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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는 이별 2020.07.20 (월)
금요일 오후 1시 30분, 권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일 저녁 부군 장로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양치를 하기 위해 2층 욕실로 올라가셔서는 그만 그대로 쓰러지신 후, 6일을버티시다가 결국……권사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이민 오던 해, 첫 주일 예배 때였다. 이제 막 개척한 지 6개월된 작은교회를 우연히 한국에서부터 알게 되어 이민 가방을 미처 다 풀기 전에 맞이한 주일날, 설레고 또떨리는 마음으로 4식구가 교회를 나가...
민완기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콕 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여러 자잘한 부침이생기더라.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친구들과 뛰어놀던 일상을 보내던 아이들이 갑자기 아무것도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꽤 힘들었을 법도 하다. 자기들끼리 도 자꾸 싸우고별거 아닌 것에도 쉽게 화를 내며 짜증을 냈다. 당연히 아이들은 매일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경향이 늘어만갔다. 엄마인 나는 그런 모습이...
윤의정
사슴 2020.07.20 (월)
옛 시인이 노래했지모가지가 길어 슬픈 너를관이 향기로운 짐승 너를무척 높은 족속이었다고 모퉁이 나지막한 풀밭에지친 다리 쭈욱 뻗고 앉아우물 같은 눈으로 길어 올린길다란 속눈썹 어여쁘다   윤기 빛나던 너의 옷자락거뭇거뭇 저승 꽃 피어나고시간의 더께 덕지덕지 붙어주름진 모가지가 되어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그저 편편便便한 얼굴을 하고마주한 채 바라보는 세상눈이 깊어서 자꾸 아픈 너 무명의 시인은...
강은소
“악! 엄마!”갑자기 누나가 소리를 질렀어요. 집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큰엄마 큰아빠 모두가놀라서 달려 나왔어요.“하나야, 왜 그러니?”큰엄마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달려 나왔어요. 누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어요.“누나! 지렁이야. 지렁이는 안 무서워.”“징그럽잖아. 어서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밟아.”“지렁이는 빨리 도망치지 못해 누나! 생명이 있는 건 죽이면 안 돼.”“그래도…….”“허허! 생명이 있는 건 함부로...
이정순
통성명했어요 2020.07.14 (화)
정원 끝부분 양쪽으로 같은 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자라고 있던 나무들이다. 다른 곳은 잡풀이 많아 다 걷어내고 정원수들을 심었지만 이 나무들은 그대로 두었다. 우리 집에 있는 어느 나무보다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다. 이름도 모르는 나무지만 베어내는 것이 아까워 그대로 두었는데 생명력이 좋은 지 다른 나무들보다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왕성한 성장력 빼고는 특별한 매력이 없었다. 수형이 멋지거나 예쁜...
김선희
틈새 2020.07.14 (화)
언덕 넘어 날아온 풀 씨모퉁이에 오롯이 자리 잡는다틈새 사이로 피어오르는 들풀잘났네 못났네 다툴 사이 없이키 순서대로 고개를 내민다 빈틈만 보이면 올라서기 바쁜 세상살이 올려다보느라 고개 아픈 내게무릎 굽히며 내려다보게 하는 민들레 모든 걸 내려놓고 하얀 씨방이 되어가볍게 날아오르며 나를 힐끗 뒤돌아본다
유우영
33도 2020.07.06 (월)
태양이 가까우면 호들갑스럽고음식물이 열에 빨리 부화하는 건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사냥감만 겨냥한 채 얼마나 많이우리는 어중간해 했던가나사를 뽑다 말고어설프게 남겨둔다든지진입구가 통제된 극장 앞에서암표상과의 흥정한달지행인으로 드라마 한편 출현하고온 친척이 눈을 비비며 찾게하는검지와 엄지 사이의밀어 넣다 만 방향 감각의 잔해과연 대단하다팽팽한 줄 위로 다리 한 짝 올려놓는 일만큼찍찍이 위로 파리 날개 걸터앉은...
김경래
8・15 해방을 맞아 일본 강점기를 벗어난 지도 75년이 지났다. 하지만 친일 논쟁은 여전하다.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동면 산수골이란 마을에서 컸다.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뻥 뚫린산골 마을이다. 일곱 살 되던 해 소학교에 들어갔다. 고개를 넘고 개천 하나를 건너 한 10리쯤걸어서, 면사무소 와 주재소(파출소)를 지나야 내가 다니는 속초 소학교가 나온다. 나는 매일주재소 앞을 지나야 했다. 괜스레 두렵고 무서웠다. 긴 칼을 찬 순사가...
심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