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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선물 2020.08.24 (월)
할머니의 볼록한 발등에 손을 댔다.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았다. 보통은 1, 2주면 가신다는데…“이제 통증은 가셨어요? 곧 고모가 오실 거예요.” 귀먹은 할머니의 귀에 속삭였다. 아직 주름 하나 없이탱탱한 할머니의 얼굴이 고운 주름 꽃을 펼치며 미소 짓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데창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왔다.달칵 문이 열리자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고모!’마음속으로만 고모를 불러 보았다. 한 번도 큰 소리 내어...
박병호
나의 공주님들 2020.08.24 (월)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공주하면, 백설공주를 연상하게 된다. 착하고 아름다움의 최고모델로서 천사같고 요정같은 여인으로......고 3때 학내 체벌사건에 항의하는 데모현장 입구를 막은 바리케이트 위에서 온종일 담임을막아선 죄 때문에, 한 대기업 회장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가장 열악한 시골 형광등공장 생산라인으로 쫒겨 갔다.뜨거운 개스불로 형광등 유리를 자르고 붙이느라 매캐한 연기에다 실내 온도가 무려45도에 달해 숨이 턱턱...
이은세
바닷가 캔버스 2020.08.24 (월)
     점점으로 찍힌 섬 들에     이어지고 끊어지는 수평선     먼 곳 소식은 그렇게     끊어지고 이어지듯 조금씩     여기 바닷가에 닿았다네     온갖 세상의 잡다한     살아가는 수단의 비법 과      오래 오래 생의 행복을 이어 간다는     백 년도 익지 않은 풋풋한     풋내 그럴싸한 도리 들...     시간 속 이리저리 부딪쳐...
조규남
화초에 물을 주었어 너도 분명 예쁜 장미가 되겠지화초에 정성껏 물을 주었어 내 사랑을 받아 화려하게 피어나라고젠장, 네가 찔레라는 것을 알았을때 나는 밤새 실망하고 말았지보잘것 없이 축처진 너에게 어서 일어나 빨개지라고 외쳤어다른 장미 잎을 떼어 네 머리에 붙여 애써 위로했지만넌 여전히 그곳에 어울리지 않아형형색색의 장미밭에 옥의 티가 되어버린 너를나는 내일 해가 뜨면 꺾어버릴꺼야이런, 너에게도 날카로운 가시가...
전종하
‘낄끼빠빠’ 2020.08.17 (월)
지난해 가을, 붓글씨(서예클럽)모임에서 함께 만나는 J형이 다음 날 송이버섯을 채취하러 가자고제의했다. 나는 캐나다에 이민 온 지 올해로 26년이 되었지만 아웃도어의 진수로 알려진 송이버섯채취에는 경험이 없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J형이 주문하는 준비물(호루라기와 나침반)을찾으러 여러 군데를 다녔다. 먼저 한국 문방구점에서 호루라기를 샀고, 나침반도 완벽하지는않지만 소형 열쇠고리에 붙어 있는 것을 준비했다.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이종구
기억되는 인상 2020.08.17 (월)
남편의 건보팀에서 13년 선배 되시는 분께서 생전에 그의 부인을 극진하게 아끼시며 돌보시던분이 있었다. 그 부인께서 무릎이 튼튼하지 못하시어,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게 되면 꼭옆으로 오시어 부축하셨다. 자동차 타러 가실 때에도 옆에서 부축하시고 같이 정답게 걸어가셨다.식당에서 식사하실 때에도 그 남편 되시는 분은 남편팀 식탁에 속하여 떨어져 앉아 계셔도 부인을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시기에, 우리는 “그윽한 눈길”로...
김현옥
개스타운 2020.08.17 (월)
도시 사람들이 흘린 빵 부스러기먹고 사는 비둘기 같은 사람들 사계절 갑옷같은 옷을 입고날개 꺾인 새처럼좁은 건물 처마 밑에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누워시계탑 시계바늘처럼강가에 낚시하는 사람처럼강물에 흘러가는 물고기처럼스카이 트레인이라 불리는철마 타고 일터로 가는 군상들표정 없는 여권사진같은 얼굴너도 나도 다를 것 없는 무표정한 하루다운타운 워터프론트역 나서면집시 냄새담은 빗물이 숲속 이끼 낀 나무처럼엔틱이라...
전재민
예정했던 모국 방문은 한바탕 꿈이 되어 버렸다. 언니와 형부께 드리려고 한 올 한 올 따다가 말려예쁘게 포장 했던 고사리 묶음 단은 다른 선물과 함께 아직도 저만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그렇게 뒤 헝클어 놓았다. 넉 달 이상을 자가 격리 아닌 격리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따분해지고 어딘가 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내 속에서기어오르고 있을 때, 마침 아이들이 오카나간 지역으로 3박 4일 가족 여행을...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