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양/ 캐나다 한국문협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모교인 숙명여고 동창회로부터 그 해 여름에 별세하신 백란영 선생님의 추모 집을 양아들 이산 씨가 출간하려는데 제자들 중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 나에게까지 왔다. 졸업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고 그 동안 선생님의 소식을 친구 통해 들은 것 외에는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기에 약간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확한 발음을 가르치기 위하여 선교사를 초청해서 영어회화 반을 만드시고 특별활동으로 영어웅변을 지도하셔서 대회에도 나가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항상 있었기에 그것들을 중심으로 짤막한 회고의 글을 써 보냈다.
얼마 후에 책이 출간됐고 내게도 한 부 보내와서 목록부터 보기 시작했다. <바우고개 언덕을 홀로 넘자니> (이산 엮음) , 총315 쪽으로 전체 내용의 반은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과 편지 글들로 되어 있고 나머지의 절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추모 글이 실려 있고 그 나머지 부분은 가족과 지인들의 선생님에 관한 글들로 되어 있다. 인제대학교의 전신인 백병원의 설립자 백인제 박사의 맏따님이신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신 수재이시다. 졸업 후 학교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고 또 유학을 갈 형편은 못되어 취직을 하셨다. 원산에 서양 선교사가 경영하던 보혜사회관이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약3년간 근무하던 중에 남편 이서향을 만나 결혼 하셨다. 일본 니혼대에 유학, 국문학과와 예술학과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연출가로서 활약하던 남편과 신혼 기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엘리트 부부로서 사랑의 약속을 굳게 맺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그러나 몇 년 뒤에 이북에서는 연출가의 활약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지, 누구에게 속았던지 유명 극단을 끌고 월북했다. 그러다가6.25 전쟁이 나면서 서울에 내려와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했으나 선생님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에서는 못 산다고 거절하고 아들 하나 데리고5년 만에 헤어지셨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거기서 숙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선생님의 바우고개가 시작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문회우> 2001년11월호에 쓰신 글 중에,
“중학교2학년 때 친구하고 같이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지은 시<바우 고개>를 훗날 그 친구(이흥렬)가 작곡해줬다며 새색시인 내게 그걸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던지, 우리 둘이 함께 부르기도 몇 번이던가!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우리가 아무리 서럽고 억울해도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도 없었던 시절 어린 중학생이 쓴 노래가 온 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애창곡이 되어 지금도 불리고 있건만, 그 작사자는 세상에 밝혀지지도 못한 채 이제는 죽어서 다시 자기 노래를 불러볼 수도 없고 들어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를 읽으면서 내가 밴쿠버에 올 때 가지고 온 50년 동안 심심함을 달래주던<세계202 가곡집> (나운영 편, 1965년8월, 동아 출판사)을 펴 보니 작사자 이름은 없고 이흥렬 작곡이라고만 되어 있다. 정운현 기자에 의하면1934년에 간행된<이흥렬 작곡 집(제1집)> 에는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이서향”으로 나와 있다 한다. 나중에 이흥렬씨는 혹시라도 월북자의 가사라고 알려지면 금지곡이 될까 봐 작사자도 자기라고 했는지 모른다는 추측이다. 선생님은 월북자의 아내라고3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던 아픔과 피해의식 때문에 나서서 사실을 밝히지 못했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는데 이문회우에 쓰신 글을 읽고 여러분들이 원 작사자의 이름을 회복시키는 일에 도움을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붓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옛 말처럼 글로써 얻은 결과에 대해 놀랍고 감사함을 나타내셨다.
진달래꽃 피는 봄이 되니 바우고개를 홀로 넘으신 선생님이 새삼 생각난다. 마음에 품고 계시던 한을 풀고 생전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영어에 대한 관심과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학창 때부터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 분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책 속에 두 면을 할애해주신 편집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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