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공격을 받은 아버지가 길에 쓰러진 채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 /RFE/RL 유튜브
러시아군 공격을 받은 아버지가 길에 쓰러진 채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 /RFE/RL 유튜브

“아버지 죽지 말아요,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요.”

우크라이나 이반키프 마을 한 도롯가에 남성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러시아군 공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울부짖음이었다. 부자는 피란길에 오른 민간인이었고, 총알이 쏟아진 자리는 전장이 아닌 고요한 시골길이었다.

비극의 현장은 지난 3일(현지 시각) 다국적 연합매체 ‘자유유럽방송/자유라디오’(RFE/RL)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시 아버지 올레흐 불라벤코는 아내와 딸을 먼저 피신시킨 뒤, 아들과 함께 반려견 세 마리를 데리고 가족이 머무는 은신처로 향하던 중이었다. 차는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렸고 아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전방에 서 있는 러시아 군용 차량 한 대였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멈춰요. 엔진을 꺼요”라고 소리쳤고 차는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나 곧 총탄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고개 숙여. 빨리 내려. 나가서 엎드려라. 뒤로 가서 오른 쪽으로 몸을 숙여”라고 지시한 뒤 차 문을 열었다.

/RFE/RL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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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러시아군의 총격음은 거세졌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를 조준한 것이었다. 그가 도로 한가운데 쓰러지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 사이 차량 뒤편에 몸을 숨긴 아들은 아버지를 발견한 뒤 “안돼. 아버지 죽지 말아요. 제발 버텨줘요”라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누운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언제 또 총알이 날아들지 몰랐기에 아들의 안전을 살핀 것이다. 아들은 “움직이지 마요. 이제 거의 끝났어요. 기다려요”라며 오열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이미 피로 흥건한 상태였다.

총성이 잦아들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나를 끝내(죽여) 주렴. 그들이 나를 쐈어. 발이 찢겨 나간 것 같아. 너무 아프다”고 말했고 이내 숨을 거뒀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품에 안은 채 “아빠 살아있는 거죠? 내가 구해줄게요. 제발 죽지마요”라고 애원했다.

우크라이나 부자가 피란길에 탑승했던 차량. 러시아군 총격으로 내부는 초토화가 됐고 문짝 등에도 구멍이 나 있다. /RFE/RL 유튜브
우크라이나 부자가 피란길에 탑승했던 차량. 러시아군 총격으로 내부는 초토화가 됐고 문짝 등에도 구멍이 나 있다. /RFE/RL 유튜브
아들과 대피 중 러시아군 공격에 사망한 아버지 불라벤코. 오른쪽은 살아남은 반려견 한 마리가 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모습. /RFE/RL 유튜브
아들과 대피 중 러시아군 공격에 사망한 아버지 불라벤코. 오른쪽은 살아남은 반려견 한 마리가 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모습. /RFE/RL 유튜브

RFE/RL은 “불라벤코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반려견 2마리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며 “목격자에 따르면 총을 쏜 것은 러시아군이 맞고 그곳에 우크라이나군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 측은 민간인을 저격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5분도 채 안 돼 벌어진 이 끔찍한 비극은 아들이 촬영하던 영상에 모두 담겼고 언론을 통해 공개돼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아들은 근처 풀숲으로 아버지 시신을 옮겼고 전쟁의 처참함을 전하기 위해 피로 물든 현장, 죽은 반려견 사체, 구멍 난 차량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 살아남은 반려견 한 마리가 불라벤코 시신 옆을 떠나지 못하는 장면도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