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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호흡이 이렇게 깊은 것은 삶의 돌이킴이 그렇기 때문이다 귀를 스치는 후회가 연이어 속삭이는 것은   바닷가 외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멀리 큰물을 흔드는 심장이 있어 녹갈색 파도는 소스라치고 지쳐 누운 물보라 위에 하얀 날들이 흐른다   아직 여린 새벽을 깨우는 갈매기 날갯소리가 차다...
김석봉
보라색 라벤더가 향기로 나를 유혹한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꽃들이 춤을 춘다.가끔 테라스에 나가 앉아 바람도 맞고 빗소리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또 햇볕을 쬐면서 멍하니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바라본다.어느 날 우연히 내려다본 라벤더 꽃 무리에서 황홀한 장면을 보았다. 처음으로 발견한 이상한 몸짓의 새였다.한 자리에 정지한 것 같은데 날개를 계속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그 모양을 가늠할 수가없었다. 잠자리 날개...
김베로니카
침묵 - 임현숙 2016.07.29 (금)
너그러워 보이던 바다에 너울이 인다   다스리지 못한 감정이이성을 제치고창백한 입술 사이로 쏟아지며그름은 없고이유 있는 항변만 파고 드높다   차분히 쌓아가던 모래성 허물어지고으르렁거리다 까치놀로 잠잠해지면수화기에서메일에서 카톡방에서회색빛 거품이 인다   시비의 멀미나는 침묵을 배우기로 했다.
임현숙
‘아니 엊그제 닦아놓은 가스렌지가 왜 이리 더럽지? ‘   투덜대며 저녁을 준비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불편했던지 “나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  라며 난처해한다.   ‘나는일 하고 왔기 때문에 나도 아니야.   그럼 이 집에 나보다 많이 머문 사람은 나 말고 누가 있지?  귀신이 다녀갔나? ‘ 라며 장난을 걸어본다.    바로 그때옆에서 꼬리를 흔드는  우리 집 막내 딸 같은 강아지가...
김난호
어느 여름 한낮 2016.07.22 (금)
숲속 그늘에 앉았다바람과 주거니 받거니 낮술, 서너 사발(沙鉢) 비우는데길 잃은 소낙비에 그만 들켰다 젖은 옷 벗어잔솔가지에 걸어두고벗을 것 더없는 몸 하여,이름 없는 어느 무덤 옆 잔디위에 누웠다까마귀 서너 마리노송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까으악 까악 하시는 말씀“보라, 저기 저 푸짐한 먹거리!”            건너편 산 중턱무르익은 7월의 햇볕아래검은 모자 쓴 교회당 종탑 하나녹 슨 조종(弔鐘)은...
김시극
청포도계절 2016.07.15 (금)
내가 살던 집 뒷마당엔 두 그루의 포도나무가 울타리를 타고 한가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화사한 여름 햇살에 알알이 영글어가는 포도송이를 지켜보노라면 청포도와 함께 스쳐버린 사연들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애국시인이자 독립투사인 이육사의 대표작이며 국민의 애송시였던 청포도의 첫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시는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과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방 땅에서...
권순욱
오십 이후 2016.07.15 (금)
오십 이후                                전상희         사랑은 작은 우주 우주의 평형이다.  따뜻한 차한잔에 별들 떠오르고  무중력에 둥등 떠 가려 한다   지천명을 건너온 하늘 감성의 꽃 만발한 뒤뜰에선 햇볕에 든 그림자조차 아름답구나 딸의 여행가방 안에 넣어둔 나의 꿈조각 같이    ...
밴쿠버 조선일보
4,200km먼 길을 날아온 이후 루퍼스는 지금껏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 달걀보다 작은 집이지만 거미줄로 촘촘히 엮어 지어, 나무를 으깨서 지은 장수말벌의 펄프 집보다 단단해 보였다. 집단 베짜기새의 많은 방으로 구분된 아파트형 집보다 조용하고 아늑해 보였다. 높은 나뭇가지에 자리 잡은 집의...
박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