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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이면 이 땅에 태어난 지 60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이 노래 제목과 같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었으면 하지만, 사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돌아보면 내세울 만큼 딱히 이룬 것이 없고, 그나마 시간만큼은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왔다는 자괴감에 그만 마음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움츠러들고 만다. 사실 요즘은 ‘갑장이’들을 만나면 반갑고 서로 위로가 되는 듯하여 동갑 모임이나 동갑끼리 운동을 자주 하게...
민완기
사람이 사랑보다 어렵다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하지만사람은 시기하고 자랑하기에만 바쁘다자음 하나 한 끗 차이 인데먼저 나온 형님은 양보 할 줄 모르고동그란 구멍속에 네모난 돌을 끼워 맞추는 모습에아우는 또 다시 술잔을 채운다연필로 살짝 그린 흔적인데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아살며시 가을비 젖은 낙엽으로 덮어 가리워 본다젖은 낙엽은 햇볕에 바싹 말라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데마음의 낙엽은해가 뜨지 않는 청춘의 밤에...
전종하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무슨 소릴까. 아들 방문에 귀를 댄다. 한쪽에선 방송소리, 아이의 중얼거림 들리고, 또 다시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이때는 온 집안 식구가 쥐 죽은 듯해준다. 숨 막히지만 1년에 10번 이상 시험을 보니 어쩔 수 없다.    “엄마, 나 중학교 졸업 후 독립한 거 알지?”   한창 부모 간섭이 필요한 데, 지가 다 알아서 살겠다며 아무 상관도 어떤 걱정도 하지 말란다.    만 15세,...
박성희
고향의 그림자 2019.10.15 (화)
정든 사람도 떠나고, 그리운 마음도 떠나고지지리 못 살든 안타까움 마저모두 떠나버린 고향낯선 이웃 같은 허전한 기분이 드는 옛집고향을 떠나면서기억에서 잃어버리고 사는 고향가녀린 코스모스처럼 가엾은 어머니덜 익은 땡감처럼 무덤덤하던 아버지형아, 형아!까까머리 동생이 숨 가쁘게 부르던 소리언제나 풍겨오는 퀴퀴한 화장실 냄새좁은 밥상에서 부딪히는 그릇 딸그락 소리컹컹 짖어 대는 덩치 큰 누렁 진돗개부대끼며 살아온 그런...
나영표
   “헬로 에브리원! 마이 네임 이즈 H. 청년기의 황금 같은 5년, 캐나다 각 분야 지도자를 소리 없이 양성하기 위한 이곳에서 함께 뒹굴 제군들의 첫 수업을 맞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7대1, 세 단계의 어려운 관문을 뛰어넘은 호기심 가득한 여러분들을 위한 이 수업은 푯대를 향한 문학적 접근이 아닙니다. 수천 년 전의 수사학적 접근을 현대에 시도하는 실전 훈련입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표현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질문과...
박병호
죽는다는 말 2019.10.07 (월)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지난해 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학교에 불려갔던 일이 있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던 터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조금은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놓고 있다가 불쑥 학교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크게 당황했던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먹거리들을 사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카트에...
윤의정
가을 철암역 2019.10.07 (월)
오후 세 시의 그 꼭지점에서햇살이 길게 모로 누우면철길 저 너머에서 세 시를 알리는 기차는푸우-푹-푸우-푹 흰 연기를 토하며 달려오고열세 살 그 소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혹 먼 이방의 한쪽 문을 그리워하듯산비탈 조그만 쪽문을 향해 아슬히 눈 멈추곤 했는데어느 날 도시락을 싸 들고 우리들 창자보다 긴 터널로 떠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공복인 듯 탄가루 먹은 하늘은 검은 연기로 쏟아지는데전설처럼 푹푹 쏟아져 내리는데아버지...
이영춘
긴 열차가 깊은 산속을 느릿느릿 달린다.나이가 들어 석양이 지척인데 느긋이 앉아 기차여행을 하는 호사를 누린다.기차가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것은 산이요 호수요 들판이다. 전망 칸이 4개, 식당차가 2개, 침대칸을 포함하여 모두 25개의 차를 연결하였다. 대륙을 관통하는 VIA Rail 열차다.밴쿠버의 산군 10명이 의기투합하여 지난 3월부터 준비해온 여행이다.9월 첫 주,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산야가 싱싱한데 열차는...
늘산 박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