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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웃] 加 태평양함대 사령부 박지환 소위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05-31 00:00

"다시 길 앞에 서다" 한국계 최초 캐나다 해군제독이 꿈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소재 국군사관학교(RMC,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에 버금가는 군장교 양성 기관이다. 지난 5월 20일 열린 이 학교의 졸업식장, 180여명의 신임소위가 탄생한 자리에는 3명의 한국계 장교가 있었다.

로버슨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박지환 소위


6월 1일부로 빅토리아의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배속된 박지환 해군소위(사진)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사관 생도들 사이에 'Korean Pain Trainer'로 불렸다는 그는 "후배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뒤떨어지는 선배가 되지 말고 뒤떨어지는 후배도 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박소위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지만 우리말을 전혀 잊지 않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프로스트(Robert Lee Frost)의 시(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인용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사관학교 졸업식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박소위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파트타임으로 캐나다군 예비병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캐나다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동시에 입학허가를 받고서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등대 같은 힘이 됐다.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말용씨는 "힘들어 하는 자식을 지켜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신력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빅토리아 한인회 등에서 봉사하기도 했던 아버지 박씨는 "2세들이 주류사회에 많이 진출하면 할수록 한인사회가 강화되는 것이며 1세들은 그 밑거름"이라고도 했다.
 
4년간의 사관학교 생도 생활에서 가장 힘든 기억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박소위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체력도 문화적 이질감도 아니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불어'였다. 캐나다에서 '불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고급 장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여겨졌다. 사관학교 입학이후 처음배운 '불어'였지만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넘어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캐나다 국군사관학교의 전통의 하나인 '충혼탑(Memorial Arch)'을 행진해 나오면서 박소위는 이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한국계 최초의 캐나다 해군 제독이 되리라".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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