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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은 2026.03.27 (금)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할머니 방에 들어간다. 오동나무 반닫이 3층장을 조심스레 연다. ‘이거, 내 색동저고리!’ 손가락을 꼽아본다. 설날까지 몇 날이나 남았나.  동지 지나 섣달이 들면 할머니는 가마솥에 장작을 때 하루 종일 조청을 고셨다. 안방 아랫목이 설설 끓어 콩댐으로 길들인 노르스름한 장판이 탈까 봐 놋대야에 찬물을 담아 이리저리 옮기셨다. “아가”하고 부르시면 나는 냉큼 달려가 장독대 뚜껑을 뒤집어 들고 섰다....
김아녜스
선택은 중요하다 2026.03.27 (금)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선택을 시작한다.일어날 것인가, 조금 더 누워 있을 것인가. 창문을 열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커피를마실지, 물로 하루를 시작할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산다. 그래서 가끔은 삶이 내가 정한 방향이 아니라, 어디선가 밀려와 떠내려가는...
우제용
청개구리 2026.03.27 (금)
예쁘기도 하여라봄 풀 돋아난 마당여가 저기 고운 초록색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청개구리어른 엄지손톱만한 쬐그만 것이윤기나는 작은 나뭇잎처럼파라솔 위에도 제라늄 화분에도 붙어있다열린 현관으로폴짝 아기 신발코에 앉아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꼬리치는 강아지 기척에 놀라포올짝 현관 문 위로 뛰어오르는높이뛰기 선수볼롱 볼롱 턱 부풀리며 숨 할딱인다고놈, 참, 어디서 왔을까?신기하가도 하여라
임완숙
들꽃 2026.03.19 (목)
이름은 알아 무엇하랴 그저 좋은걸 나이는 물어 무엇하랴 그냥 예쁜걸 고향은 또 물어 무엇하랴 아마도 남촌일걸오직 하나 그 예쁜 얼굴로 그 여린 몸으로 왜 나왔는지 이 거친 들판에
늘샘 임윤빈
살면, 살아진다 2026.03.19 (목)
2025년 정기연주회 때의 일이다. 그 해는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을 다녀오자마자 “유엔젤 보이스”라는 한국팀의 초청 공연이 있어 슬퍼할 틈도 없이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공연 팀을 초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프라가 높은 수준이어서 웬만해서는 초청 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이탈리아로 연주하러 갔을 때 초청된 입장에서 보면 이탈리아가 선진국이라는 기대치가...
아청 박혜정
봄에 기대어 2026.03.19 (목)
살면서 줄일 것이 늘어만 간다.많이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추려낼 것 투성이다. 책과 LP를 사 모으는 건 때마다의 즐거움이고행복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더미를 보면 뿌듯했는데 그것도 지금은짐스럽게 느껴져서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전공어로 된 소설책을 이민오면서왕창 처분했다.남긴 책들도 한번씩 더 읽게 된 것 이외는중고서점에 팔고 나눔도 했다. 그렇게 남은 책은 나름 내게 인생...
고희경
봄을 기다리다 2026.03.19 (목)
얼레에 감긴 실처럼길고 긴 겨울더러 추운 몇 날은시린 손 비비며온기를 만들고그래도 몸이 녹지 않으면따뜻한 기억을 불러가만히 껴안고 잤다올 듯 오는 듯하면서도더디기만 한 봄남녘 여기저기에 매화꽃 피워 놓았다는데그 바람 얼른 올라와섬강 뒤덮은 얼음 녹이고언 내 몸에도 온기 나눠 줬으면
정금자
고독한 그녀 2026.03.13 (금)
고독한 그녀 오늘 그녀가 생각나네 언제가 되어야 나는 그녀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 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얘기하는 그녀 잘 익은 과일 속의 아주 작은 씨앗 모양 사람들 홍수 속 태풍의 눈 중앙에서 빈짝반짝 거리는 그녀 도심 한가운데서 너무나도 태연히 존재하는 병원 부속 화장터 마냥 당연한 하지만 동시에 짧은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모습 화장터 연기 모양 슬프게 자신의...
박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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