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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딸이 대학에 진학해 도시로 가고 나니 방이 두 개가 비었다. 햇볕이 잘 드는 방을 골라 서재를 만들려고 짐을 옮기는데 방 벽에 딸이 붙여 둔 문구가 보였다. ‘Dream, until your dream comes true. (너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꿈을 꿔라!)’ 딸은 매일 이 문구를 보며 꿈을 꾸었나 보다. 글자가 가려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장을 배치했다. 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내게도 꿈이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 슬픈 것 중에 하나는 그...
박정은
봄비에 젖으면 2017.03.25 (토)
자박자박 봄비 내리는 길지난겨울 그림자 해맑게 지우는 빗방울 소리 흥겨워 발걸음도 춤을 추네 반 토막 난 지렁이 재생의 욕망이 몸부림치고 시냇가 버드나무 올올이 연둣빛 리본 달고 나 살아났노라 환호성 하네 늙수그레하던 세상 생명수에 젖어 젖어 기지개 쭈욱 쭉 젊어지는 중이네 나도 초록빛 새순이 될까살며시 우산을 접어보네.
임현숙
얼마 전에 동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6개국을 짧은 일정에 돌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었지만 보고 느낀 것은 많았다. 그중 하나가 그들의 화장실 문화다. 별로 깨끗한 편도 아니면서 대부분 유료화장실이어서 이용하는 데 불편이 컷다. 한 사람당 0.5유로(750원 정도)의 이용료도 만만찮은 데다가, 잔돈 계산 때문에 길게 줄을 서야 했고, 그러다 보니 급한 사람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권순욱
샛바람 강 건너온다눈비 젖던 나뭇가지에수상하게 올라탄다꽃몽울 쌔근쌔근뽀시시 웃음 한창마파람 논밭 질러온다낯익은 산과 들판은짙푸르게 차려입고밤늦도록 무도회장으로갈바람 산 넘어 불어온다낙엽 지는 밤길에볼이 붉은 동자승(童子僧) 서넛밤새워 걷고 걷고 또 걸어새벽녘 아케론* 강기슭에 이르려나높바람 절벽아래 달려온다계곡에 부러 나는 적설(積雪)깊어가는 하얀 침묵, 술 취한 바람이침묵을 잘근잘근 씹는다바람은 오고바람은...
김시극
新春斷想 2017.03.11 (토)
  밴쿠버에 이민을 와 16년을 넘게 사는 동안 금년 겨울처럼 많은 눈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공교롭게 주말을 끼고 폭설이 내린 날이 많아, 매 주일마다 작은 교회에서는 심지어 예배인원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로 이상 폭설이 지속되었다. 시절은 어느새 3월로 접어들어 우수, 경칩을 지나 바야흐로 새순과 어린 싹이 고울 시절에 그야말로 ‘춘래 불사춘’인 셈이다    이번 겨울이 일기(日氣)만 그러했던가?...
민완기
눈보라 2017.03.11 (토)
눈의 터널을 건너 온 하얀 밤의 할리팍스옛 도시의 스토브에접어둔 그리움들을 모아 늦도록 태운다 뜨거워도참을만 해서 참나무고만 고만한 삶 키재는 도토리 나무근심 많은 신문지들가지 많은 삶의 껍데기들활활 높고 거센 숨결 밤새 몰아쉬고나무가지 안고 몸서리치는야수 같은날  한기가뿌리째 타는뜨거움 안겨줄 천둥불이 온다면그 곁에밤새도록 무너지고 싶어라 무수히 눈 맞추며깊도록 잠못 이루는투명한 하늘과푸른 눈보라
전상희
아침 산책 2017.03.04 (토)
올해가 몇 년인지 가끔은 그렇다. 016년인지 017년인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짧은 시간 그런데도 지루하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만 간다. 내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 해서 하는 것이 있다. 새벽 5시 기상 새벽 기도를 마치고는 4ㅡ5Km를 걷는 것이다. 경관이 좋은 바닷길이다. 이 길은 만든 지 100년이 넘는 길이라 한다. 이곳 선조들의 노고에 우리들은 즐기며 사색 하기에 참으로 좋은 길이다. 이러한 곳 가까이에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김진민
꽃의 짓 2017.03.04 (토)
상큼하다 했더니 웬걸 앙큼하다소리 없이 피더니 임의 마음 하나 훔쳐갔다정신줄 놓은 사이에 내 공들인 사랑은 헤벌쭉해졌다새침한 것, 발랄하기만 하다봄을 웃음의 공동묘지로 만들어 놓았다온갖 죽어야 할 것들이 즐비한 땅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피어정신줄 놓고 있어도 온 땅이 히죽거리게 하고 있다괘씸한.
김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