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뿌리 내리기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5-25 09:04

김춘희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4월이 오면 나는 봄바람이 난다. 물병과 아이폰을 챙겨 넣은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나 만의 산책길을 향해 집을 나선다. 재작년 옮겨 심은 참나물 뿌리가 제대로 잘 자라주면 좋겠다는 바램과 설레임으로 발걸음이 빠르다.
 메이플 리지 동네 듀드니 길로 올라 오다가 230 가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옆으로 잡풀을 헤치고 어렵게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마치 나를 위한 참나물 밭처럼 파란 참나물이 무리지어 공터 여기저기를 메우고 있다. 나물 줄기 한 움큼 잘라 코끝에 대어 본다. 향긋한 봄나물 향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래 동네 사랑하는 아우가 가르쳐 준 우리들의 비밀스런 참나물 밭이 있었다. 우리는 봄이 되면 이 참나물 밭에 들어가 내 손으로 농사 짓지 않은 봄나물을 뜯어 참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그러나 어느 날 땅 주인이 집을 짓는다면? 내 땅이 아닌 나물 밭이 사라 질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궁리 끝에 뿌리를 옮겨심기로 결심을 했다. 2년 전일이었다. 예상한 대로 나물 밭은 그 후 사라졌다.
 내가 즐겨 찾는 산책로 카나카 크릭 (Kanaka Creek) 길은 짧지만 나에겐 보물스런 길이다. 봄꽃은 물론 4월 하순부터 삐쭉 삐죽 올라오는 고사리며 이른 여름 색색의 새몬 베리(Salmonberry), 한 여름엔 복분자 등, 이 산책로는 늘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산책로 중간 쯤에서 무지개 다리(Rainbow Bridge)가 나오고 다리 아래로는 연어가 올라오는 작은 강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 오른 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왼쪽 인가 반대 쪽으로 임자 없는 공터가 나온다. 그곳에 들어가면 여기 저기 잡풀의 군상들이 다투어 푸르름을 자랑한다. 공터 오른 쪽 가파른 낭떠러지가 끝나면 저만치 아래로 무지개 다리를 잇는 강물이 조용히 흐른다. 이 공터에 올라 오면 나는 쓰러진 고목 그루터기에 앉아 쉬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이름 모를 새들도 나를 반겨 노래한다. 내가 앉아 있는 고목 주변으로 임금님 수라상에만 올랐다는 동부에서나 볼수 있는 귀한 활나물도 보이고 민들레도 잡풀 뒤에 숨어서 꽃을 피운다. 봄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환희의 계절이다.
 나는 이 공터야말로 참나물을 옮겨 심기에 최적의 장소라 판단했다. 그리고 듀드니 230가 공터의 참나물 뿌리를 여러개 캐어다가 레인보 다리를 건너 이 언덕에 옮겨 심었다. 다음 해 뿌리에서 싹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작년 4월 어느 화창한 봄 날 나는 또 봄바람이 났다. 그 때는 내가 지인들과 함께 불어 샹송 낭독을 취미 삼아 줌으로 강의하던 때였다. 갑자기 옮겨 심은 나물 뿌리가 눈에 어른거려 곧 바로 나물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무지개 다리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나를 흔들었다. ‘지금 줌 시간인데 왜 안 들어오십니까?’ 나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봄바람이 나서 줌 강의도 잊었구나! 집으로 돌아가자니 이미 늦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 공터에 들어 가 설레는 마음으로 나무 그루터기를 살펴 보았다.
 분명히 큰 나무 세 그루 아래에 심었는데, 한 곳은 아무 것도 안 보였고 두 번째 그루터기엔 몇 뿌리가 싹을 냈지만 억센 잡풀에 덮여 납작 엎드린 형국이다. 다행히 마지막 나무 아래에는 잡풀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제대로 나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옮겨 심으면 되는구나! 그러나 나물로 뜯어 오기엔 아직 어려서 그대로 두고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언덕을 내려 왔다. 한 열흘을 지나 이제는 나물을 뜯어 올만큼 자랐겠지 기대하며 또 찾아 갔다. 그러나 올 때마다 참나물은 자라지 않고 그대로 였다. 흙이 나쁜가? 바람이 너무 많은가? 그렇게 작년 봄은 참나물 수확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지난 4월 어느 날 한인 마켓에 들렀을 때 벌써 잘 자란 참나물이 눈에 띄었다. 문득 옮겨 심은 참나물 생각이 나서 무지개 다리를 찾아갔다. 작년에 수확을 거두지 못한 것은 불량한 토양탓이라 판단 했었기에 큰 기대 없이 언덕을 올라 공터로 들어 가 보았다. 아! 작년에 비실비실 하던 참나물들이 푸른 잎을 머리에 쓰고 제법 훌쩍 큰 키를 자랑하며 나를 반겨 주었다. 한 줌 뜯어 봉지에 넣으며 옮겨 심은 나물 뿌리의 고뇌를 읽었다. 제 꼴을 갖추고 자라기 까지 필요했던 것은 토양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옮겨 심은 나물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푸른 잎을 피우기 까지 땅속에서 겪었을 뿌리의 고난은 바로 우리들의 것이리라! 언어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 뿌리 내리기란 나물 뿌리처럼 말로 표현키 어려운 사회 적응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고통과 수고가 클 수록 2세대 3 세대로 이어지는 시간 안에서 후세대는 적응 된 사회에서 깊이 내린 뿌리 위에 가지를 뻗고 풍성한 잎을 드리우는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내가 따온 참나물과 활나물로 만든 비빔밥이다. 파란 눈의 며느리도 봄 나물 맛을 알아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도그우드의 전설 2022.06.15 (수)
올봄에 우리 집 앞뜰에 도그우드 (Dogwood) 묘목 한 그루가 심어졌다. 어느새 이 타운하우스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옆집과 공동 소유인 한 뼘 앞마당에 다년생 화초들과 제법 커다란 캐나다 단풍나무가 있어서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었다. 이사 온 지 아마 3년 쯤 됐을까, 거실 앞 유리창 가까이에서 그늘이 되어주던 단풍나무에 병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 후 두어 해 지나고...
김진양
Song for Mother 2022.06.15 (수)
Translated by Lotus ChungWherever you areFlowing with loveBecoming a river of our hometownBlue mother. Just keep going with lifeTo busy childrenBeing forgotten often by childrenAlways invisibly together like the windWith endless forgivenessThe mother embraces us always. Taking a new life in your painSelflessly raising us this much with caring loveNever to be deeply gratefulPlease forgive our rudeness. Worrying rather than being happyMore farewells than meetingsOn the hill road of motherLike a silver grass with white hairWith shaking sorrow, we can pray altogether When life...
로터스 정
대구떼의 수난 2022.06.15 (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
봄 비는 온종일 2022.06.08 (수)
그리워그리워서보채는구나일어나라일어나라두드리는구나나가지도들지도 못하고 나는보고 싶다 보고 싶다허공을 붙잡고칭얼대는구나봄 비는 온종일그리워그리워서….
한부연
찰스 플럼 (CHARLES PLUMB) 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월남 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75회 출격 하는 날 그의 비행기가 월맹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 되었고 그는 낙하산 탈출을 감행하였으나 불행히 착륙 지점이 월맹군 거점 지역이어서 그곳에서 체포된 후 6년 간 포로 수용소 생활을 한 후 석방되어 지금은 그 당시의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감내 하였던가를 강연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그런 그가 어느 날 그의...
정관일
그 때 아라 가야국 그 왕궁 추녀끝고풍스레 쨍그랑 거리던 풍경소리와칠백 수십여년 죽은듯 버려졌다기적 같이 되살아난아라 홍련 씨앗의 발아와 개화 사이의그 꿈결 같기만 한 아득한 세월 그 때 그 왕궁 뜰 연못 위에 피었던아라 홍련과저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가르는아득한 세월의 수평선 너머 잊혀진 자와 버려진 자 사이의애틋하고도 사무치는 그리움과...
남윤성
이번에 내가 걸린 코로나의 시초는 딸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이가 적당히 든 딸이 최근에 프랑스 문화 축제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가 비를 맞고 오더니 감기 기운이 엄습한 것 같다.함께 자원 봉사하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또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서 감기에 걸렸는데, 그렇게 2-3일 앓고 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전염이 되었다.나는 기저질환자로 평상시 감기를 의식해서 생강과 대추 끓인 물을 2-3년 전부터 마신 탓인지...
이종구
소중한 것들 2022.06.01 (수)
정가표가 없었네흥정이 필요 없었네공기처럼 물처럼늘 그렇게 곁에 있었네—검은 머리 부모님들치맛자락에 매달리던 어린것들꽃다운 나의 지난날왜 진작에 몰랐을까가장 귀한 것들에는가격표가 없다는 것을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나의 젊음도어느 날 문득 뒤 돌아보면이미 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강을 건너훨훨 가버리고 없는데왜 좀 더 일찍이 몰랐을까그들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면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The Precious ThingsBong Ja AhnNo...
안봉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