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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 주인공의 삶 속으로 빠져들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22 00:00

주목 받는 차세대- 남주연양

◆한국무용 춤사위에 빠져 시작

강렬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텅 빈 듯 조용한 공간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찰그랑 챙챙’ 검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음악이 흡수되며 쌍검을 휘두르는 무용수들의 손끝에서 쌍검무의 화려함이 살아난다. 소리와 울림, 몸짓은 이내 동심원처럼 일정하게 리듬을 타며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들고, 춤을 추는 그들의 어깨가 들썩거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면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춤 사위에 빠져드는 관객들. 그들은 무용수들과 함께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간다. ‘징 하게 배우기 어렵다’는 한국무용, 특히 쌍검무의 마력이다.

화려하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춤사위가 오히려 강렬하게 빠져들게 하는 쌍검무는 전쟁터에 남편을 보낸 여인이 기다림의 한과 외로움을 달래며 추었던 춤이다. 밴쿠버 한국무용단(단장 정혜승)의 정기공연 ‘황진이’의 무대에서 쌍검무를 펼쳐 보이는 그들 속에 남주연양이 있었다.

◆상고북을 보고 재즈댄스 버리고 시작

젖살이 남은 뽀얀 뺨에 여드름이 송글송글 솟아 오른 남주연양이 처음 한국무용을 시작한 것은 밴쿠버로 이민을 오고 난 이후.
“재즈댄스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다가 상고북을 보고 ‘아, 저거다’ 싶었어요. 손 몇 번 올렸다 내렸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단순한 춤이 제가 알고 있던 한국무용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온몸으로 표현하는 상고북 춤을 보면서 무언가에 홀리듯 엄마를 졸라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햇수로 5년을 넘었다. 밴쿠버한국무용단 단원으로 무대에 오른 정기공연 외에도 100회 넘는 공연을 했다.
“한국무용이 단순하다고 하지만, 발레처럼 춤을 추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고,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수 만가지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발레보다 좋은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시작한 한국무용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주연양에게 잘 맞았던 듯,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주연양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한국무용에서 머물러 있다.

◆태평무와 쌍검무 좋아해

남양은 한국무용 중에서도 태평무와 쌍검무를 좋아하고, 예쁘게 추는 춤보다 ‘멋’있게 추는 춤을 좋아한다. 재즈 댄스를 배우기 위해 무용학원을 찾았다가 상고북 춤에 반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조용하게 춤 사위를 보여주는 춤보다 강렬한 소리와 온 몸으로 추는 것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전통무용의 기본적인 틀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에 비중을 두겠지만요, 저는 삶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태평무나 쌍검무 같은 춤으로 재탄생 시켜 창작해 놓은 선생님들의 춤 사위가 좋아요.”
한국무용가 김소희씨는 ‘예술은 모방이 아니다. 스승을 따라 하면 원숭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지 않고 그의 춤사위를 ‘따라 한다’는 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전통을 잇는 것. 이와 함께 자신의 ‘춤 길’을 찾아낸다는 말은 창작과 전통 ‘모두’를 갖고 싶은 차세대 춤꾼의 당연한 욕심,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UBC에서 언어학 공부할 예정

이제 열 여덟 살. 밴쿠버에 살고 있는 주연양으로서는 책에서 접해 본 역사 속의 인물 황진이가 살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주인공의 삶 속에서 춤을 추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표현하기엔 버거울 터. 그러나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황진이를 공연할 때 마음을 비우고 그 시대로 돌아가 황진이가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음악이 나오고 춤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대로 돌아가게 돼요.”
 ‘승무’가 ‘하늘과 내통하는 장삼자락의 춤’이라 평했던 것처럼, 무대에 서면 삶의 체험 없이 이런 영감을 떠올리는 특별함이 ‘타고난 춤꾼’이라는 소릴 듣게 되는 일면이다.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가서 무용학원을 다닌 친구가 한국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학생들은 무용학원에서 하루 종일 산대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평소에 공부하고 정해진 연습시간에 순수하고 좋은 친구들과 만나게 되니까 오히려 춤을 좋아하게 되고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고상한 춤을 추기 위해 팝송이나 힙합을 거부하지 않고, ‘추는 춤 말고 추어지는 춤’을 추길 원한다고 했다. 진학을 하기 위해 무용학원에서 24시간 해야 하는 고난과 같은 무용이 아니라, 좋아서 하기 때문에 한국무용은 주연양에게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즐거운 ‘놀이’에 가깝다. 

◆어릴 때 꿈은 탤런트

“힘들 때요? 공연 앞두고 하루 여덟 시간씩 연습할 때는 힘들죠. 하지만 공연 끝나고 무대인사를 할 땐 가슴이 뿌듯해요. 제가 무용 하는 걸 엄마가 무척 좋아해요. 아마 대리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아이다운 솔직함과 순수함이 귀여운 주연양의 어머니는 극단 ‘한우리’에서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남선호씨. 엄마의 ‘끼’를 이어받은 주연양의 어릴 때 꿈도 탤런트나 연예인이었다. 그러다 최근 영어, 일어, 중국어를 공부한 다음, 다국적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전공을 언어학으로 선택했다.

내년 1월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교환학생으로 한국으로 건너 가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를 가장 먼저 완벽하게 마스터할 생각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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