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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애써 여름을 밀어낸다지지못한 여름 민들레는 길 모퉁이마다 흩어져 남아있는데성급한 가을은 옷들을 갈아입는다그중 가장 고운빛깔로...어둑어둑 해 저물어가면빌딩숲 사이사이가을이 석양과 함께 비집고 들어온다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 끝자락은외로운 새 한 마리와 날아본다멀리 더 멀리바람결에 날아가볼 까나내 엄마계신 곳까지...엄마계신 병원 창문 두드려바람아 전해 주렴내가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나도엄마도태평양...
유진숙
“나 집에 가고 싶다. 애비야!”텔레비전에서 할머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 손을 거세게뿌리치고 요양병원을 빠른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뒤따라 나왔어요.“요즈음 요양병원이 고려 시대 고려장 역할을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저 할머니 어린애 같아요. 불쌍해요. 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는데 뿌리치고 혼자 가버렸어요. 저아저씨 나빠요. 훌쩍훌쩍!”“저런, 하지만 그럴 만한...
이정순
물소리로 밤새 뒤척였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객창에 들리는 계곡 물소리가 나그네 심정을어르기도 하고 휘젓기도 하여 뜬눈으로 한밤을 보내고 새벽녘 에야 단잠이 들었다. 어찌물소리를 탓하랴. 강릉이라는 말만 들어도 잠재우고 쓸어 덮었던 그리움의 올이 낱낱이살아나는 내 천형의 한을. 올 수필의 날 행사가 강릉에서 열린다는 통첩을 받은 날부터 내 가슴에는 그리운 얼굴들이영상으로 지나갔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강릉 어딘 가에 살고...
반숙자
추석, 그 아픔 2020.10.14 (수)
엄마야, 엄마야뭐 하는데맛있는 냄새 나네하나만, 한 입만바쁜 엄마 치맛자락 잡고엄마, 엄마 보채던 어린 자식오냐 오냐 달래시며 힘겨웠던엄마의 추석 고생했어요여자란 이름으로당신을 무시하려 했었고아내란 멍에를 씌워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어도엄마란 인생으로무거운 가슴을 안고 살았을 그 세월엄마, 많이 힘들었지요.울지 마오, 엄마, 엄마당신의 마음을 아직잘 몰라요그런데고마워요아버지, 아버지요뭐 하시는 데요돈은 왜 안...
나영표
중남미 선교지에 나가 있다가 3월 초에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14일간 자가격리 (self-Isolation)를 철저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키란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다. 사람들사이에 적어도 6 피트 이상 떨어져 살란다. 그렇게 7개월째 살아가고 있다. 삶이란 너와 나의 만남에서시작하는데 Covi19 는 만남의 자유를 빼앗아갔다. 삶의 진정한 멋은 열정을 쏟아 일을 할 때라했는데, 하는 일감도 빼앗겼다.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해...
심정석
초혼(招魂) 2020.10.05 (월)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기어이 창가에 나앉는다숨죽은 거리, 눈익은 정적이애잔하다보고 싶다*삼도천에 재 뿌리고 자넬 보내던 날어이없게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자넨 돌아오지 않는데도두 손 모으고 고백해야 할 우리의 만신창이 송가(頌歌),묵은 약속으로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엎드려 쏟아내야 할 우리의 선혈같은 감사,은빛 봇물로 차오르고 있지 않느냐돌아오라이승과 저승이래야겨우 구만리한 번이라도...
백철현
흰 꽃 향기 2020.10.05 (월)
1. 숨어 피는 꽃꽃차를 마신다. 향긋한 기운이 입 안 가득 녹아 든다. 다시 한 모금 머금어 본다. '연꽃 만나고가는 바람'맛이 이러할까. 끓인 계곡 물에 꽃을 띄우고 한 소절 시구로만 가미하였으니 맛이야그저 밍밍할 밖에. 향기로 기분으로 마실 일이다.엊그제 산행 중에 오솔길에 흩뿌려진 작고 햐얀 꽃송이들을 만났다. 금세 떨어질 듯 생기 있어보여 주섬주섬 집어 올려 코끝에 대어보았다. 향기가 참 달았다. 차를 끓여보면 좋을 성싶어...
최민자
반나절의 생生 2020.10.05 (월)
압박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들,시간은 점점 헐거워지고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우유를 먹는다헐거워진 시간들이 온몸을 탱탱하게 당긴다생의 반나절을 탱탱하게 조이던 여름, 여름의 끝 별,물고기 비늘처럼 풀어진다물푸레 나뭇잎들이 별처럼 쏟아지는 밤,꽁꽁 묶였던 몸이 나른한 오후처럼 넘어간다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지평선물속의 고기들은 다 죽어가고압박 붕대에 묶인 사람들이길 없는 길을 건너간다허공에서 잠든 길, 꽉...
이영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