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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세계 톱5 꿈 아니다

김성윤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9-19 16:38

연 관람객 500만명 돌파 전망
국립중앙박물관 인기 비결 5

지난 14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 일요일 아침인데도 대기 줄이 S자로 여러 번 꺾이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전 10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관람객이 어림잡아 수백 명은 돼 보였다.

함께 온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두 달 전에 왔을 때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는 미술사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국중박을 자주 찾았고, 역사에 관심 많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매년 분기마다 한 번은 함께 방문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국중박의 인기가 뜨겁다. 올 들어 8월까지 국중박을 찾은 관람객은 총 432만8979명. 지난해 같은 기간(243만9237명)보다 77.5% 증가했다. 연간 관람객 역대 최다 기록인 418만명(2023년)을 이미 넘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이제껏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500만명 돌파도 가능하다. 500만명이면 세계 박물관 관람객 ‘톱5’를 넘볼 만한 규모다. 지난해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뉴스페이퍼’가 발표한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에서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573만명으로 4위, 영국 테이트모던이 460만명으로 5위에 올랐다. 국중박은 8위로 프랑스 오르세미술관(375만명)보다 한 계단 위였다.

국립 박물관 문화 상품 ‘뮷즈(뮤지엄+굿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등 K컬처 열풍에 힘입어 올 상반기 매출이 34% 증가해 역대 최대치인 115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초로 매출 200억원을 돌파했던 작년 실적을 뛰어넘을 기세다.

국내 손꼽히는 브랜딩 전문가로 국중박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전시실 중 하나인 ‘사유의 방’이란 이름을 지은 김아린 비마이게스트(BE MY GUEST) 대표는 “국중박이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20년간 박물관 브랜딩을 꾸준히 해오면서 쌓인 신뢰의 바탕 위에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전통 문화로 확장된 결과”라고 말했다. 국중박의 인기 요인은 크게 5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1. 이건희 기증展 등 히트 전시회 잇따라

국중박은 올해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194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해 개관한 이래 60여 년간 10년에 한 번꼴로 이사하다 2005년 지금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약 13만㎡로 세계 여섯째 규모의 박물관이다.

개관 기념으로 국보급 유물이 대거 공개됐고,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다녀갔다. 당시로서는 프랑스 루브르,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적 박물관의 하루 평균 관람객을 웃도는 수치였다. 개관 한 달 만에 64만명이 찾았고 44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허니문 이펙트’는 오래가지 않았다. 개관 다음 해인 2006년에는 328만명이 입장했지만, 2007년에는 228만명으로 관람객 수가 뚝 떨어졌다. 국중박은 관람객 회복을 위해 대중 친화적인 기획·테마전을 잇따라 열었다. 2009년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전’ ‘이집트 문명전’ 등에 힘입어 275만명으로 상승 전환했고 이듬해에는 30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정체 상태에 빠졌고 코로나가 닥친 2020년에는 77만명으로 급락했다.

그러다 2022년 반등에 성공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전, ‘합스부르크 600년’전 등이 큰 호응을 얻으며 관람객 수가 341만명으로 껑충 뛰었다. 2023년에는 ‘사유의 방’ ‘청자실’ ‘기증관’ 등 상설 전시가 꾸준히 인기를 끌며 역대 최대인 418만명을 기록했다.

올해에도 대형 전시전을 열고 있다. 11월에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로버트 리먼 수집품’을 아시아 최초로 공개한다. 르누아르·고흐·고갱 등 작가의 걸작 80여 점을 전시한다. 로버트 리먼(1891~1969)은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를 경영한 가문의 일원으로 2600점 이상의 예술품을 수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조선일보DB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조선일보DB

2. 건축가와 협업한 ‘사유의 방’ 등 전시방식 변화

새롭게 바꾼 전시 방식도 관람객 증가에 한몫했다. 우선 유물을 한 공간에 몰아넣는 평면적 전시에서 관객 체험을 강조하는 입체적 전시로 바꿨다. 2021년 박물관 2층에 마련한 ‘사유의 방’이 대표적이다. 사유의 방은 ‘모나리자’가 루브르를 대표하듯, 반가사유상을 국립중앙박물관 대표 아이콘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기획했다. 국보인 반가사유상 두 점(옛 지정번호 78·83호)만을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관람객이 작품에 몰입하고 힐링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학고재 갤러리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최욱 원오원 아키텍스 대표가 설계했다. 국중박이 전시 공간을 건축가와 협업한 첫 사례다.

지난해 개편한 기증관은 응접실 형태로 꾸민 기증 1실이 눈길을 끈다. 기증자 이름을 딴 전시실이 죽 늘어선 형태에서 벗어나 전시실 한쪽 벽을 책장처럼 꾸미고 서화·도자·공예 등 다양한 유물을 배치했다. 실제 기증자의 응접실로 초대받은 듯하기도 하고, 조선 후기 인기를 끌었던 책가도(冊架圖)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자의 아들은 “청자실·서화실 등 일반 전시실은 유튜브를 시청할 때 알고리즘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동영상만 올라오는 것 같다면, 여러 유물이 섞여 전시된 기증관은 랜덤(무작위) 쇼츠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관 로비인 ‘역사의 길’에 실물 크기로 재연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관 로비인 ‘역사의 길’에 실물 크기로 재연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3. 미디어 파사드, 가상현실…디지털 서비스 강화

‘청자실’에서 스페인 관광객 미구엘 헤레스(74)씨가 상감청자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그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해외여행 때마다 그 나라의 박물관 도자기 전시실을 반드시 찾는다”며 “국중박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도자기 역사·제조법을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박물관은 처음 봤다”고 감탄했다.

국중박은 2021년 디지털박물관 종합 계획 ‘디지털 전략 2025’를 수립했다. 새로운 디지털서비스를 발굴하는 게 주 내용이다. 그 일환으로 마련된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실감영상관’에서는 반응형 영상, 가상현실(VR) 콘텐츠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실감 콘텐츠를 선보인다. 상설 전시관 로비인 ‘역사의 길’에 위치한 경천사 십층석탑은 매주 수·토요일 야간 개장 때 디지털 미디어 작품으로 변신한다. 미디어 파사드 기법으로 석탑 위에 석탑 표면에 새겨진 여러 이야기, 석가모니의 생애와 법회, 서유기 이야기, 극락정토 등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역사의 길에는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실제 광개토대왕비(6.39m)를 재현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이 세워졌다. 높이 8m, 너비 2.6m, 폭 1.9m의 거대한 직육면체 발광 다이오드(LED) 영상물 스크린으로, 4면을 둘러가며 고구려 신화와 광개토대왕의 업적 등이 적힌 총 1775자의 비문을 보여준다.

4. BTS·케데헌 등 K컬처 열풍

외국인 관람객 유치는 국중박이 용산에 개관한 직후부터 주요 과제였다. ‘스타 마케팅’을 초기부터 활용했다. 이현주 국중박 홍보전문경력관은 “2009년 배우 배용준이 펴낸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직접 설득해 박물관 방문을 유도했던 사례”라며 “배용준 팬들의 박물관 방문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특별전 관람 후 사진과 뮷즈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국중박이 해외 팬들의 ‘BTS 성지 순례 코스’에 포함됐다.

K컬처 열풍은 국중박 관람객 증가의 핵심 요인이다. K콘텐츠 확산과 함께 국중박은 K컬처와 한국 전통문화가 결합된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들어서는 케데헌이 국중박 흥행에 불을 붙였다. 올 들어 8월까지 국중박을 찾은 외국 관람객은 14만7643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명 넘게 증가했다. 그런데 늘어난 인원의 80%가량인 8000여명이 7~8월 두 달 동안 집중됐다. 6월20일 케데헌 공개 이후 한국 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고조된 시점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외국인보다 내국인 관람객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내국인 관람객은 올 들어 8월까지 작년 대비 81.6% 늘었는데 같은 기간 외국인은 8.3% 증가했다. 국중박 관계자는 “K컬처 열풍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박물관 관람객도 늘어난 게 사실이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높아진 관심, 특히 젊은 세대가 전통문화를 고루한 게 아닌 최신 유행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박물관 인기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까치호랑이 배지'(왼쪽)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까치호랑이 배지'(왼쪽)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5. 반가사유상·변색잔 등 출시 직후 완판되는 뮷즈

기자의 아들이 “동생이 부탁한 ‘까치호랑이 배지’ 사러 뮤지엄숍(상품관)에 가자”고 했다. 입고된 날 오전 완판된다는 까치호랑이 배지가 다행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민트색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와 술을 부으면 잔 표면에 그려진 선비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소주잔(취객 선비 3인방 변색잔 세트)은 이미 품절이었다.

국중박 인기에는 ‘뮷즈’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국립박물관 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온·오프라인 뮷즈 매출액은 213억원으로 최근 5년 새 5배 이상 규모로 늘었다. 뮷즈 매출액이 2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14억8000만원으로,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전체 매출은 작년 기록을 넘어설 전망이다.

과거에 박물관에서 팔던 상품은 기념품 수준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뮷즈가 흥행 품목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통을 모티브로 했기에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색다른 매력으로 MZ 세대를 사로잡았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2020년 온라인 출시 후 6차 판매 모두 조기 품절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뮷즈 돌풍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 4인방이 이끌고 있다. 기업 마케터 출신인 김미경 팀장은 “국중박 대표 상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학예실 전문가들에게 대표 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모두 반가사유상을 꼽았다”고 했다. 이듬해 ‘사유의 방’이 조성되면서 미니어처 상품과도 시너지가 났다. 이후 고려청자 에어팟 케이스와 석굴암 조명 등 히트 상품이 줄줄이 쏟아졌다. 고려청자 에어팟의 경우 고려청자에 가까운 색을 찾기 위해 100번 이상의 테스트를 거쳤다고 한다. 개인·기업을 대상으로 한 ‘뮷즈 공모전’을 통해 제작한 취객 선비 3인방 변색잔 세트는 작년 출시 직후부터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최근 국중박 뮤지엄숍에서는 ‘까치호랑이 배지’ 뮷즈가 인기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보이 그룹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의 반려동물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수지’인데, 이는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鵲虎圖·까치 호랑이 그림)’에서 따온 캐릭터다. 김 팀장은 “희소성과 가치가 있고, 유물이 가진 콘텐츠와 상품이 어울려야 인기를 끈다”며 고 했다.

뮷즈는 해외 미술관에서 선보일 만큼 그 자체로 가치와 매력을 지닌 문화 콘텐츠가 됐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미국 최대 아시아 전문 미술관인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11월 개막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인왕제색도’를 모티브로 한 조명, 고려청자 접시·잔 세트, 청자 텀블러 등 뮷즈 38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방문객 증가로 관람환경·편의시설 빨간불

김아린 비마이게스트 대표는 “루브르박물관 방문객의 80%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온다는 통계가 있는데, 루브르는 모나리자를 전설로 만들고 이어가기 위해 미술 작가·만화가 등과 적극적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국중박도 더 열린 협업과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더해져야 한층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과감한 시도와 실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의 대표적 캐릭터 헬로키티 탄생 5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찾았다. 해외에서도 헬로키티 팬들이 모였다. 국보급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재로 관람객이 많이 찾는 전시회를 얼마든지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편, 연일 관람객이 몰리면서 국중박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005년 용산 개관 당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국중박 전시동 내부는 하루 최대 약 1만8000명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관람객이 급증하면서 관람 환경과 편의 시설 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주말에는 박물관을 찾는 차량이 몰리면서 주차장과 주변 도로 정체가 심하다. 박물관 측은 “관람객 분산을 위해 어린이박물관을 국중박 부지 내에 신축할 예정”이라며 “관람 체계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도 착수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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