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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시가을인가 봐그토록 뜨겁던 바람이 그믐달의 싸늘한 눈매를 닮았어 가로수 잎이 뱅그르르 바람개비 되었네   가을이 오면 여름이 떠나가듯이 꿈의 내일이 오면  시련의 오늘이 지나간다지   황금 가을이 내게 올 때 제비처럼 박씨 하나 물고 온다면 금 나와라 뚝딱 임 나와라 뚝딱   어려서 읽은  동화 속에선 늘 그랬어   아, 가을아  옛이야기 같아라.  
임현숙
가을 산사에서 2017.10.13 (금)
가을 산사에서 하룻밤을 재샌다깊이 잠든 별도 쳐다보고솔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도 들으면서큰 스님의 이야길 듣는다내 진작 어려서부터 중은 안 되더라도절을 가까이 하면서 살았더라면 스님의 깊은 언저리라도 배웠을 것을밤 깊어 스님은 풍경 속으로 잠들고슬프도록 적막한 고요 속에서나는 홀로 귀 세운 짐승처럼어디선가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오늘 밤은 이 산사에서 귀를 뉘이고내일은 또 어느 곳에 가서 잠들...
이영춘
어떤 서운함 2017.10.06 (금)
요즘 들어 왠지 자꾸 서운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일에도 그렇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서운해지곤 한다. 오늘도 아내의 처사가 당연한 것인데도 괜스레 심통이 났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주말에 친정어머니 생신엘 간다고 했었다. 난 세미나가 있어 가지 못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다들 멀리 가 있으니 아내 혼자 가는 것으로 해 두었었다. 헌데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처제와 처형한테서 계속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언제 갈...
최원현
어제 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올해 윤달이 들어서 엄마의 수의(장례에 입히는 베옷)를 해 놓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얼마씩 돈을 내자는 것이었다. 흔히 옛사람들은 윤달이 들어있는 해에 수의를 준비해 두어야 좋다고 했다 피안으로 떠나려고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예로부터 나이 일흔은 고희라고 불리우지 않았는가? 어머님은 이보다 훨씬 넘으셨고 나는 이것의 절반의 이르니 사람의 수명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종구
가을을위한시 2017.10.03 (화)
비바람몰아친후 가을이내려왔습니다 초록잎새를누비던볕살도사위고 배반의장미도이울었지만 정적깃든뜨락이 출가하는비구니같아 그야윈몸을어루만집니다 욕(慾)의머릿채를잘라내고 색(色)의청녹을닦으며 들끓던여름골을벗어나 더이상덜어낼게없는가비야움으로 산문(山門)에들어섭니다 바람의밀사에 등떠밀린잎새날아와 말강한산사뜨락에 마음심(心)자차곡입니다
김해영
이런 가을날 2017.09.29 (금)
바람이 잠자는푸른 가을 하늘은처음 당신을 만난 그날처럼마음이 두근거립니다바삐 지나가던 구름도 편안하게 쉬었다 갑니다떨어질 듯 흔들리던 잎새도 조금 안심을 합니다안간힘으로 버티던 깃발도 잠시 숨을 돌립니다이런 가을날은지루하지 않은 좋은 친구를 만난 듯함께라서 기분 좋은 친구를 만난 듯언제라도 웃음 주는 친구를 만난 듯그런 마음입니다 바람이 쉬는 날맑은 가을 하늘은우연히 당신을 보았던 그때처럼가슴이 콩닥거립니다
나영표
그녀는 밴쿠버의 한 사립 지역사회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이 학교의 다른 대부분의 교사들은 15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하나의 반을 맡아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전 과목을 모두 가르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녀는 한 번도 하나의 반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이 나이든 이민자인 학생들의 영어는 듣기와 말하기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부터 그랬다.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학교 도서관 2층에 마련된 러닝센터에 오면 그녀와...
박병호
녹색꽃양배추 2017.09.22 (금)
보리꼬리 이천 원 경산, 자인 장 할머니가 파는 거란다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 한 장 그 속에 꼬리 달린 보리 된 줄 모르고 조그맣고 낡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짝을 지어 물든 꽃봉오리 뭉치 수줍게 푸르른 녹색꽃양배추 보루바꾸 꼬리표까지 달고 있다 남의 나라 말소리 참 재미지게 따 온   할머니 글씨체는 정겹고 또 맛깔스러워 좌판 위 저 보리꼬리 자꾸만 살아나 실시간으로 싱싱해진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그 할머니 손가락 마디마다...
강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