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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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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4-25 10:30

정효봉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모두 안녕? 많이들 모였네, 우리 멋지게 잔인한 4월을 즐겨보자." 동아리 회장 선배가 던진 말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선배도 "올 봄도 어김없이 엘리엇님이 나타나셨구만. " 하니 다른 회원들 모두 ‘잔인한 4월’을 언급하며 4월의 따뜻한 봄 볕을 즐기고 있었다. 도대체 난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모르는 티를 내기 부끄러워 그냥 묵묵히 있었다.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신입생 환영회  2차 모임에서 옆에 앉은 선배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그 선배는 이해한다는듯이 내 등을 토닥이며 내일 따로 만나자고 속삭였다. 다음 날 그 선배와 함께 찾아간 곳은 학교 앞 서점이었다. 서점 주인과 선배는 매우 친한듯 보였다. 선배는 대뜸 "이 친구에게 토마스 엘리엇 자료 좀 챙겨주세요." 라고 말하고 다른 약속이 있다며 나가 버렸다. 서점 주인은 친절하게 몇 권의 책과 논문 몇개를 내게 건네주었다. 40여년 전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의 433행 장문의 '황무지'에 나오는 시구다. 엘리엇의 표현을 두고 많은 평론가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서구 문명에서 겪은 상실감, 그리고 무력감에서 비롯된 엘리엇의 개인적인 감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평한다. 당시 내가 조사한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론이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황무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의 꼬리는 길어져만 갔다.  4월은 종교적으로 부활절이 있는 시기이며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서 만물이 생동하고 찬란한 생명이 움트는 시기이다. 대지의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이 시기를 왜 엘리엇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을까? 한 평론가는 엘리엇이 가장 친한  친구를 전장에서 잃은 달이 4월이라는 논리를 펴며 황무지에 대한 평을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이 평이 내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엘리엇의 황무지’는 개인적인 미완의 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4월, 우리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는 어김없이 ‘잔인한 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난 그동안 공부했던 알량한 지식으로 자신감 넘치게 잔인한 4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어리둥절한 신입생들의 모습을 보며 일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나 또한 이전의 선배가 했던대로 신입생들을 서점으로 안내했다. 그 이후 내 뇌리에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는 문장만 남아 매년 봄만 되면 그 문장을 버릇처럼 내뱉었고, ‘엘리엇의 황무지’는 그냥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동아리 회원들 다수가 야학의 강사로 봉사하였다. 야학 개강은 주로 대학의 수강신청이 마무리되는 4월 초에 하였고 그 과정은 고등부와 일반부로 나뉘어져 있었다. 난 고등부 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반부 문학을 담당하였다. 특히 일반부 문학수업이 인기가 많았다. 정규과정이 아니고 주로 문학 작품에 대한 토론과 독후감 발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인기가 있었던 작품은 고등학교 과정에 소개된 ‘메밀꽃 필무렵’,  ‘B 사감과 러브레터’,  ‘사랑 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당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소설 ‘인간시장’ 등 이었다. 일반부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성인들이었고, 모두 일용직 노동자거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보조로 일하는 노둥자들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들의 독서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작품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면 진지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독후감을 서로 공유하며 열띤  창작과 비평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한 학생이 "4월이 왜 잔인한 달인가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라고 내뱉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질문에 엘리엇의 문학작품과 평론들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었다. 해석의 결론은 '친구를 잃은 엘리엇의 비참한 감정을 작품에 나타낸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모두들 수긍하며 이해하는듯 보였다. 그 다음 주, 그 학생이 또 질문을 했다. 질문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불평이 섞인 반문이었다. 엘리엇의 시에 나온 문장을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언급하는 것은 4월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1년 중 4월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창작의 자유이지만, 그 문장이 사실인 것처럼 사용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상기된 표정의 그 학생은 게속 열변을 토했고, 발표가 끝날때 쯤 그는 곧 울움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 학생의 발표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몇몇 학생들이 그의 발언에 동의하면서 토론수업은 한 시간을 더 이어갔다. 수업 후 그 학생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느낀 그의 첫 인상은 배움에 대한 고품이 간절해 보였다. 그동안 문학 시간에 공부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줄줄 말하며, 매일 밤마다 새로운 소설을 머릿 속에 그린다고 했다. 올해 4월은 그에게 특별한 달이라고 하였다. 중요한 자격증 시험을 치러야 하고, 그동안 뿔뿔이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어렵사리 마련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4월이 잔인하다는 얘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일단 나는 다음 시간에 마무리 하자며 잘 설득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들은 겨울에 일이 많지 않아 수입이 거의 없어서 일이 많아지는 4월을 손꼽아 기다린다. 따라서 4월은 그들의 바램이자 희망이 시작되는 달인 것이다. 그런 4월이 잔인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많은 시간 고민하다 난 어느 평론집에도 없는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다. ‘4월은 잔인하리만큼 희망에 차고 생명이 부할을 하는 사랑의 달이다.‘  다음 주 수업을 시작하며 나는 거두절미하고 "엘리엇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반어적인 역설을 통해 4월을 예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수님이 제게 알려주신 엘리엇에 대한 최근의 평론입니다." 라고 그 학생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물론 난 교수님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수업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그 해 4월은 모두가 행복과 희망에 찬 4월의 봄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긴장하며 질문을 던졌던 그 학생은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고 가족 모두 새 보금자리에서 4월의 행복함을 만끽했다. 그 이후 4월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달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4월, 역시 내겐 잔인하리만큼 희망과 기쁨에 찬 달로 남아 있다. 40여년 전 내가 내린 해석을 엘리엇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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