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안 고조 속 전문직 해외行
영국·아일랜드 시민권 신청 급증
고숙련 인력 유출, 임금 격차는 부담
영국·아일랜드 시민권 신청 급증
고숙련 인력 유출, 임금 격차는 부담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한 주택에 거꾸로 된 미국 국기와 '공화당의 명복을 빈다'라는 팻말이 걸려있다./Getty Images Bank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 내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문직 종사자들의 해외 이주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부서 축소와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경력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안정적인 삶과 직업을 찾아 국외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워싱턴에서 정부 책임 분석가로 일했던 샘 파카스(33)는 정부 부서 축소로 경력 전망이 어두워지자 지난 7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지난 달 기술 분야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직업을 사랑했지만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며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 규정 준수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바네사 역시 “행정부 조치가 두렵다”며 해외 이주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통계도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인의 영국 시민권 신청 건수는 2194건으로 전년 대비 50% 증가하며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일랜드 여권 신청 건수는 2월 기준 4327건으로 10년 만에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시민권 자문 업체들은 “작년 미국 대선 이후 상담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은 소수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이 단순 불만층이 아닌 고숙련 전문 인력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이민 자문업체 엑스팻시는 “지금 떠나는 사람들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들”이라며 고급 인력 유출 우려를 제기했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이민 변호사 에반 그린은 “특히 성소수자 가족들의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컨설팅업체 ARC 리로케이션은 “많은 고객들이 ‘미친 정치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다만 해외 취업은 녹록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 평균 연봉은 약 8만3000달러로 프랑스(6만1000달러)보다 높아 유럽에서 동일한 직종에 종사할 경우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주요 도시와 기술 업종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일부 인력은 해외에서 현지 취업 대신 원격으로 미국 내 직장을 유지하려 하지만 세금 문제와 시차로 인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채용회사 로버트 하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내 구인 공고 중 완전 원격 근무가 가능한 비율은 12%에 그쳤고, 글로벌 원격 근무를 허용하는 경우는 더 적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도 해외 이주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규모 추방과 주요 도시에 주 방위군을 배치하겠다는 결정은 이민자와 이민 가정 출신 노동자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캘리포니아 출신 라틴계 여성 레베카는 “합법적이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이 많아 그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잘 알고 있다”며 “남아서 싸우고 싶지만 언제 추방당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로 이주 계획을 세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미국인은 캐나다인 아내를 통해 비자 스폰서십을 신청하고 있으며, 첫 아이를 앞두고 밴쿠버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급여는 줄겠지만 안전을 위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튀니지 출신 이민자 오마르도 “1월 이후 미국은 훨씬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밴쿠버에서 새 직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실제 해외 이주로 이어지는 비중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누적될 경우 고숙련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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