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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대학 동기 모임에 참석했다. 56학번이니 62년이란 세월이 흘러 간 셈이다. 모두 들 새하얀 머리에 세월의 골이 깊숙이 파인 주름살로 산수傘壽를 바라다보는 모습들인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지난 세월만큼 시간이 흐른다면 내 나이는 124세. 그때 나는 이 모임에 분명 참석하지 못하리라. 게다가 나와 같이 82세인 사람이 겨우 91,308명이 살아 있다니. 나의 죽음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서성이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소름이...
최낙경
목단 자수 2018.06.04 (월)
외할머니와 아랫목에 둘러앉아목단 자수가 놓인 이불을 펼쳐놓고 실타래 감으면벌 나비가 날아 올 듯 했다외할머니는 어린 내게네 생애는 환한 달빛과 같아서고단한 여정에도 시련 없이 향기를 피운다면엉켰던 실타래처럼 잘 풀릴 거라 했다 우리네 삶도 따가운 바늘에 찔리며 목단 자수를 놓듯 붉은 피의 꽃 수를 놓을 수 있어야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날개를 단다외할머니와 둥글게 실타래를 감으며 듣던 꽃 이야기는 잊히지...
강애나
분홍꽃 2018.05.30 (수)
 알버타 북쪽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딱 잘라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건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1월이었다. 주위를 사방으로 둘러봐도 보이는 건 하얀 눈뿐이었다. 꽁꽁 언 이 땅에도 과연 봄이 오는 걸까? 그런 불안감이 들 때마다 난 이삿짐을 쌀 때 거듭 확인하며 챙겨 온 분홍꽃 꽃씨를 펴봤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첫발을 내디딘 건 2000년이었다. 땅을 바꾸면...
박정은
아내의 밥상 2018.05.30 (수)
가만히 받고 보면 내 심장이 한상이다창조의 질서가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상큼하게 양념쳐 있다 밤과 낮채소와 자연사람의 생기까지반찬 하나에우주를 버무렸구나.                  ~•~•~•~•~•~•~입만 즐겁고자 한다면 밥상을 받아들고 할 짓이 못된다. 하나의 나물에 버무려진 바람과 태양, 물과 시간, 그리고 여인의 사랑까지 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수저에 손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맛있는...
김경래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모교인 숙명여고 동창회로부터 그 해 여름에 별세하신...
김진양
마른 꽃 2018.05.30 (수)
마른 꽃 한 송이차마 너를 버리지 못하네서걱이는 바람 소리작은 손바닥에 울리면어머니의 몸처럼가벼운 너진달래 꽃으로 피어나던 너의 봄은지금 어디에뻐꾸기 울음을 삼키던너의 슬픔은 어디에가벼이 떠도는 새털 구름 오늘 아침에도 찾아오신마른 꽃 한 송이
신금재
얼마 전 스페인 여행 중에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이와는 대조를 이루는 당나귀 택시가 있는 미하스의 하얀 마을을 다녀왔다.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중에 “게르니카(Guernica)”라는 것이 있다. 이 그림 속에는 하나같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과 짐승들이 처참한 모습을 하고 공포에 질려 있다. 그림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억울하고 분에 북받친 듯한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까지 한다....
권순옥
어느 봄날 2018.05.24 (목)
어느 봄날열다섯 소녀들의 국어 시간선생님은 봄이 좋단다난 가을이 좋은데또 말씀하신다봄이 좋아지면 늙은 거라고몇 해전부터봄이면 개나리, 진달래빛 스웨터를 입은소녀들이 예뻐 보이고나는 또 병아리처럼양지바른 곳만 찾아든다봄내음 가득한냉이국, 달래 무침이 상에 오르고아이들에게 묻는다어느 계절이 좋으냐고가을이란다마흔 아홉난 봄이 좋은데.
오정 이봉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