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환율이 지난 16일 장중 1399원을 기록하며 1400원 돌파를 코앞에 두자 외환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외환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꼽는 1400원을 넘으면 불안감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00원 선이 뚫리면 원화 값이 더 하락하는 속도가 빨라져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 사이에 공포 심리가 번질 수 있다.
◇외환 당국 “달러 거래 1시간 단위로 보고하라”
여름을 지나며 원화 값이 하락하는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마감 환율 기준으로 올 들어 처음 1200원을 넘은 1월 6일부터 1300원 선에 도달한 6월 23일까지는 168일이 걸렸지만, 이후 1400원 턱밑인 올해 최고 환율(9월 15일 1393.7원)까지 오르는 데는 84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환 당국은 1400원 선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외환 당국은 시중은행과 국책 은행에 달러 거래 현황을 1시간 단위로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외국환을 취급하는 은행은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5시 등 하루 3차례 달러 거래 현황을 보고하는데, 한 시간 단위로 실시간 보고하라고 요구하며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고객들의 달러 요구를 충족하는 정도의 달러만 확보하고, 별개로 은행이 환차익을 얻으려는 달러 매입을 하지 말라는 압박”이라고 했다.
당국은 구두 개입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15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한쪽으로 과다한 쏠림이 있거나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 필요한 시점에 시장 안정 조치 등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넋 놓고 있을 순 없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이번주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 수석의 언급 이후 이날 개장 초기 1399원까지 올랐던 환율은 전날보다 5.7원 내린 1388원에 거래를 마쳤다.
◇1400원은 외환시장의 ‘빅 피겨’
외환 당국이 강도 높은 개입에 나서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돼 우리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외환 전문가는 “1400원은 외환 딜러들이 ‘빅 피겨(big figure·결정적 수치)’라고 부른다”며 “1400원이 뚫리면 호재나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누군가 달러를 사면 따라서 사고, 팔면 따라서 파는 투자 동조 현상이 나타나 환율 등락 폭이 폭발적으로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금융 위기 공포가 본격화한 2008년 10월 16일에 하루에만 환율이 무려 133.5원 폭등하는 충격이 왔고, 그때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08년 12월 10일에는 하루 53.2원 급락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또한 1400원을 넘으면 환율의 급등락을 노린 환 투기 세력이 판을 치면서 환율 변동 폭이 더 커지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3년간 1400원대 환율을 경험해보지 않아 불안감이 고조돼 있다”며 “1400원을 넘으면 환율이 10원 단위가 아니라 50원 단위로 크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으로 원화 값 더 하락할 듯
환율이 상승하면 은행들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외화 대출 및 통화 파생 상품 등 외화 자산을 원화로 환산할 때 금액이 늘어나면서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외화 대출은 원화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높은 ‘위험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4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의 BIS 비율은 작년 3분기(16.07%) 이후 3분기 연속 하락해 올해 2분기는 15.46%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환율을 방어할 묘수가 없어 외환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오는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지난 6·7월에 이어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아 기준금리를 연 3~3.25%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2.5%)를 크게 웃돌게 돼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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