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달러 환율이 30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는 보도 이후 한 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뜸, 캐나다 이민을 언제 왔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독자는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와 비교해 1달러를 넘었던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70년대 중반이라고 기억한다고 했다.
기억은 정확했다. 실제, 1972년, 1974, 1976년에는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다. 독자도 모르고 있을 1957년 8월에는 1.06달러까지 갔다는 기록도 있다. 기자생활을 갓 시작한 2002년 1월 무렵만 해도 캐나다 달러화는 62센트 선이었다. 현재까지 상승률은 50%에 가깝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독자의 지적처럼 캐나다달러화의 폭등은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이다. 그는 휘발유 값이 리터당 30센트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며 혀를 찼다.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자는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며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들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고 정부의 처사는 엉망”이라고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살기에는 과거가 현재보다 좋았다고 했다.
팔면봉 ‘이대로 가면 쓰리高(환율-유가-금리) 兩피박(서민, 제조업)’에 대한 촌평도 빼놓지 않았다. ‘쓰리高’가 아니라 ‘포高’라고 했다. 포함될 또 하나는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폭등했던 주택가격이 하루아침에 폭락했던 사실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경험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연륜이나 사물을 보는 통찰력은 억만 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를 10년, 20년 뒤에서 바라보면 똑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때 우리 후손은 이렇게 물을 것이 뻔하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이럴 수는 없다’는 호들갑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며 시세에 순응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보기가 좋다. 기억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는 자상함을 보이지만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에는 태만하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세상을 보는 지혜’ 중에서.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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