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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영화, 관객이 선택하면 ‘잭팟’”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09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최광훈씨 / 前 영화수입배급사 ‘시네피아’ 대표

◇ 지난 4, 5년 한국영화가 피크를 이루었지만 다시 한국영화의 침체기가 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최광훈씨. 그 시기가 오면 다시 외화 수입을 할 생각인 그는 주관객층인 20대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감각이 그때까지 살아 있을 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최광훈씨의 서재에는 배우 장국영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최씨는 장국영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았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외화 가운데 작품성과 상업성을 적절히 갖추고 있으면서 흥행에도 꽤 성공을 거둔 영화가 있었다. ‘밀리언 달러 호텔 (Million Dollar Hotel)’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 ‘밀리언 달러 호텔’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적응하지 못하는 부랑자 무리들이 생활하는 미국 최고의 도시 LA시내 중심에 있는 지저분한 호텔을 일컫는 은어(隱語)다.

영화는 평화롭던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마약 복용자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줄거리는 사건과 연루된 9명의 용의자들이 펼치는 암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FBI 요원으로 멜 깁슨이 출연하고 제레미 데이비스가 이 호텔에 사는 지체장애자로, 밀라 소보비치는 주인공이 흠모하는 여인으로 출연했다.

영화 팬들의 리뷰 가운데는  ‘거지같은 분위기의 영화’,  ‘미국이 만들어 낸 미디어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번쩍 든 영화’라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던 이 영화는, 극장에서 놓친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출시에서도 극장 관람객 숫자를 능가한 기록을 보였다. 

이 영화를 우리나라에 수입한 사람이 최광훈씨다. 그는 이 영화에 앞서 잔잔한 감동으로 소리소문 없이 20만 관객을 동원한 중국영화 ‘첨밀밀(甛蜜蜜)’을 수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첨밀밀’은 젊은 남녀가 10여년 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애정 영화로, 완벽한 시나리오와 여명과 장만옥의 열연으로 90년대 후반 20,30대 영화 팬들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던 영화다.   
 
◆‘밀리언 달러 호텔’ ‘첨밀밀’ 등 수입

“‘밀리언 달러 호텔((Million Dollar Hotel)’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고, 세계적인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가 만든 영화입니다. 음악은 87년부터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락 퍼포먼스 상,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U2’가 만들었는데, OST가 영화 못지 않게 좋았습니다.”

‘U2’의 음악을 이야기하고 있는 50대 최광훈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긁적인 정도’라고는 하지만 시를 쓴 적도 있고, 대학 졸업 후에는 7년 동안 국내 모 정치인의 비서로 일을 한 의외의 경력도 있다. 생물학과 문학, 그리고 정계. 전혀 연결 되지 않는 분야이긴 해도 영화에서는 그 고리가 완전히 끊긴다.

“모시던 분이 워낙 정치적인 야심이 크고 최후에는 제가 생각하던 방향과 다른 곳으로 나갈 뜻을 비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그때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영화 수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때라, 영화제를 다니며 시작했죠.”

1990년이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의 자본으로 만들어 진다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나라의 대우, LG, 현대, 삼성그룹 등 대기업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에 투자를 하던 시기. 지나친 과다 경쟁이 결국 실패를 자초했지만, 이전까지 세계영화계 접근이 어려웠던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훌쩍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기업들은 투자에 실패했어도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우리 인재들이 영화계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었던 것. 그의 외화 수입도 이와 때를 같이 하며 정치계에서 영화사업으로 가뿐히 진입했다.

◆ 영화제와 마켓 돌며 선정

외화 수입의 대표적인 마켓은 영화제. 그도 세계영화제를 돌며 외화를 수입했다. 2001년 칸 영화제 마켓에서 14편의 영화를 사간 우리나라의 작은 수입 영화사가 충무로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당시 그 회사의 대표는 “영화로 인해 당하는 아픔을 너무 잘 아는데, 그런 거 오랫동안 안 당했으면 좋겠다. 좋은 영화들을 내 손으로 계속 들여오는 힘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영화를 들여오면 ‘성공’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좋은 영화’가 곧 ‘성공하는 영화’가 아니란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열심히 영화제 다니며 몇 년 하고서야 안목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영화를 사업적인 논리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어도 그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 있는지 생각하면 영화를 볼 때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

그래서 그는 영화를 서서 관람한다. 대중들에게 선택되어지기 위해 그에게 먼저 선택되어야 하는 영화의 운명 앞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 예술성과 상업성의 충돌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사업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영화는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은 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을 버려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영화는 철저히 ‘상업성’ 다음 ‘예술성’의 순으로 놓여진다.  

그가 선택한 영화가 관객에게 선택되어졌을 때, 그 기쁨과 성취감을 ‘잭팟이 터진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의 성공률이 5% 내외인 것을 감안한다면, 세계 영화 마켓에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선택될 영화를 찾아 낼 가능성은, 어쩌면 ‘잭팟’이 터질 확률보다 희박할 수도 있다. 관객들에게 선택되어지지 못한 영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시장의 논리는 그렇게 냉정하다. 그래서 영화 수입자를 ‘겜블러’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가 수입한 영화 가운데도 이렇게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려진 아까운 영화들이 많이 있다.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샤오시엔 감독의 ‘밀레니엄 맘보’, 알란 파커 감독의 ‘데이비드 게일’,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유로파 유로파’, 에릭 종카 감독의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 등의 영화다.

◆ 기억에 남는 영화 배우 장국영과 장만옥

그가 영화를 볼 때는 먼저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과 제작사, 그리고 배우는 가장 마지막에 본다. 배우이야기가 나와 문득 서재에 놓여 있던 장국영의 사진이 떠올랐다.

“영화제에서 장국영과 함께 있으면 사람들이 그 사람 사인을 받으면서 제게도 사인을 해달라고 해요. 아마 장국영과 함께 있으니 감독이나 뭐 유명인사라 생각했던가 봐요. 하하”

장국영은 현재 그가 살고 있는 화이트락 바닷가 언덕 위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영화제에서 만나면 밴쿠버에서 언젠가 함께 영화관련 일을 하기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대화를 하면서도 가끔 우울한 표정을 짓긴 했어도 밝고 명랑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직접 만나본 여자 배우들 중에는 장만옥이 아주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어요. 장국영은 배우로서도 아까운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겠지요.”
 
◆ 지난해부터 화이트락에 거주

그가 가장 최근 수입했던 영화 목록에는 ‘어바웃 슈미츠(About Schmidt)’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 등이 있다.

10년 전 아이들을 조기유학 보낸 후 한국에 남아 일을 계속해 오던 최광훈씨는 지난해 밴쿠버로 생활터전 대부분을 옮겼다. 때가 되면 오랜 영화 사업에서 얻은 경륜과 감각을 살릴만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곳 밴쿠버에 방송국 설립을 추진하며 더 멀리 뛰기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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