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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2025.10.31 (금)
  가을빛 향연에 이끌려 길을 나선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단풍나무 숲을 지나 산책길 끝의 공원묘지로 향한다. 캐나다의 공원묘지는 삶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에도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뭇가지 사이로 드리운 햇살과 잘 가꿔진 잔디와 꽃들 사이를 거닐며,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이 자연스레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툭’ 하고 단풍잎 하나가 어깨 위로 떨어진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민정희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만, 아이도 많고 큰 개도 키우다 보니, 우리 집은 항상 물건이 넘친다. 희한하게도 분명 자주자주 비워내고 있지만, 어느새 비워둔 그 자리에 또 다른 물건이 쌓여 있고, 채워 지고의 반복이다. 아마 나도 모르게 비우지 못하고 물건들을 붙잡고 있는 성향을 가졌을 지 모르겠다. 마침 이를 깨닫게 된 경험을 얼마 전 하게 되었다.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전의...
윤의정
나무와 나무 틈새 바위와 바위 틈새눈보라 살을 비벼 맞는 통한의 세모빙하도 꽃을 피운다 틈새를 메워가며 저문 노을의 궤적 가득 찬 산 허리에꼬장한 바람들이 뒤집는 산촌 풍경*삭(朔)지나 걸어 나오는 대비조차 멋진 달 로키는 돌아누워 내면의 싸움터에든든한 후원자로 교만을 경고한다무성한 내 안뜰 악습 온기 없이 싸늘한 이 겨울 민 낮 들어 땟국을 벗고 싶다로키여 수세 몰려 경(景)을 포기하지 마라白樺皮 흰 속살마저 틈새를 메워...
이상목
미조(迷鳥) 2025.10.24 (금)
  단영은 유미를 가졌을 때를 떠올렸다. 유미의 태몽은 강렬했다. 조류를 무서워하는 단영에게는 잊힐 수 없는 그럼 꿈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대문 중앙에 서 있던 단영은 무거운 대문이 스르륵 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집 안으로 들어선 건 윤기가 흐르는 까만빛의 새였다. 새는 긴 목을 똬리 틀듯 둥글게 말고 마당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까만 깃털 안에서 번뜩이는 까만 눈동자가 단영을 올려다봤다....
고현진
  한 달 여를 아주 심하게 앓았다. 대학병원의 응급실로도 들어가고, 진통제를 먹어보고 주사를 맞아 봐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은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 한 폭을 떠오르게 했다. 기억 속의 그림은 빨강과 검정의 소용돌이였다. 보고만 있어도 극도의 혼돈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이번 내 상황은 세탁기의 탈수 통 속에서 돌아가는 빨래 마냥 그 그림 속 휘돌이 속으로 온 몸이 아닌 머리만 빨려...
최원현
비가 내린다부슬부슬 가을비 내린다손끝마다 온통 붉은 물 들이며길 위에 홀로 서 있는가슴 위로 바람이 스친다종일 어깨를 적시는 빗방울하나 둘 떨어진 잎새는말없이 젖은 흙에 스며들고한숨처럼 가슴 두드리던바람은 발 아래 흩어지는데       비가 내린다토독 토독 떨어지는 빗소리마음에 자꾸 물이 드는 건인연이 깊어지는 것일 텐데단풍잎 소리 없이 지는 건깊어지던 우리 인연 다하여그대 떠나가는 것일 텐데우수수 이별의 시간...
강은소
메주가 뜰 때 2025.10.17 (금)
둥글게 사린 몸을삶고 찧고 매달아천형(天刑)의 조화(造化)에도해 달 맞기 몇 삭(朔)인가메말라벙근 틈새로고향(故鄕) 맛이 배어간다뒷손 없는 푸대접에너절하게 달아 말려겉으론 데데해도금이 간 깊이마다베옷의먹성(性)을 담는토속(土俗)냄새 익어간다
문현주
 나지막한 능선이 방패처럼 집을 감싸고 있다. 희미한 여명(黎明)이 산마루를 비출 때면 안개 속에 숨어있던 금대산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토록 맹렬하던 매미들의 아우성도 짧은 생으로 잦아들고, 애벌레를 물고 날아다니는 박새와 곤줄박이들이 분주히 숲속을 살피고 있다. 올망졸망 매달려 장대비를 맞던 밤송이들도 풋기를 거두고 씨알을 키우는 중이다. 가시 투구 속에서 단단하고 둥글게 몸을 만들어 홀연히 땅으로 떨어질...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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