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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똥 지게 2022.07.26 (화)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함박눈 내리듯 소리 없이 사뿐사뿐 발을 내 딛으며, 움직이듯 움직이지 않는 듯 나비의 날개 짓 처럼 하늘 하늘 어깨 춤을 추며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시다가도, “이 노래는 잘못되었어. 젊어서는 일해야지. 놀긴 뭘 놀아” 하시며 역정을 내신다. 젊어서 부터 살기 위해 놀 틈도 없이 사셨던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의 놀이와 게으름을...
박광일
별 뜨는 남대문 막장이 열린다희미한 불빛을 여는 포장마차가연체동물로 움직인다꼼장어 물 오징어 튀김 잡채 꼬치 안주가일렬로 늘어서 있다노동의 만찬이다.전등불 사이로 노숙자 이불도 덤핑 운동화도남대문 자정 풍경이다더러는 문 닫은 세상도 있고밤새도록 문 연 세상도 있다밤을 택배로 전국에 보내고 나면골목 장 길을 오토바이가 달리다가어둠 끌고 가는 곳은 족발 집이다그 식당 앞에서 구걸하는 아기 업은 여자는동전 한 잎...
강애나
유행 2022.07.18 (월)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린 미용기구에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물리고 앉아있는 내 모습은 흡사 인조인간이 에너지를 공급받는 장면 같다. 꼭 그런 느낌인 게 머리카락이 감긴 미용기구마다 전기선이 가지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머리를 통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에너지를 받진 않더라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같은 의미일 수...
박정은
인생의 바람 2022.07.18 (월)
마음에 일어나는 바람풍랑이 되어 쉼 없이가슴속에 넘실된다폭풍우도 지나가면 고요한 것을기쁨과 슬픔일 순간의 업노을 내리는 길위삶의 흔적온통 벌겋게 서있다가슴 졸이며 걸어온 세월되 돌아갈수 없는또 하루를 보낸다늦은 은혜의 감사함떠나야 할 시간은 모르지만충만해져 가는 지금사랑의 미소가 머무는 공간에미풍만 불어주길두 손 모은다.
리차드 양
  열 두 살이 지난 큰아들이 요새 부쩍 짜증을 잘 내곤 한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 평소 천성이 착하고 따뜻한 편이라 엄마인 나에게도 곧잘 “사랑해요.”라며 의사 표현을 잘하던 아이가 갑작스레 차갑게 대하거나 기존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적잖이 당황 중이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와 부딪힘 없이 무난히 이 시기를 지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사춘기가 그렇게 어렵다.애들 아빠는 그렇게 사춘기가...
윤의정
붉은 해 마주한 바닷가 찻집찻잔의 따스함 느끼며해지는 고군산도 바다를 바라본다.​바다는 바위를 때리어 희게 부서지고해변을 부여잡은 붉은 두 손 끌며샤아 샤아 울며 바다가 멀어진다.​칭얼거리며 흰 모래 백사장 위로조가비, 조약 돌 뱉어 놓고조각 배 따라 검은 섬 돌아 떠나간다.​석양이 바다의 등을 다독여도떠나는 서러움에금빛 물결 너울 너울 흐느낀다.​돌아올 때는검은 구름으로 해를 가리고갯벌에 가리비 숨기어 놓고조각 배는...
김철훈
'아버지의 등' 2022.07.11 (월)
나는 아버지가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억이 있다. 어렸던 내게 위험이 닥쳤을 때 무릎 굽혀 내밀어주셨던 아버지의 등이 아직도 내게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단옷날이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를 따라 장흥군 관산 면에서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멀리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친구는 큰방으로 나를 안내했고, 방안 낮은 선반에는 돌아가신 친구...
심현숙
반쪽 느티나무 2022.07.11 (월)
산발 머리 느티나무고개 숙여 기도하며쓰러질 듯 서 있다얼기설기 전깃줄가슴을 후벼 팔 때손과 발 어깨마저 뭉텅 잘라내고선뜻 길이 되어준 가로수천륜으로 이어진 전깃줄굽힐 줄 모르고심장을 뚫고 지나가도그저 묵묵히어디선가 잃어버린못다 이룬 꿈반쪽 가슴팍에 아로새기며고추바람에 전깃줄 다칠까바람결 부여잡는반쪽 느티나무아자식 걱정에 반쪽 되신우리 어머니.
김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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