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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말 일세
2026.04.16 (목)
세상은 마치 인정이 오가는 시골 장터 같지만 팔리는 것들 중 우리가 집어 드는 것은 화려한 색갈이 튀고 깨끗이 닦이고 가지런히 진열된 폼 나는 것들 중에서 고르듯 또렷해 져야 뽑히는 치열한...
조규남
그녀가 돌아왔다
2026.04.10 (금)
바이올렛 가의 그린 썸(Green Thumb), 안젤리카가 돌아왔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초콜릿 상자를 골목 식구들에게 두루 나누어주곤 모습을 감춰버린 그녀가 어디선가 겨울을 나고 봄비처럼 돌아왔다. 눈수술을 한 후 자꾸 뒤뚱거린다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그녀가 내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수잔은 얼마나 부끄러웠던가.그녀의 정원은 꽃달력이었다. 이른 봄 크로커스, 스노우드롭이 나즈막이 왔다 가면 동백과 목련에 향그런 웃음이 대롱이다...
김해영
헤르메스의 그릇
2026.04.10 (금)
다리와 다리 사이에 열 일곱 살 애기 초경 같은 빛깔이 어른댄다. 누가 장난삼아 색종이를 끼워뒀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겹겹의 잎 사이 안쪽 한 장이 그 빛깔을 푹 덮고 있다. 볼펜 끝으로 잎을 들춘 순간 아! 숨 막히는 황홀. 누가 볼세라 얼른 잎을 도로 덮어주는데 가슴이 뛴다. 처음이다.밖에는 눈보라 치고 영하 십 사 도의 혹한에 거실에 들여놓은 화초들은 철모르고 푸르러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잔을 들고 군자란 앞으로 갔다. 말을...
반숙자
매당梅堂마을에 핀 봄
2026.04.10 (금)
아랫말 논 가운데 수백 년 공덕품은미륵의 부릅뜨던 큰눈이 무서워서철마다 기침소리로 공양미를 바친 꽃들 울마다 지천이던 설중매 꽃 향기와골 단추 설기 떡에 벌 나비 날아와서코 박던 매당 마을이 회자되는 봄이다 강변의 미루나무 연록의 새순에도뻐꾹새 뻐꾹 뻐꾹 속 울음을 묻혔고柳淸臣 유세당 골에 낮 달도 따라왔네 숫거리 기와공장 가마터 그을음이돌담에 피는 봄날 벽오동 너른 잎이당 골의 마당 가에서 벽계수를...
이상묵
나의 원칙 몇 가지
2026.04.03 (금)
엄마는 매사에 철저했다. 그리고 당신 나름대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 여덟 식구가 아버지의 군인연금으로 근근이 끼니만 해결하던 시절, 엄마는 아버지 연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늦은 밤에라도 부식가게의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 내일 아침에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의 철저함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민 통장으로도 증명되었다. 세 개의 통장 중 한 통장 앞면에는 ‘장례식...
정성화
밤의 날개
2026.04.03 (금)
고요가 조용히 날개를 펼칩니다팔랑이는 이파리처럼, 이파리의 날개처럼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산비둘기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내려와 잠드는 내 집 처마 끝에달빛을 비춰줍니다고요의 숨소리가 들립니다달빛도 긴 그림자의 그늘을 접고나뭇가지에 어깨를 걸치고 앉아고요가 잠든 집을 지켜줍니다 고요가 조용히 일어나 잠들려는 나를살짝 깨웁니다눈뜬 별들의 바다가 깊습니다나도 살짝 별들의 어깨에 기대봅니다잠이 다...
이영춘
기념우표
2026.04.03 (금)
광화문 갈 때면 우표를 샀다참나리 쑥부쟁이 복수초 전집내겐 그래도 꽃보다 여인이었고꽃을 꼽지 않아도 내 사랑의 우아함이 전송되는게 중 잘난 우표 하나 뽑아 들고이제 더 이상 그립지 않다는 듯편지 봉투 한 모퉁이에 첨부했다보고 싶을 땐보고 싶어 미친 그리움가슴팍에 먹먹하더니겨우 사랑한다는 말 하나우표 하나에 부탁하고나는 멀쩡하다 흉내 한번 내봤다사람이 지나가면추억이 남는다지만우표가 지나가면가격표를 남긴다발품해 수집한...
김경래
도둑도 들어 쓰시는 하나님
2026.04.03 (금)
해외 집회를 인도하러 갈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내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간증으로 나눌 때 많은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다시 소망을 얻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얼마나 깊은 뜻을 이루어 가는지를 느낀다. 우리의 눈에는 고통과 어려움으로 보였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살리기 위한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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