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새로운 길

권은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2-14 12:44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언제부터인가 지나갈 거라고 믿으며 견뎌온 코로나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감당해야 할 고통과 책임은 커져만 가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들은 보랏빛 희망과 검붉은 절망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듯 보였다.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처절하고 눈물겨웠다. 전염병의 창궐이 가져온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지독한 고립과 무력감에 빠진 건 아닐까? 해가 바뀌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막연한 기대로 나는 일찍부터 2022년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새해가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는 연일 급증했고, 아이들의 개학 날짜도 미루어졌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가볍게 끝났다면 눈 내리는 겨울밤이 아름답게 기억되었겠지만, 흩날리던 눈발은 유례없는 폭설로 바뀌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여기저기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집, 차, 도로며 사람들까지 감당할 수 없는 눈 속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새해가 된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잡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 이어졌다. 나의 고민을 잊기 위해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엿보기도 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를 위안했고, 타인의 행복한 모습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절망과 분노로 가득한 코로나 레드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제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세상일이 늘 정의롭고 공정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 또한 우리가 바라던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실의에 빠져 시대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혼돈의 시대를 살며 나는 나의 작음과 연약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한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는 늘 새로 쓰였고, 세상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적응하며 열심히 일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본다.
밤사이 내린 눈 속에 갇힌 세상은 고요했다. 길도 구분하기 어려웠고 지나가는 사람, 자동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지만 나는 외부 세계와 더 철저히 단절되어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불리한 조건과 상황을 뚫고 나가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면…. 비디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구슬려 밖으로 나갔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걸으니 새로운 길이 생겼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우리는 곳 눈을 느끼고 즐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걷다가 힘들면 눈 위에 몸을 누이고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짧은 거리의 길을 돌아오는 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의 복숭앗빛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올해는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라도 터널 밖 세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비 오시네 2022.03.14 (월)
봄비 오시네 사납게 파고들던 겨울비 저만치보드라이 흐르는 봄비의 손결회색빛 마을 화사해지리 다정한 빗살에파랗게 일어서는 풀 내음거칠었던 숨 다스리며나도 한껏 푸르러지리 봄비는 저물녘 마음 강가도란도란 흐르는너의 목소리 겨울 그림자 길어진 날엔새파란 봄비여어서 오소서.  -림(20210506)
임현숙
책장 앞에서 2022.03.14 (월)
도킨스와 하라리, 베르베르와 이정모가 사이좋게 어깨를 밀착하고 있다. 사이좋게?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시비를 걸거나 영역다툼을 하지않고 시종 점잖게 어우러져 있으니 나쁜 사이는 아닌 것 같달 뿐.   책들은 과묵하다. 포개 있어도 붙어 서 있어도 일생 서로 말을 걸지 않는다. 책들은 다 수줍음을 탄다. 자리를 바꿔 달라 보채지도 않고 어디로 데려가 달라 꼬리치지도 않는다. 즉각적인 피드백을 양산하는 다중 미디어들이 창궐하는...
최민자
봄이 오는 숲길 2022.03.14 (월)
3월의 바람은 아직 차갑다숲속은 알 듯 모를 듯 연두빛 번지고구구 슝, 뺏쫑 슝, 까악 슝, 꾸이꾸이 슝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가 서로 장단을 맞춘다마른 갈잎은 숲길에 누워꽃샘바람에 흔들리고마르고 까칠한 나무둥치 안으니따뜻한 온기 전해온다솔 나무 푸른 잎에 생기가 돌고골짜기 작은 풀꽃이 고개 숙이고성질 급한 진달래 꽃망울 하나저 혼자 고개 쑥 내밀고 세상에 나와그 꽃망울 머리 위에 사알짝 올라앉는다
조순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나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태어나, 세 살 때쯤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내가 다닐 적에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했다) 후암동에서 다녔다. 그 시절에는 거주 지역에 따라 초등학교를 배정받는 것이 중요했는데 지역별로  학교 차이가 있었다. 나는 평판이 좋고 역사가 있는 삼광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운동회가 열리면...
이종구
한 차례 함박눈 펄펄했던2월 오후가지마다 탐스럽게 걸터앉은 봄 마중들 환생한 꽃들의 뽀얀 영혼 눈부시다 그래, 기다림은 종종죽은 시간 위를 달려와서둘러 꽃을 피우기도 하지아스름 실려 오는 너의 목소리눈가 주름골 따라 촉촉이 스며드는데 길섶엔한나절 허연 뱃살 양껏 부풀린 눈덩이들다시 겨울의 깊은 속살을 애무한다 이제 더는 구르지 않을 것 같은내 그리움의 수레바퀴는 목련 나무 눈꽃 멀리집 잃은 낮달로 걸려...
백철현
 2020년 초에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으로 일상생활 패턴이 전 세계적으로 변한 지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지구 어느 한 곳에 일어난 사건이나 사변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 사회(Global Society)를 가능케 했다. 천재지변 소식은 인터넷이나 신문,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것이 한 예다. 이러한 소식이 들릴 때 직접 관계가 없는 한...
김의원
노을진 만남 2022.03.07 (월)
서로 잘 났다고우길 때가 좋았지옷이 이쁘다고시샘부릴 때가 좋았지어린 시절 집 앞도랑물 다리 위에멍석을 깔고 누워밤하늘의 별을 세다가잠이 들곤 했는데세월 참, 빠르다더니어느새 늙어버렸네막걸리 한 잔에억만 밤을 담그며뿌옇게 밤을 지새우다가아프지말고 가자는사촌의 그 말에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네태화강가에서육모초를 뜯어 말리어 보낸정성스런 그 마음에쓰디쓴 육모초 물을달달하게 마시며흘러가는 구름을무심히 바라보았네
김희숙
나의 세계 2022.02.28 (월)
 벌써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신춘문예 입상이라는 뜻밖의 타이틀은 내 인생의 하반기에 또 다른 고지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새로이 맞이한 공간 속에서, 고래가 물을 뿜듯 분출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설레임과 흥분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빈 여백을 채우던, 벅찬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초창기에...
민정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