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원 식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더듬더듬 핸드폰을 집어 든 시간은 새벽 세 시, 캄캄한 밤중이라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휴대폰 화면에 비친 발신자 이름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이 시간에? 예상했던 대로 한국에 계신 어머님에 대한 여동생의 전화일 것이라는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오빠! 여기 병원 응급실인데요, 지금 당장 오빠의 동의서가 필요해요” 여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콩 튀듯 귓속을 후벼 팠습니다. 여동생의 말인즉 병원 측에서는 혼수상태로 입원하신 어머님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하므로 진찰 과정이나 치료 과정에 연명의료 중단(인공호흡기장착)이 요구되는데 이 연명의료 중단을 하려면 환자 직계 자손들의 동의서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오빠 내외가 지금 옆에서 동의했고 김해에 사는 막냇동생도 전화로 동의했으니 캐나다에 있는 큰오빠만 동의하면 지금 즉시 진찰과 치료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몽사몽 깊은 잠에서 깨어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이미 동생들의 동의를 얻었고 나 혼자만 딱히 동의할 수 없다는 명분이 즉시 떠오르지 않아 나도 동의하겠다는 말로 통화는 끝이 났습니다.
어머님은 불혹이시던 그해, 응달 골짜기 잔설이 아직 차가웠던 2월 어느 날 제대를 불과 한 달 남긴 둘째 아들을 청천 하늘에 날벼락처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헌납하고 아들의 삼우제를 치른 바로 다음 날 어머님 당신이 그토록 태산같이 믿고 의지하던 남편마저 백약이 무효라 속수무책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신 후 남은 우리 오 남매와 늙으신 시부모를 위해 실로 감당키 어려운 간난신고의 삶을 숙명으로 여기시고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님 당신은 때로는 철인이 되시어 늙은 시부모님께는 남들에게 사표가 될 만큼 효를 다 하심은 물론, 우리 오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보듬어 주셨고 때로는 회초리로 사람의 도리와 법도를 가르치셨고 오 남매의 우산이 되어 우리가 비에 젖지 않고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온기를 나누며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밀린 삯바느질 때문에 내리 며칠 밤을 하얗게 새우시고 어스름 먼동이 틀 무렵 서둘러 식구들의 아침밥을 짓기 위해 옥양목처럼 창백한 얼굴빛으로 총알처럼 부엌으로 내달으시던 어머님의 피곤함에 지친 모습은 내가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늘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르고 더욱 생경하게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금년 춘추 아흔일곱이신 어머님은 비록 치매로 십 년 이상을 고생해 오셨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멀리 낯선 캐나다에서 방문한 큰아들인 나를 알아보시고 ‘에미가 못나 너희 오 남매 어릴 적 배 골리어 참 미안했었다’고 몇 번을 되뇌시던 어머님은 2년 전부터는 지난 10여 년간 열과 성을 다하여 간병해 온 당신의 자식 오 남매 중 유일한 고명딸조차도 누구인지 알아보시지 못하실 정도로 치매 증상은 악화 하셨습니다. 그토록 총명해 보이던 어머님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허공만 헤매고 넓게만 느껴졌던 어깨는 한 줌으로 사그라지어 육신은 검불처럼 가벼워지셨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치매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집에 모시고 대소변을 받아내 가며 병구완을 혼자서 감당하던 내 여동생은 지난 일월 초 갈수록 어려워지는 어머님의 병구완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하여 우리 육 남매가 논의한 끝에 요양원으로 옮긴 후, 한 달쯤 지난 며칠 전 갑자기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어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신 것입니다.
여동생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내가 왜 어머님의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한다는 동생들의 의견에 찬성했을까? 자식된 도리로 어머니께 인공호흡기(생명선)를 장착하여 만에 하나 혹시라도 회생하신다면, 비록 의식이 없으실지라도 내가 계속 어머니라고 부르며 그 어머니라는 우산 아래 비바람을 피하며 우리 형제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 안부를 교감하고 형제애를 나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생할 수 있다는 마지막 기회인 생명선(인공호흡기)을 옆에 두고서도 일부러 사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자 전화기를 다시 집어 들어 이렇게 문자를 전송했습니다. ‘동생들 너희가 모두 어머님의 생명선 삽관 시술 진료와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너희들 의견에 솔직히 놀랐으면서도 나 혼자서만 찬성한다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너희들 의견에 따른 것이다. 멀리 타국에 있다는 핑계로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못 했지만, 어머님을 생각할 때 생명선 삽관 치료를 의식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옳은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부연한다면 어머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라는 끈으로 서로 연계되어 형제애를 나누며 어머님으로 말미암아 그 구심점이 될 수 있으나 만약 어머님이 안 계신다면 우리 형제들 사이도 점점 사라지는 실루엣처럼 멀어지고 잊힐지도 모른다. 누구든 또다시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머니의 생명선 삽관 시술 치료를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둔다.’
그 후 2주가 지난 어느 날 새벽 또다시 병원 응급실에 모셔진 어머니 곁에서 오열하며 애절하게 울부짖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하여 마치 새벽 고요를 깨우는 확성기 소리처럼 크게 들렸습니다. “오빠! 혈관을 찾을 수 없어서 간호사가 수도 없이 찔러대는 주삿바늘에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엄마를 이젠 정말 못 보겠어요!”.”하루 이틀도 아니고!” “ 이미 담당 의사조차도 적극 진료를 포기했으며 의식까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이젠 소생하실 수 있다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고 다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기 위해 엄마를 빨리 보내드렸으면 좋겠어요. 오빠!” 이렇게 이어지는 여동생의 울부짖음은 지난번 어머님의 생명 연장 삽관 진료와 치료를 동의한다고 했었던 나의 폐부를 찌르며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좁은 머릿속에는 사그라져 가는 희미한 불씨처럼 육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하시며 사경을 헤매는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Overlap)되어 사라질 줄을 몰랐고, 계속되는 고통 속에 신음하시는 엄마를 더는 볼 수 없다고 울먹이며 절규하던 여동생의 외침은 점점 크게 귓속에 그칠 줄 모르고 메아리 저 울렸습니다.
더 할 말을 잃고 어두운 새벽 밤하늘 힘없이 스러져가는 하현달을 바라보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내 손등에 떨어지는 회한의 눈물은 뜨거웠습니다.
*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에 대하여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2009년 5월 21일 대법원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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