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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追憶) 2014.10.03 (금)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나보다 두 살 더 먹은 나의 짝꿍, 김학동이 나에게 묻는다.“야, 너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 누군지 아냐?”“아니.”나는 그 때까지 이성(異性)을 전혀 몰랐다.  시골 학교라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었고 그 절반이 여학생이었지만 나는 누가 예쁜지 관심이 없었다.  “이런 바보,  제일 예쁜 여학생은 한옥숙, 노순옥, 그리고 신정혜인데 한옥숙은 최정국하고 벌써부터 좋아하고 노순옥이는 나이가 제일...
眉柯 허억
기다리는 마음 2014.10.03 (금)
귀 기울이면 들릴지 몰라내 꿈을 밟고 오는 그대의 마음  꽃은 진다 해도 봄은 여전히 남아설레는 가을 단풍   생명을 잉태한 홀씨의 노래  떨기 나무에 피어나던 불꽃은천지만물풀잎을 감싸고 나무를 두드려 먼 산들이 서서히 붉어져 부비고 싶고 안기고 싶어 나무들은 물이 올라 고요히 설레이네 새벽 이른 뜨락에 서면 하늘은 금비늘 흔들어 눈부신데영원을 믿고 사랑한 내 생명 속에 있네  꽃보다 더 붉은 꽃피던...
전상희
 바다와 산이 있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위슬러를 가는 길이 그렇다. 위슬러로 가는 길에 알리스 레이크(Alice Lake) 파크 캠핑 사이트가 있다. 아들 식구들을 따라 나는 가끔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캠핑 나들이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캠핑장마다 느끼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 숲속에 반듯반듯 캥핑 사이트가 들어앉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알리스 캠핑장은 어느 곳보다 더욱 애착이 갔다. 물론...
김춘희
핏불의 울음 2014.09.26 (금)
옆집에 개 한 마리 있는데매일 시를 읽는다. 고저의 음률이 있고 슬픈 사정이 있다.다가가 보면 안기려고만 하는데가로막는 울타리가 있어서 들어줄 수가 없다. 옆집 개는 존재 자체를 무상하게 느끼는 것 같다.매일 밥 먹고 오평 짜리 마당에 풀어져 돌고 돌다 햇빛에 엎어져 잠이 든다.그게 다다 반복이다.길에 나가 맘대로 소변을 볼 수도 없고만남도 극히 제한적이라 사회성이란 게우는 시늉으로 근접하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옆집에 개가 있는데...
김경래
저녁 바다 2014.09.19 (금)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바다뿐이랴만  세상에 눈물겨운 것이 노을뿐이랴만  하루가 저무는 바닷가 저 황홀하게 쓸쓸한 배경이 되어 보라세월에 허리 잠근 섬이 되어 보라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바다로 간 뱃사람들 파도에 저당 잡혔던 하루를 건져 말리며뭍으로 돌아오고바닷새들도 젖은 날개 털며 둥지로 돌아올 때 수평선 위에 펄럭이는 일몰의 붉은 만장輓章 그 눈부시게 텅 빈 향연 앞에서누군들 한 번쯤 머리 올 쓸어올리며 지나온...
안봉자
이제 겨우 고요가 시작 되었다.   양로원의 저녁은 일찍  시작되지만 고요가 쉽게 찾아 오진 않는다.   너무 소란스러웠다 너무 고요 해 지니 그 고요함은 왠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이 자리에서 조금 전까지 예쁜 치매를 보이시던 노인이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다시 그리워 지는 것 처럼------.  하늘의 반달 하나, 창 가에 비친 또 하나의 반달 하나.   합치면 온전한 하나의 보름 달이...
김난호
쾰른 대 성당 쌍둥이 첨탑,그 꼭대기오랜 세월 밑뿌리로부터 몸부림쳐 올라온 수액인 양 창백한 선혈낭자하다제단이다흠 없는 어린 양의 피다대속제물이다바벨탑 같은 저 첨탑을 쌓아올린 자,어린 양의 피를 침 흘리며 탐닉한 자,...
백철현
이 부족한 사람도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기뻐서 환호했고, 나 자신은 큰소리로 울었다.  그러나 내가 떠나가는 날에는 주위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나는 말없이 떠나갈 것이다.엄마의 뱃속에서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막상 세상에 태어나니 너무나 어지럽고, 무섭고, 겁이 나서 우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떠날 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하여 침묵하는 것이 아닐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사랑한다....
眉柯 허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