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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 할머니 2017.09.15 (금)
할머니는 내게 항상 친절 하였다. 언제나 보아도 남자들이 입는 밤색 재킷에 두터운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일흔을 훌쩍 넘어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등과 허리도 구부정하지 않아 꼿꼿한 자세로 일관 하였다. 짧게 잘라 뽀글뽀글 파마한 할머니들과는 달리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가르마타서 쪽지은 머리가 남 다른 인상을 풍겨 주었다. 젊어서는 한 인물했을 법한 단아한 얼굴로 복사꽃같던 처녀 시절과 새 각시때를 저절로 떠 올리게 하였다....
오인애
초가을 2017.09.15 (금)
마로니에 가지 사이로 소슬바람 지나네요   어스름 강둑 위에 낙엽이 구르네요   귀뚜리 애틋한 울음 위로 달이 뜨네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을이 오고 있네요.   친구 있는 먼 그곳에 내 마음 서성거리네요     Early Autumn     Through the maronnier branches A cool wind is passing   On the dusky river bank Fallen leaves are drifting   Over the crickets ardent chirp The moon is rising   Slowly, oh, so slowly Autumn is coming   A friend far far away, and there My...
안봉자
어렸을 때는 달걀귀신의 공포를 느끼며 자랐다. 시골 태생 어린이들은 특히 그랬다. 달걀귀신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위키백과에 나타나는 달걀귀신은 대한민국에서 소문으로 퍼진 요괴의 일종이다. 계란에 가느다란 팔다리가 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걷는다. 걸을 때 머리를 바닥에 대고 걷기 때문에 "통, 통, 통" 소리가 난다. 거꾸로 걷다 보니 화장실 문 아래 틈새로 음흉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이런 달걀귀신도 있다...
이종학
밴쿠버에 이민 또는 유학 오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사람 조심하라는 것. 특히 모르는 사람인데도 친절하게 다가와 타국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는 자는 십중팔구 사기꾼이며, 이익이 있으면 ‘입의 혀’같이 굴며, 없으면 뒷마당의 ‘개밥그릇’ 팽개치듯 하는 자가 모두 한국인이란다. 그 중에서도 오래 밴쿠버에 산 사람들 중 일부는 텃세를 부리거나 매사 좋은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로 기를 죽이기 때문에 처음...
이원배
이른 아침 스프링클러를 들고 잔디밭으로 나서는 나의 마음은 몸처럼 무겁다. 일찍 일어났으니 잠에서 덜 깨어 몸은 빠릿빠릿하지 못하다. 하지만, 마음의 중압감은 다른 곳에서 온다. 누렇게 타들어 가는 잔디를 보면 심란하다. 봄내 애써 가꾸어 가지런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던 잔디가 여름의 건조하고 뜨거운 햇볕에 죽어가는 모습이라니. 이런 잔디밭을 보고 있으면 애써 쌓아 올린 탑이 허물어지는 느낌 같은 일종의 허무감이 밀려온다....
그래그 여름은 작열했을 뿐장미 한 송이 피워내지 못했다시뻘건 가시들만 앞다투어 속살을 뚫고 나왔다   입 벌린 독사의 송곳니   그랬다부끄럽게도 그랬다   불거져 나오는 것들이 가증스러워 장미는 쫓기듯 사막으로 떠났다   시를 앓았고손가락을 잘랐고 철철 흐르는 검붉은 오열 마중물인 양 탐닉했다    그랬다파렴치하게도 그랬다   해 질 녘 가시투성이 지친 선인장을 만났고사막에서 아스라이 수평선을 품었다...
백철현
해마다 이맘때면 아득한 고향의 여름 밥상이 그리워진다. 제철 채소와 집에서 담근 장으로 정갈하게 만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던 밥상이었다. 보리밥에 아욱국, 노각 무침, 호박 나물, 간 고등어 찜, 통밀 칼국수---, 텃밭이 둥근 소반 위로 옮겨 앉은 소박한 차림새였다. 무더운 여름, 혀의 미각 돌기가 살아나는 강된장과 노각 무침으로 밥상을 차려본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기억의 맛을 찾아서. 지난해보다 한 달여 늦은...
조정
엄마는 참향기로운 꽃이어요곁에만 있어도기분이 좋아져요엄마라는 꽃은시들지도 않아요갈수록 향기가더해만 가요.
이봉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