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암살이 보여준 ‘위기의 미국’
미국의 보수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USA(Turning Point USA)’ 창립자 찰리 커크(32)가 10일 유타주 오렘에 있는 유타 밸리대 캠퍼스에서 연설 도중 피살되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지난 5~6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보수 청년 행사인 ‘빌드업 코리아 2025’ 참석차 한국을 찾았던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 지지층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경찰은 치밀하게 사전에 계획된 범죄로 보고 용의자를 쫓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총기 테러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가 지난 10년 가까이 겪어 온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는 “미국 내부의 분노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정치 폭력은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전에는 정책 갈등에 집중됐던 이념적 분열이 이제 더 깊고 개인적인 적대감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에서 분노가 음모론, 개인적 불만과 뒤섞여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적대·혐오 정서가 본격화된 기점으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대결했던 2016년 대선이 주로 꼽힌다. 당시 트럼프는 힐러리를 ‘못된 여자’라고 부르고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 ‘강간범’으로 표현했다. 힐러리도 트럼프 지지자들을 ‘한심한 사람들’로 지칭하는 등 좌우 진영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 요나탄 쿨츠 교수 연구팀이 2008~2020년 미국 정치인 발언 2400만건을 분석한 결과, 2016년 대선을 기점으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판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는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진보·여성·이민자·성소수자에게 품었던 불만과 박탈감을 결집해 대통령에 올랐다. 이슬람·낙태·동성애 반대를 내세운 우익 기독교 민족주의가 결합하며 지지 세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커크도 “내 딸이 강간당해 임신했어도 출산시킬 것”이라는 발언으로 환호를 받았다.
매가 세력을 등에 업고 2016·2024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진보 진영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의제를 하나하나 지워 나갔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DEI가 ‘정치적 올바름’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피로감은 트럼프가 ‘문화 전쟁’을 벌일 동력이 됐다.
진영 간 반감은 점차 폭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2017년 버지니아에서 반(反)트럼프 성향 괴한이 야구 연습 중이던 공화당 의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2022년엔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남편이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했다. 정치 폭력은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극렬 지지자들이 미 의회에 난입한 2021년 ‘1·6 사태’에서 극에 달했다. 이후 트럼프가 두 차례 암살 위기를 모면한 2024년 대선 기간까지 300여 건의 정치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정치 폭력만 15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로이터는 “197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미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인종·문화·종교의 공존’이라는 토대도 극단화하는 정치 지형 속에 무너지고 있다. 연방수사국(FBI) 통계에 따르면 인종·종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한 증오 범죄는 2022년 1만1643건으로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진 범죄가 6570건으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성장이 둔화할수록 외부인과 소수자에게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제조업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쇠퇴했다.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철강·자동차 공장이 1970년대부터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트럼프는 외국이 미국의 부(富)를 강탈했다고 주장하며 각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미국 내 생산, 미국인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대대적으로 체포·추방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상당수 미국인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커크의 암살이 보복과 증오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는 “커크는 진실과 자유를 위한 순교자”라며 죽음의 책임을 ‘급진 좌파’에게 돌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좌파는 살인의 당”이라고 했다. MSNBC 방송의 한 해설자는 이날 커크의 죽음은 평소 분열적 발언을 해온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지지자 한 명이 축하 차원에서 총을 쐈을 수 있다”고 농담했다가 당일 해고됐다. 미 의회에선 커크를 추모하는 묵념 도중 공화당이 “다 민주당 탓이다”라고 하고 민주당이 “총기나 규제하라”고 맞받는 설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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