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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만 건 적체에 칼 빼든 캐나다, 이민 신청 대량 취소 논란

Justin Shim justin.shim@cannestimm.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5-09-29 07:14


캐나다 정부가 지난 6월 상정한강한 국경법(Strong Borders Act)’으로 불리는 이민법 개정안 C-2가 국회 논의 단계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경 보안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이민부(IRCC)에 수천 건의 신청서를 일괄 취소하거나 보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9 17일 현재 법안은 하원에서 두 번째 독회가 진행 중이며, 전날인 16일에도 장시간의 토론이 이어졌다. 보수당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히면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300개가 넘는 단체가 법안 철회를 촉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난민 권리 침해와 행정 자의성 확대를 우려하고, 법조계는 절차적 정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결국 이 법안이 단순히 국경 관리 문제가 아닌 캐나다 이민 제도의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임을 강조한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심각하게 불어난 이민 적체가 자리 잡고 있다. 2025 7 31일 기준 220만 건이 넘는 신청이 계류 중인데, 영주권 신청만 89만 건, 임시 거주 신청은 107만 건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속도다. 영주권 신청의 절반, 임시 거주 신청의 38%가 이미 법정 처리 기한을 초과했고, 신청자들은 수년째 대기하는 동안 불안정한 신분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연장 정책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정작 제도 개편이 뒤따르지 못한 결과 시스템은 과부하에 빠졌고, 정부는 이번 법안을 이를 해소할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리 아난다상가리 공공안전부 장관(Gary Anandasangaree, Minister of Public Safety)은 코로나19 당시 임시 체류 허가 발급이 급증했음에도 취소할 법적 장치가 없어 혼란을 겪은 사례를 언급하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안의 핵심에 자리한공익(public interest)’ 조항이 구체적 기준 없이 행정당국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한다고 지적한다. 토론토의 한 이민 변호사는이는 사실상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 같다, 정부가 언제든 사회적 분위기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신청을 대량으로 취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2012년 하퍼 정부가 기술이민 신청 중 2008년 이전 건을 일괄 폐기했을 때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번에도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우선적으로 처리 지연이 심각하거나 경제적 기여도가 낮다고 평가되는 프로그램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스타트업 비자는 평균 처리 기간이 53개월에 달해 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2027년까지 신규 접수가 중단된 자영이민 프로그램 역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또한 저임금 단순노동자 프로그램은 단기 체류 허가로 반복 입국하는 근로자들이 많아 이번 법안이 적용될 경우 언제든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어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 스폰서십 제도 역시 평균 수년의 지연이 쌓여 있어, 정부가 시스템을리셋한다는 명분으로 접수를 대량 취소하거나 상한선을 둘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행정 효율성 문제를 넘어 실제 생활에 뿌리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법적 지위와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이미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신청자들이 하루아침에 신분을 잃으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이는 국경서비스청의 단속과 강제 출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가족을 동반한 유학생, 단기 워크퍼밋 소지자, 난민 신청자 등은 안정적 생활 기반이 무너질 수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정부의 주장과 달리 훨씬 커질 수 있다. 또한 특정 국가 출신이나 불법 컨설턴트 연루 여부, 경미한 전과 여부를 이유로 배제가 가능해진다면 인종적 편향이나 정치적 악용의 소지도 충분하다.

 

캐나다는 그동안 투명한 절차와 안정적인 정착 경로를 제공하며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민지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효율성을 명분으로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희생시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이를 통해 이민 적체를 해소하고 경제적 기여도가 높은 신청자에게 기회를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불확실성과 불평등을 키워 우수 인재 유치 경쟁에서 캐나다의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향후 핵심 쟁점은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공익조항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제동 장치가 마련될 수 있는지 여부다. 난민, 저임금 노동자, 창업 이민 등 취약 카테고리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정리될지도 제도의 향방을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다. 결국 이번 법안의 향방은 단순한 행정 효율성을 넘어서, 캐나다 이민 제도의 정체성과 국제적 신뢰도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민을 준비하는 신청자들은 법안의 진행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만약의 변화를 대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정 프로그램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 가능한 경로를 모색하며, 법적 권리를 명확히 보호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 제도가 효율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은 캐나다가 수십 년간 쌓아온 포용적 가치와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법안 C-2가 실제로 통과되든, 수정되든, 혹은 폐기되든 그 결과는 결국 캐나다 이민 정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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