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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되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어 거친 야생으로 들어가곤 한다. 세포를 갉아먹는 좀을 몰아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험한 트레킹을 가느냐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노스 코스트 트레일(North Coast Trail) 행을 결심한다.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해변에 밤의 도포자락을 핥는 모닥불, 달빛을 받아 밤새 반짝거리는 플랑크톤의 유영,...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외로운 사람들이외로움을 밟으며 오르는 산길에서외롭지 않은 산을 만난다그 산에 피는 꽃들 외롭지 않고그 산에 사는 산새 울음 외롭지 않고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 언제나처럼그런 모습으로 다가선다 외로운 발걸음들이산을 만나 외로움을 푸는 곳제 마음이 되어간다<▲ 사진= 늘산 박병준 >
유병옥 시인
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놀미욤 들에게 물으니저 수채화 물감빛 하늘에서 오지 연둣빛 혀로 답한다아니야, 샛바람이 봄내를 싣고 와 겨울을 휘적여 놓던데회색빛 가신 하늘이 고개를 가로젓는다웬 걸,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여인네 옷자락에서 묻어나는 거야바람이 속삭인다 뽀초롬 연둣빛 혀를 물고 있는 들과한결 가벼워진 하늘빛,향내를 품고 있는 봄바람이정숙한 여인네를 꼬드겨 일으킨 반란인 걸 어드메서 오는지어느메쯤 떠나갈지아지 못하는...
김해영 시인
아직 밖이 어두워 잠자리에 있는데 전화가 ‘때르릉’ 울린다.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은 어머님이시다. 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음성이 전선을 타고 건너온다."눈이 많이 오고 있다. 꼼짝하지 말고 집에 있거라." 하신다.“예”하고 대답했는데, 이때 70넘은 아들은 초등학생이 된다.어머니는 지금 양로원에 가 계신다.집에 계실 때, 어머님 방은 2층에 있었다. 물 한 잔을...
늘산 박병준
내 몸은 천칭자칫 어느 하나를 욕심내면그만 기울어져 넘어지는 세상일에 치우치면시가 막히고글쓰기에 몰두하면세상 것이 우스워진다 어느 날 헤어날 길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끝간데 없던 호기는 다 사라지고 절망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우울증인가 자가진단을 했다마음이 허해지자 몸에 병이 왔다 병이 들고 바짝 정신이 든다마음과 몸을 나란히 들고 저울질을 한다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팽팽하다 아, 미루어둔 파릇한...
김해영 시인
간밤엔바람이 불었소미친 듯이 불었소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이바람은 그렇게 불었소 헛된 아집의 각질과 빛 바랜 이름을명찰처럼 달고 있는 나무 둥치채찍처럼 후려치는매바람을맨 몸으로 견디어야만 했소 속이 꽉 찬 참나무처럼반듯하고튼실하게 살아왔다고허세 부리던 삶의 쭉쟁이를 아프게 아프게 훑어내야 했소 광풍이 헤집고 간 숲은고요하오……가만,귀 기울여 보오바람의 발자국이 또 다가오는 듯하오 <시작메모>간밤 미친...
김해영 시인
11월의 첫 날에  -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에 또닥또닥 빗줄기가 대지를 두들긴다남루한 몸을굽은 지팡이에 의지하여살아온 길을돌아보는 망설임과또 어둠을 헤쳐야 하는두려움이 배어있다슬픔이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좌절이 새로운 희망의 싹이라는 걸까마득히 모른 채걸어온 미망의 길타닥타닥 빗줄기가 새벽을 깨운다긴 밤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야경꾼의 얕은 기침소리저 짙은 절망 끝에는 여명이혼란의 뒤에는...
김해영 시인
                          위로 말하지 말 걸 네 아픔을 안다고어찌 속 빈 대처럼 허황한 말로 위로하러 들었던가뼈마디 자근자근 방망이질하고육신이 허물어지는 이 고통을…차라리 아무 말 말고 손이나 따스이 잡아줄 걸 아는 척하지 말 걸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겨울 지나면 봄이 오지 않겠느냐고대숲 훑고 가는 바람처럼 어찌 그리 허술히 대했던가비접도 제...
김해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