 얻던 날 ‘세상을 얻은 듯 기뻤다’고 회상하며 ‘새롭게 발견한 MBA의 참뜻’에서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가 이민생활 36년 동안 가장 오래 몸담았던 ‘VCC’에서는 함께 근무하던 여자 선생의 노골적인 데이트 신청에 ‘미묘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하면서도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습니다”는 말로 단호하게 거절한 내용 등 감추고 싶은 개인적인 기억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밖에 한인회장에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도 당선은 되리라고 생각했다'며 실패한 후 ‘내 교만한 자존심이 무참하게 짓밟혔다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며 매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이후 신앙으로 참회하고 거듭나는 과정 등 자성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 4부로 나누어진 책의 내용

책의 첫째 장은 2000년 7월 현직에서 은퇴 하던 날의 감회를 적은 ‘은퇴일기’를 시작으로 이민병에 걸리게 된 계기, 연방정부 감사관으로서의 생활, 한인최초의 회계사무소 개설 등 이민 직전 한국에서의 생활과 이민초기의 일들이 주제가 되고 있다.   
이어 2장에서는 19년간 회계학 강의를 했던 ‘Vancouver Community College’ 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겪은 교유자로서의 생활과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계기, 생선가게를 열고 음식점을 한 경험 등 이민자로서 치열하게 살아 온 날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내와 장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3장에 나온다. 사별하고 홀로 사시던 장모님을 모시고 와서 20여 년 정성을 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잔잔한 갈등과 세대차를 효심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빙그레 웃음짓게 만든다.
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낸 ‘사랑하는 아내’편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주신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는 표현으로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아내는 매우 현명하고 이해심이 많아서 내가 좌절하고 신경질을 낼 때는, 아주 조용히 나를 지켜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말없이 실천함으로써 나의 나약함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극진한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또 ‘어쩌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 만나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늘 웃는 낯으로 역경을 이겨 오면서 내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아내를 바라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감사한 마음’이라며 ‘당신이 함께해서 참으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 초기 이민자들의 즐거움과 우정

그가 이민을 왔던 1971년 당시 밴쿠버에는 약 200여가구가 살고 있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이때 함께 동고동락하던 정다운 이웃들과 친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외로운 이민생활 가운데 신앙을 같이하는 형제들이 모여 산행도 같이하고, 게도 잡아다가 삶아 먹으며 수시로 모여 저녁식사와 여행을 다니는 등 다채롭고 즐거웠던 일이 많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에 쫓겨 부모로서 챙겨주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해 의사와 교사로 이 나라의 병원과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녀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마지막 장의 글 속에 잔잔하게 스며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중 통역장교로 입대, 군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야간대학이 개설되어 있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로 편입한 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 삼일 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69년 소령으로 예편한 후 1971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캐나다 공인 회계사(CGA) 자격을 취득하고 캐나다 연방정부의 감사관을 거쳐, 밴쿠버 커뮤니티칼리지(Vancouver Community College)에서 19년 동안 회계학을 강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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