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일 년 삼백육십오일, "메리 크리스마스!"

김 줄리아헤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12-28 09:23

김 줄리아헤븐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신년 초에 김춘희 수필가의 ‘천사와 별’이라는 글이 밴조선에 실렸다. 제목에서 풍기듯 성탄절의 배경을 담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정성껏 장식되어 가는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별이 올려지고, 나무 중심에 천사가 매달리는 모습을 연상하며 즐거움 속에 읽어 나갔다. 특히 삼대가 만들어 가는 화기애애한 그 시간이 성탄의 의미와 맞물려 글을 읽는 내내 연극무대에 올려진 다복한 가정의 크리스마스 전경을 보는 것 같았다. 
인조 소나무에 트리 장식을 달 때마다 작은아들은 진짜 소나무에 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었다. 떨어지는 마른 솔잎이 바닥을 지저분하게 할 거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아들의 원을 들어준 적은 없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코끝에 감겨오는 상큼한 솔잎 향이 굳건한 내 생각에 작은 변화를 가져온다. 성탄 나무를 사러 나서고, 고르고, 자르고, 옮기고, 세워나가는 과정이 인조 나무보다 준비하는 성탄절의 즐거움이 더욱 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색다른 감사의 이벤트를 준비해서 추억을 쌓아가는데, 손님들과 함께 은혜의 간증으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 통례로 굳어졌다. 서로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화목한 공기로 성탄절의 즐거움을 공유하기도 하고, 우리 가족처럼 단출한 가족들끼리 모여 행복한 시간을 빚어 가기도 한다. 
먼 타지에 사는 자녀들 대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기쁜 마음으로 성탄절을 보내기도 하고, 교회에서 나와 함께 봉사하는 팀원들과 은혜로운 시간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그렇게 성탄절에는 트리에 매달린 오너먼트(장식물)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행복한 이야기 속에서 보냈다. 그런데 코로나 19 팬데믹은 크리스마스에 흐르는 우리 집의 공기마저 바꿔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제한으로 두 아들과 셋이 칠면조는 통구이 닭으로 대체하고, 예배는 온라인 예배로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 늘 북적이던 크리스마스 식탁에 달랑 셋이 앉아 있으니 나도 아들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간이 테이블까지 이어 놓고 칠면조 구이를 비롯하여 사진 픽으로도 근사한 뷔페로 사람들의 눈과 입도 즐겁게 했던 식탁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크리스마스 당일의 낯선 풍경과 공기는 두 아들의 마음에 미묘한 변화를 불어 넣어 준 것 같다.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볼멘소리로 우리끼리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내면 안 되냐고 묻던 두 아들. 한 손에 불평이 담기고, 불만에 절인 또 다른 한 손을 내밀었던 두 아들의 네 손이었다. 그런데 지나간 성탄절의 일화들을 끄집어내며 이야기하는 품새가 떠들썩하니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성탄절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서로의 기억을 조합하며 하나의 퍼즐이 완성될 때마다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아들들 가슴에 즐거움으로 하나씩 쌓여갔다. 

그것은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이제야 찾아가며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함께 모여 찬양과 예배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권하고 나누는 것 또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앞으로 사랑이 듬뿍 얹어진 두 아들의 양손으로 인해 더욱 풍성하고 정성스러운 식탁이 준비될 것 같은 기대감의 즐거운 상상은, 불과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열 한 달 후의 12월의 크리스마스 아침으로 향한다. 더욱 강력해진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지만, 올 성탄절에는 피어나는 웃음꽃들의 향연에 마음껏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찌 되었든 처음엔 다복한 삼대의 즐거운 크리스마스 엿보기로 가볍게 서술해가던 글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방관자이던 내게 노 작가는 생각의 메아리를 여운으로 남겼다.
 
 /그날 밤 천사와 별은 상자 속에 들어가면서 또 한해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을 약속한다. 천사는 별을 따라가라 하고, 별은 빛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준다. 그리하여 내가 너를 비추고 네가 나를 비추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김춘희 수필가의 천사와 별 중에서/

평범한 장식에 불과한 천사 인형과 별에 생명을 불어넣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현하는 듯한 약속.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리다 문득 성경의 빛과 소금을 떠올렸다. 왠지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젖어 든다. 
글은 글 쓰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읽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묘한 맛이 있다. 같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와 처한 상황에 의해서 매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에서 작가의 속내를 엿보다 글 속에서 뜻밖에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공감하던 글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해 되묻고, 대답을 요구하는 때도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두 아들에게는 교회 다니는 사람답게 살자고 가훈까지 바꿔 놓았지만, 정작 교회 다니는 사람답게가 뭐냐는 아들의 질문에 나조차 명확하게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여러 가지 사례를 비유하며 이론적으론 그럴듯하게 에둘러 이야긴 했지만, 김춘희 수필가님의 글을 읽으며 ‘내가 너를 비추고 네가 나를 비추는’ 되뇔 때마다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으로 비춘다는 걸까? 서로를 향한 기도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 끝에 마침내 구절 안에 숨겨진 놀라운 사랑을 발견한다. 빛과 소금은 사랑을 의미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 못 하는 울 집 강아지 캔디조차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애정 공세로 내 얼굴에 환한 함박웃음을 새길 줄도 안다. 
이처럼 사랑은 단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로서 나도 그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는다. 하나님을 내가 사랑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를 속량하시고 사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 날이 크리스마스이고, 그로 인해 사랑이 매일매일 나와 함께하니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늘 메리 크리스마스와 다름없다는 것을. 사랑에 빠진 사람.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사랑에 진심인 사람.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로 행복으로 연결 지어지는 놀라운 사랑. 그 덕분에 우리 집 가훈의 답까지 찾는 행운도 얻었다.

 올 성탄절에는 작은 아들아이가 오랜 시간 꿈꾸던 작은 소원하나부터 실행해 봐야겠다. 은은한 소나무의 솔잎 향이 북적이는 사람들이 품어내는 사랑에 스며 “거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며 감사의 노랫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이사야 51장 3절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바람을 가져본다. 그날을 위해 나도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는 사람, 나눌 줄 아는 사람,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 나눔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한다.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무엇보다 성탄의 의미가 새겨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장 14절의 말씀처럼 일 년 삼백육십오일 임마누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

-2021년 1월 25일 신년 초부터 12월의 신나는 성탄절을 기대하며-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재의 약속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남자들은 뇌 구조상, 스포츠 선수 이름을 기억하거나 기계 사용설명서를 판독하는 일에는 빠르지만 감정이나 상황을 짚어 내는 감각은 여자들보다 느리다고 한다. 우리 집 경우만 봐도 그렇다. 아침나절에 남편이 나를 무시하는 투로 말을 해서 기분이 상했다. 내가 온종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어도 그게 자기 탓인지 몰랐다. 류현진이 등판하는 야구를 즐겁게 보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낮잠도 쿨쿨 잤다. 그러다가 다 늦은 저녁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성화
임인년 새해 모두 2022.01.17 (월)
검 구름바다에 잠긴 해가수평선으로 튀어 오릅니다검은 범털이 휘날리고어흥 소리치며 고개 내밀어 해를 보고푸른 소나무 가지에 숨은 산신령이 튀어나와새해의 붉은 햇살을 휘젓고 다닙니다그 어렵던 고난을 물리치고금을 가득 실은 신비한 도깨비의 묘술로희망찬 내일로 달려갈 수 있기를그들이 신은 새 신발 새 옷이헌 것이 될 때까지 자유로운 광장에서 노래하기를한 사람 한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정원에서노랫소리 울려 퍼지기를창문 안에서...
강애나
New Year Wishes 2022.01.12 (수)
New Year Wishes                                      Written by Lotus Chung Let us love all in the new yearThere are enough to share all togetherThe more we share, the more valuableMay our warm love aboundGive us true love that can embrace even the pain Let us become jewels in the new yearLet us polish ourselves to jewelsSo they shine even in the mudThat can shine even in the darkMake us shine like jewels Let us stand up proudly in the new yearDon't let  us kneel in despairEven...
로터스 정
Why me? 2022.01.12 (수)
“그 소식 들었어?”“무슨?”“H가 폐암 말기래. 지금 옆 병동에 입원했는데, 보고 오는 길이야.”“무슨 말이야? 2주 전까지도 우리랑 같이 일했는데.”병원에 출근해 막 일을 시작하려던 난 동료가 전하는 말에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H는 폴란드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30대에 이민 온 사람으로, 12년을 나와 함께 일한 동료였다. 내가 일하는 병동에서 healthcare aide로 일하다 65세에 퇴직했었는데, 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박정은
문밖의 손님 2022.01.12 (수)
옥련나무 잎에 바람이 설렁대는 아침이다. 아파트 뒤뜰이라 해가 비치기에는 이른 시각에 주방창 앞에 새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새는 힐끔거리며 경계를 하는 듯했다. 아침마다 하는 일로핸드밀에 커피콩을 넣고 가는 중이다. 커피 향이 코끝에 감도는 이 순간이 좋아서 커피 맛도제대로 모르며 아침마다 거룩한 예식을 하듯 커피콩을 간다. 내가 커피 향에 취해 커피를 내리는동안 새는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유리창으로 나를 관찰한다.비둘기다. 잿빛...
반숙자
딱 익기좋은 나이 2022.01.12 (수)
곧 한 해가 간다꽃같이 곱든 내 인생에불현듯 찾아온 코로나로정신이 혼미한 체허둥거리며 살아간 시간들어제는 코로나에숨도 못 쉬고오늘은 코로나로가게 문 닫고참 소중했든 내 나이의 한 해가 속절없이 다 간다이젠다 비우고다 버리고다 잊자또 한 해가 온다언젠가 봄이 오고파랗게 새순이 자라나듯봄바람 따라 다가올 중년의 멋진 느낌스쳐 간 인연으로 아파하지 않아도충분히 족할 인생의 이력지나간 삶의 무게로 힘들지 않게익어 가기 딱 좋은...
나영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펜데믹 상황에 잘 지내고 계시나요?  새해가 되면 언제나 의례적으로 덕담처럼 주고받는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신년인사말이 올해는 쉽게 나오질 않는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평범하면서도 확실하게 한해를 축복해주는 이 인사말이 지쳐 있는 우리들에게 왠지 편안하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작년 3월 중순 전 세계 재앙인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인간들에게 엄습해올 때 정말 무서웠지만...
심현숙
수많은 나날이 지나갔으나오늘, 한 포기의 희망을 심으려 합니다노랑총채벌레, 배추순나방, 벼룩잎벌레에게양보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지만또 한 포기를 심는 까닭은앞에 시간의 비탈이 놓여있고기다림의 지게가 비어있기 때문입니다제 홀로 초록잎 또아리치는 배추보다는서로 기대어 비탈 가누는 노랑콩알을 심어보려 합니다여기에도 붉고 푸른 공벌레는 슬겠지요하지만 혹독한 한파가 콩깍지를 여물리고짙고 깊은 어둠이 실처럼 여린 형제를...
김해영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