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백야의 나라로 간다2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8-30 14:38

백야와 오로라의 본고장, 화이트호스(Whitehorse)

 

비씨 주에서 고개를 들면 올려다 보일 것 같은 유콘 테리토리 수도, 화이트호스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9시 30분. 전에는 오로라를 보러 겨울에 왔는데, 오늘은 백야의 여름밤을 만난다. 예나 지금이나 화이트호스는 환하고 밝다. 사람보다 야생동물이 더 많다는 유콘답게 몇 안 되는 사람끼리 서로 눈 맞추며 발걸음 나란히 공항을 빠져 나간다. 초를 다투는 미래의 행성에서 문득 안드로메다 별에 뚝 떨어진 듯, 꿀벌이 여치의 나라에 온 듯 느긋해진다. 이런 맛에 여행을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자유로움을 맛보러….

 셔틀버스($15)를 타고 예약된 호스텔(Beez Kneez Backpackers Hostel,1-867-456-2333)에 가니 낸시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 암 후원을 위해 얼마전 머리를 삭발했었다는 낸시의 넉넉한 웃음 덕에 이틀 간의 체류가 행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계단과 난간에 투숙객들이 남긴 각 나라말 사인이 낙서처럼 새겨져 있다. 여자들은 이층, 남자들은 일층 도미토리를 배정받고 짐을 푼다.정원에 세 채의 작은 캐빈이 더 있다. 미국의 시에라 클럽 멤버들이 응접실에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화제는 물론 여행 중 가장 멋진 곳. 여든쯤 되어 보이는 상할아버지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킹스 캐년을 추천한다. 8월 하순 씨에라 클럽이 그곳을 간단다. 회원 가입만 하면 동행할 수 있다고. 우후, 좋았어! 버켓 리스트에 킹스 캐년 추가요.








 7월 21일, 시티 투어와 배낭 수선, 두 가지 할 일이 있다. 콰이엇 타임(7시~22시)인데도 불구하고 5시부터 깨어 아침식사 준비를 한 팀원 덕에 7시 갓 지나 아침식사를 마친다. 아침볕이 마당에 후루룩 펼쳐져 있다. 새색시 방에 펼쳐진 비단이불처럼 화사하고 달짝지근한 볕을 안고 집을 나선다. 도시는 아직 달콤한 일요일 늦잠에 빠져 있다. 

 4가를 따라가다 1가로 내려가면 콸콸 쏟아지는 유콘 강을 만난다. 태평양 연안에서 시작하여 한 갈래는 다슨 시티 쪽으로, 다른 한 줄기는 노스웨스트 테리토리까지 이어진다는 이 강은 골드러시 시대에 아주 유용한 수송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팀은 박물관 문 열기를 기다려 들어가고 난 배낭 수선집을 찾아간다. 낸시가 적어준 두 군데 수선집 중 한 곳은 휴가 중, 다른 곳은 배낭 전문이 아니란다. 실심해 내려오다 5년 전 화이트호스 오로라 투어 때 안내해 준 톰의 가게(Up North)에 들러 도움을 청한다.  간단하게 손을 봐준다. 다행이다. 하지만 과적재는 또 사고를 부를 수 있으니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유콘 강 4시간/8시간 짜리 패들링 투어(카누,카약)가 있다 하나 제한된 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접고 시내 구경을 나선다. 기억을 더듬어 최고령 4층 목조 건물을 찾아 헤매는 도중 역사 투어(Historical Walking Tour,$6) 해설자를 만난다. 화이트호스의 역사(‘White Horse’는 골드러시 시절 광업에 필요한 물품 운송의 요충지로, 당시 두 단어로 띄어쓰다가 한 단어로 붙여쓰게 됨.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는 걸 우려한 미국이 1942년 캐나다와 알라스카를 잇는 2800km의 알라스카 하이웨이를 놓는다. 군대가 주둔하고 물자 이동이 원활해지면서 인구가 급팽창을 하자 1957년 주 수도를 다슨 시티에서 화이트호스로 옮김.)를 듣고 시내 곳곳에 흩어진 명소들을 둘러본다. 지금은 극장이 되어있는 부동산업자의 대저택과 렌트 목적으로 지은 1,2층 캐빈 세 채, 시청 앞에 심어진 메이 데이 트리(May Day Tree, ‘유콘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리는 마르타 블랙의 집에 있던 체리나무를  옮겨 심음. 그녀는 1898년에 칠쿳 트레일을 탔으며 1935년 유콘 의회에 들어간 최초, 캐나다 의회에 들어간 두 번째 여인이었다.), 그러다 2가와 3가 사이 렘버트 가에서 찾아 헤매던 4층짜리 목조건물(Log Sky Scraper)을 만난다. 노인마냥 수많은 지지대에 의지하고 서있다. 현재 렌트 중($800/월), 실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데… 의아로이 생각하며 발을 옮긴다. 다음 거리에서 화재의 피해를 받지 않고 본건물 그대로 서있다는 통나무 교회 박물관(Log Church Museum), 그 건너에 옛 도시를 재현한 벽화(이 고장 아이들이 그린 그림), 그리고 메인 가 코너에 옛 자동차 정비소(현재 술집 겸 레스토랑) 등을 돌아보고 나니100여 년 묵은 흑백영화 한 편을 본 듯.

 한 시간 반 투어가 끝날 즈음 배가 고파진다. 간단히 샌드위치나 먹겠다고 들어간 곳이 공교롭게도 5년 전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들렀던 곳. 재미있는 메뉴판과 알프스 소녀 복장을 한 웨이트레스들이 옛 기억을 일깨워 준다. 세월이 흘러도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적어선가. 만나는 이마다 다정한 벗이 되고 야생동물마저도 인간과 친화력을 갖는 곳, 이것이 화이트호스의, 유콘 테리토리의 마력이다. 여름엔 지글거리는 태양 때문에 하늘이 잠 못 들고, 겨울에는 하늘의 환상적인 레이저 쇼 때문에 땅엣것이 잠 못 드는 화이트호스는 두 얼굴의 마법사인지도 모른다. 아니 하늘과 땅이 하나였던, 카오스 이전의 태초일지도… .

 화이트호스에 들어설 때 반기던 현판‘Greater Than Life, White horse’의 의미를 곱씹으며 그로서리를 사러 도시의 북쪽 비지니스 타운으로 간다.(시내에 작은 코너 수퍼도 없다.) 수육 용 돼지고기와 달걀, 과일값에 약간 놀라고, 시내를 굴러다니는 택시가 없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란다. 결국 무거운 것을 들고 남쪽 끝 호스텔까지 내려가는 동안 도시의 과거뿐만이 아니라 현재까지 완벽하게 파악된다. 23,000여 명 인구에 주요 산업은 광업(금, 은, 구리)이며, 알라스카와 유콘, 두 주의 번호판을  단 차량이 반반, 주요 교통수단은 배나 플롯 비행기, 유콘의 주인은 서양인이 아니라 원주민(골드러시 이전은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 예술 뿐), 그리고 맥도날드, 팀 호튼, 퀴즈노가 각기 하나씩, 극장과 인포메이션 센터 위치, 내일 아침에 탈 스케그웨이 행 버스 정류장까지 답사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간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도시의 남쪽 탐사에 나선다. 공원처럼 다듬어진 주 청사 건물의 남쪽 강가 ‘S.S. Klondike 사이트’에 큰 스팀엔진을 단 배 한 척이 졸고 있다. 낭창낭창한 몸매로 골드러시 시대를 풍미했을 그녀를 뒤로 하고 건너편 밀레니엄 트레일(5km)에 든다. 강을 따라 4.5km가량 가면 수력발전용 댐과 파워 하우스가 있다.뷰 포인트에 올라 내내 궁금했던 그레이 산능선과 파도가 만들어둔 동굴, 짓꿎은 산꾼이 그어둔 산허리춤 트레일을 곁눈질하는 사이 산그늘이 너울너울 발치에 와 눕는다. 등에 찐득하게 솟았던 땀이 후루룩 날아간다. 언덕 아래 큰 호수 같은 강물이 저녁볕을 물고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상스키를 매단 유람선과 낚싯배, 그리고 백사장에 물놀이하던 젊은이들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 풍경이 여유로워 부산떨던 우리들 발걸음을 붙잡는다. 덕분에 땀도 걷고 망중한의 여유도 누린다.

 예쁜 꽃단장을 한 다리를 건너 그늘 속에 조신해진 강을 따라 내려오다 세족도 하고 물맛도 본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 누리는 갓 세수한 듯 말갛다. 아직도 푸르기만 한 하늘을 이고 화이트호스의 마지막 밤을 접는다.

 
여름철 : 일출시각 5시 ,일몰시각 11시 14분, 7월 평균기온 18.5C. 백야의 땅(Land of Midnight Sun)
겨울철 : 최저 기록 기온 -52도C, 평균 적설량 145cm, 오로라의 본고장(Home of the  Northern Lights).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    화이트호스에서 다이아 트레일 헤드까지 7월 22일, 5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간식까지 챙긴 후 짐을 꾸린다. 떠나기 전 매직펜으로 계단 턱에 “유콘 강과 더불어 흐른다, 오늘도... ."라는 문구와 넷의 이니셜을 남기고 사진 한 컷. 먼저 다녀간 한국 투숙객들이 부엌 대들보에 남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모도 찰칵. 그리고 아듀스! 걸어서 십 분...
김해영 시인
  비씨 주에서 고개를 들면 올려다 보일 것 같은 유콘 테리토리 수도, 화이트호스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9시 30분. 전에는 오로라를 보러 겨울에 왔는데, 오늘은 백야의 여름밤을 만난다. 예나 지금이나 화이트호스는 환하고 밝다. 사람보다 야생동물이 더 많다는 유콘답게 몇 안 되는 사람끼리 서로 눈 맞추며 발걸음 나란히 공항을 빠져 나간다. 초를 다투는 미래의...
김해영 시인
 칠쿳 트레일(Chilkoot Trail),그 군둥내 나는 이름을 들은 지 7년만에 ‘노스 익스플로러(The North Explorer)’팀을 꾸려 백야의 나라로 향한다. 2005년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노상에서‘칠쿳’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 이름이 고리타분해서 마치 선사시대 유적지같았다. 파보면 보물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쏠렸으나 선뜻 나설 수 없었던 건 유콘과 미국 알라스카에 걸쳐있어 ‘너무나 먼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후 그리 오래 묵혔으니...
김해영 시인
현재 밴쿠버에는 몇 개의 한국어 학교가 주말(토요일)에 운영된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학교/직장에 다니다가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와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정오쯤 귀가를 한다. 학생과 부모 똑같이 힘들다. 왜 그럴까? http://careers-in-business.com/hr.htmhttp://careers-in-business.com/hr.htm우물우물 한국말 잘 하는 애들인데 느긋한 주말을 즐기지도 못하게 이리 성화를 부릴까? 한국어를 학교까지 가서 굳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 한국인인 이상...
김해영 시인
출퇴근길에 늘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삭막한 네모 건물 사이에 팔각정 같은 학교 건물, 훌쩍 넓은 운동장 가 정글짐에 풍선처럼 매달린 어린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초록 웃음… .성 프란시스 재이비어 학교(St. Francis Xavier, 밴쿠버 이스트 1번가에 자리한 Mandarin Immersion School)를 지나칠 때마다 부럽다 못해 심통이 났다. 왜 중국어 이머전 스쿨은 있는데 한국어 이머전 스쿨은 없지? 중국 아이들은 잘 닦인 신작로를 달리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만...
김해영 시인
남의 나라에서 사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게 말 못하는 서러움일 것이다. 들어도 못 듣고 알아듣고도 선뜻 맞춤한 대답을 못해 속상하기 짝이 없다. 남의 나라이지만 내 나라처럼 활개치고 사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내가 영어를 배워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이 나이에? 아무리 잘 해도 폼나게 영어로 말하다가 꼭 어느 대목에선 “What?” 소리 듣는데? 저나 나나 똑같이 발음하는 것 같은데 악센트 하나 틀려 못 알아들으면 분통 터진다.그러니 영어...
김해영 시인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산새소리에 일어나니 캠프 패드가 촉촉하다. 간밤에 비가 밀사처럼 다녀갔나 보다. 우리를 문명세계로 실어내갈 보트 닿는 선착장(Wharf)이 아침 안개에 싸여있다. 입 떡 벌린, 게다가 젖기까지 한 등산화를 다시 발에 꿰고 싶지 않아 샌들 신고 내려갈 만한지 하산길을 들여다본다.  시작부터 가파르다. 45도 경사진 기슭에 도끼질 몇 군데 해놓은...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스키나 크릭에서 수셔티 베이까지 8.6km를 남겨둔 마지막 날 아침. 늦잠 늘어지게 자고 11시 출발!을 선언했는데도 야성이 밴 팀원은 새벽 5 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떤다. 허니문 중인 신랑과 새색시 깨지 않게 살짝 몸을 일으켜 발개진 모닥불 앞에서 오늘의 일정을 점검한다. 5 시간 걸리는 구간이라 말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길이리라. 우리와 반대쪽을 걸어온 젊은...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