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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 전공자 도전해 볼만합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10 00:00

‘Northern Optorodics INC’BC주 기술담당 책임자 김진수씨

“이민 직후 400통의 이력서를 이 나라 기업과 병원에 보냈지만, 연락 온 곳은 없었습니다.”

5년 전의 일이다. 현재 김진수씨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Northern Optorodics INC’. 병원에서 사용하는 메디컬 레이저용 의료기기를 미국에서 직수입해 캐나다 전 지역에 판매하고 있는 기업으로, BC주에서 관련업계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건실한 중견 업체다.

이 회사에서 그의 공식 직함은 ‘BC주 기술담당 책임자’. 주 업무는 BC주에 공급된 회사의 메디컬 레이저 의료기기의 사후 서비스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89학번인 김씨는 연세대학교 의용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는 인하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MRI'와 'CT'촬영기 등 첨단 의료장비를 관리하며 10여년 넘게 일을 일했다. 의용공학은 79년 처음 4년제 대학에 개설된 학과로 BCIT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와 동일한 전공학과다. 세부적으로는 생체전기, 의료장비, 영상, 전자 등의 전공으로 나누어지는 이 학과는 공학에 가깝지만 의료관련 기기를 다루는 일이므로 의료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 겁없이 보낸 이력서 400통

2001년 토론토로 이민을 온 직후, 이 나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허드렛 일과 자동차 정비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두 달 동안 무려 400통의 이력서를 캐나다 기업과 병원에 보냈지만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영어능력도 부족하고 캐나다에서 일 한 경력이 전혀 없는 이민자가 두 달 만에 보낸 양으로는 겁(?) 없이 보냈다고 할 수 있다. 한 곳에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다가 끝이 났고, 회사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지만, 꼭 병원이 아니더라도 어디 기업에서라도 오라고 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렇게 철저히 외면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방법을 바꿨다. 관련 자격증과 한국에서 일한 자료, 사진을 깔끔하게 정리한 파일을 들고 직접 찾아 나선 그는, 대기업보다 작은 기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캐네디언들 매너 좋고 신사적이라구요? ‘왜 바쁜데 연락 없이 찾아왔느냐’면서 제가 보는 앞에서 이력서를 찢어버리더군요. 어느 민족이나 성질 더러운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 그런 대접 받으니까 더 오기가 생기더군요.”
작은 회사를 찾아 가기로 한 결정은, 취업이 되지 않더라도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언어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두려움을 숨기고 싶은 내심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황당한 일을 당한 뒤 작은 기업일수록 오너의 독단적인 성격에 따라 경영이 좌지우지되고, 인사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걸 깨닫고 환상이 깨어지면서 오기가 생겼고, 오기는 다시 용기를 자극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돌출해 냈다. 다시 전략을 바꿨다.

◆ 무조건 찾아 간 병원  

토론토에서 가장 큰 병원 ‘Sick Children’s Hospital in Toronto’의 엔지니어 파트 디렉터를 찾아간 그는 자료파일을 보여주고 무보수 ‘자원봉사’를 원했다. 그 업종에 취업을 하려면 관련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 분야 정보와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비록 캐나다에서의 실무 경험은 없지만 이전의 충분한 자료를 통해 확인을 한 매니저와 인터뷰 날짜가 잡혔고, 무보수 자원봉사자이지만 디렉터의 정식 면접과 매니저 면접, 담당자 면접까지 3차례의 면접이 있었다.  

◆ 소개 받은 회사 3차례 면접만 2개월

그의 예상대로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는 한달 동안 그 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고, 현재 회사의 대표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레이저의료기 관련 병원 직원교육을 온 그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명함을 건넨 후 이메일을 보냈던 것.
“메일 보내고 한참 후에 연락이 왔어요. 영어도 잘 안되고 경력도 없으니까 ‘긴가 민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의사표시를 했더니 면접을 하자고 하더군요.”
김진수씨는 취업자들과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 메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영어구사력은 떨어지지만 한국인은 문법과 쓰기에 강한 편이므로 이를 적극 이용하라는 것. 이메일이 오면 바로 답장을 보낼 것, 그리고 나의 전문성을 피력하며 ‘영어를 잘 구사하진 못해도 업무를 충분히 할 만큼의 영어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라고 말한다.
“첫날 면접을 갔더니 질문도 없고 현미경 하나를 주면서 분해하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레이저를 분해하는 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속내를 감추고 차분히 앉아서 몽땅 뜯고 나니까 퇴근 시간이 되더군요.”
이틀에 걸친 면접은 그렇게 레이저를 뜯고 다음날은 그것을 조립하는 것이 전부. 사흘째 되는 날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 보이지 않는 차별 막기 위해 이메일 이용

“옛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고 했던 것처럼, 직접 찾아가세요. 취업이 아니라면 무보수 봉사라도 자청하시길 권합니다. 내가 원하는 업종에서 일을 하려면 관련 업계에 소속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기업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취업에 성공한 김진수씨. 그는 취업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더라고 말한다.
“영어 구사 능력이 부족한 이민자들을 무시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업무 이외의 고비더군요. 조금 발음이 다르거나 틀리면 일을 시켜도 못들은 척 해버리는 거죠.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저는 이메일을 보관하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나 자신의 잘못을 영어가 서툰 이민자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 있는는 캐네디언들 사이에서, 그는 모든 업무의 처리와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로 처리한다. 문제가 생기면 문서로 분명 전달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인한 불이익을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전화로 대화한 내용도 다시 한번 확인 메일을 띄워 보관해 두죠. 영어 능력 부족으로 당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캐네디언 동료가 ‘왜 영어도 못하는 저런 사람을 뽑았냐’고 하는 소릴 우연히 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토플성적 250점을 훌쩍 넘긴 높은 점수를 받고 이민을 올만큼 기본은 갖추고 있는 것.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인종차별과 시기하는 무리는 있기 마련. 이럴 때를 대비해 그는 또 메일을 이용한다. 
“매일 업무보고서를 써서 하루 처리결과를 보고합니다. 이것은 내가 영어 구사력은 떨어지지만 문법과 문서 작성 능력을 보여줌으로 업무에 대한 빈틈없는 근무자세 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그 결과 현재 회사에서 그의 신뢰는 전폭적이기까지 하다. 입사 5년이 되던 지난 5월 토론토 본사에 온 가족을 초청해 성대한 기념파티를 열어 축하를 해주었다. 
5년 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이민자로 400통의 이력서를 내고도 답장 한 통 받지 못했던 그는, 매출1위의 경쟁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자신을 믿고 채용해 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미국까지 연수를 보내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현재 회사에 남기로 했다. 단지 돈을 쫓아가기보다 이들에게 ‘한국인’의 참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훗날 이 기업에 입사를 희망하는 우리 교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램이다.

김진수씨 이메일   jkim@noi.ca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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