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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어느 저녁 2020.10.27 (화)
크랜베리 다 걷어버린 뒤남겨진 차가운 물바다를 따라나란히 열린 길을 걷는다길은 곧게 뻗어 있는데걸음이 자꾸 비틀거리는 저물녘재색으로 가라앉은 하늘 아래바람은 저 혼자 쓸쓸히 떠돌다와락 현기증을 몰고 달려든다가을이 흐르는 길목에서갈피를 잃고 주춤거리는 발걸음넋 놓고 바라보는 시간의 끝자락잠시 선명해지듯 다가오다가어느새 다시 희미하게 멀어지는길은 언제나 황량한 들판이다물 위로 둥둥 떠 오르던크랜베리 그 붉고 단단한...
강은소
악수(握手) 2020.10.21 (수)
악수(握手)                    악수? 무슨 악수요?제가 친구나 이웃들과반갑게 악수를 한 것이 언제였나요?이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창궐 이후그건 ‘팔꿈치 건드리기’로 대체되지 않았나요?팔꿈치 건드리기? 그게 무슨 말이죠?친구의 팔꿈치는 모든 신체 부위 중에서가장 관심이 적게 가는 부분이 아니든가요?솔직히 말해서, 누가 타인의 팔꿈치에눈길이라도 주게 됩니까?친구가 팔꿈치에 부상이라도...
안봉자
큰 아이가 결혼 6년만에 쌍둥이를 출산하였다. 나이 들어가며 가슴 설레는 일이 그리 많지않았는데 이토록 가슴이 설레고, 기뻤던 순간이 근래 있었던가 싶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할따름이다.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만남’의 연속인 셈이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일가친척의 사랑과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만나고 그리고 마침내손주를 만나게 된다. 물론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그...
민완기
가을 풍경 2020.10.21 (수)
“아이참, 자꾸 누구지?”엄마는 현관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요 며칠 전부터 계속 누가 사과, 도토리, 솔방울 같은것들을 현관 앞 화분 구석에 얌전히 놓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짖궂은 동네 아이가장난하나 생각했는데 몇 번 되풀이되니까 누군가 나쁜 짓을 하려고 우리집을 표시하는 것은 아닌가의심도 되었습니다. 밖에 급히 나가느라 치우지 못하고 그냥 두었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보니깨끗이 사라진 것을 보았을 때 그 의심은...
신순호
가을은 애써 여름을 밀어낸다지지못한 여름 민들레는 길 모퉁이마다 흩어져 남아있는데성급한 가을은 옷들을 갈아입는다그중 가장 고운빛깔로...어둑어둑 해 저물어가면빌딩숲 사이사이가을이 석양과 함께 비집고 들어온다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 끝자락은외로운 새 한 마리와 날아본다멀리 더 멀리바람결에 날아가볼 까나내 엄마계신 곳까지...엄마계신 병원 창문 두드려바람아 전해 주렴내가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나도엄마도태평양...
유진숙
“나 집에 가고 싶다. 애비야!”텔레비전에서 할머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 손을 거세게뿌리치고 요양병원을 빠른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뒤따라 나왔어요.“요즈음 요양병원이 고려 시대 고려장 역할을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저 할머니 어린애 같아요. 불쌍해요. 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는데 뿌리치고 혼자 가버렸어요. 저아저씨 나빠요. 훌쩍훌쩍!”“저런, 하지만 그럴 만한...
이정순
물소리로 밤새 뒤척였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객창에 들리는 계곡 물소리가 나그네 심정을어르기도 하고 휘젓기도 하여 뜬눈으로 한밤을 보내고 새벽녘 에야 단잠이 들었다. 어찌물소리를 탓하랴. 강릉이라는 말만 들어도 잠재우고 쓸어 덮었던 그리움의 올이 낱낱이살아나는 내 천형의 한을. 올 수필의 날 행사가 강릉에서 열린다는 통첩을 받은 날부터 내 가슴에는 그리운 얼굴들이영상으로 지나갔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강릉 어딘 가에 살고...
반숙자
추석, 그 아픔 2020.10.14 (수)
엄마야, 엄마야뭐 하는데맛있는 냄새 나네하나만, 한 입만바쁜 엄마 치맛자락 잡고엄마, 엄마 보채던 어린 자식오냐 오냐 달래시며 힘겨웠던엄마의 추석 고생했어요여자란 이름으로당신을 무시하려 했었고아내란 멍에를 씌워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어도엄마란 인생으로무거운 가슴을 안고 살았을 그 세월엄마, 많이 힘들었지요.울지 마오, 엄마, 엄마당신의 마음을 아직잘 몰라요그런데고마워요아버지, 아버지요뭐 하시는 데요돈은 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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