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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방 2025.04.04 (금)
초등학교 시절, 방 두 칸에서 여덟 식구가 살았다. 두 칸이라 해도 중간의 미닫이문을열어젖히면 방은 하나가 되었다. 방 모퉁이에 둥근 양은 밥상을 펴놓고 숙제를 했다. 그때마다어린 동생들이 달려와 밥상 다리를 잡아당기거나 밥상을 뒤집었다. 앉은뱅이 책상이라도 하나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구보다 공간에 대한 갈망이었다.가정을 이루고도 한참 동안 나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 그래도 늘 무언가를 썼다. 말로 하는 것보다그게...
정성화
곰의 그림자 2025.04.04 (금)
아버지는 곰이었다크고 무겁고 투박한 손덩치 큰 몸으로 세상을 밀어내며배운 것 없이 억울하게가난과 맞서 싸운 사람세상에 얻어맞은 마음은고스란히 가족에게 풀어내고그 포효를 힘없이 받아내던 아이는어느새 엄마가 되었다곰의 얼굴을 하고곰의 눈빛을 품고곰의 고집을 안고곰을 닮은 아이를 낳았다아버지를 미워한 죄일까아버지를 미워한 벌일까그를 닮은 아이를맘껏 미워할 수가 없다그가 없는 세상에서점점 더 미련해지는 아기 곰을...
윤성민
남은 날들의 축복 2025.03.28 (금)
  할머니가 울고 있다. 하얀 눈밭 속에서. 검은 연기는 하늘로 오르고, 그 밑엔 떠나간 할아버지의 옷들이 재가 되어 흩어진다. 김광석의 ‘60대 부부 이야기’가 잔잔히 흐르고 생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조각조각 스쳐 지나간다.   하루 종일 할머니의 쓸쓸한 뒷모습이 망막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영상 때문이었다. 10년 전에 방영된 89세와 98세 노부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민정희
설야(雪野) 2025.03.28 (금)
온 세상 하얀데산도 들도 나무도온통 하얀데덮어도 덮어도칠해도 또 칠해도검기만한 이 내 몸저 설야(雪野)마구 뒹굴면행여라도 희어질까저 흰 눈먹고 또 먹으면검은 속이 씻어질까설야에 묻쳐 비오니백설(白雪) 되게 하소서이 몸도 마음도모두 다순백(純白) 되게 하소서
늘샘 임윤빈
   록키 산맥의 아브라함 호수는 인공호수지만, 겨울이 되면 마치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처럼 변한다. 물속에서 분출된 메탄가스가 얼어붙으며 형성되는 기포들은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2023년 4월, 나는 처음으로 아브라함 호수를 찾았지만, 영하 16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대했던 얼음 속 거품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인터넷에...
박광일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나무 그늘에 앉아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사랑도...
정호승
아우 2025.03.24 (월)
어렴풋한 어릴 적 기억 속 아우의 조그마한 얼굴이 보인다. 너무 허약한 체질이어서 나이가들도록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채 간신히 기어 다니기만 하였다. 한참 후 동네 어른들의 훈수에따라 개울을 뒤져 개구리를 잡아 구워 주었는데 특효약이 되었는지 걷기 시작하였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며 형편과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살갑지 못한 형이었다. 캐나다에도착하여 얼마 되지 않아 과자를 유난히 좋아하던 50이 넘은 아우에게 과자 사 먹으라...
박혜경
잃어버린 봄 2025.03.24 (월)
병원을 오가며 반기던 하얀 목련희망이고 환희이고새 생명 같았던 나의 봄먼 길을 돌아오다어쩌면 길을 잃어버린 걸까기다림의 세월1년설렘으로 보낸 또 다른 1년그리고 다시 인고의 시간 1년이제나 저제나그 지난한 세월 속에서애가 닳고 닮아가슴엔 재만 남을 지경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몸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참 험난한 길이다그래도 애써 쓴웃음으로세월에 묻어야 한다는 마음에난 점점 안절부절이다봄이 오면 좋아질 거라는그 믿음그 소망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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