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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니라 수행, 고행의 길”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6-13 00:00

자전거로 세계일주, 6월 1일 밴쿠버 도착한 이호선씨

◇ 자전거 뒤에 사흘치 물과 음식을 싣고 다니며 서울에서 출발, 미국까지 횡단을 하고 있는 이호선씨가 밴쿠버에 도착한 후 자전거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꼼꼼하게 기록한 그의 이번 자전거 세계일주여행 일기는 머지 않아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집에서 팔순의 노모(老母) 앞에서 작별인사를 고하고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른 이호선씨. 일본과 미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인 그는 인천, 천진, 북경, 홍콩, 네팔, 인디아, 파키스탄, 이란, 프랑스, 모로코, 포르투갈 땅끝마을을 거쳐 90일 만인 6월 1일 밴쿠버에 도착했다. 여행도중 계엄령이 내린 파키스탄에서 낮에는 양민들의 약탈과 협박에 시달리고, 밤에는 탈레반의 납치 공포에 떨면서, 공포감을 견디기 위해 담배를 끊은 지 10년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우며 육로를 이용한 자전거 여행을 계속했다. 그는 여행기간 중 겪은 일들을 황당한 사건, 끔찍한 사건,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분류해 기록한 세 권의 일기장을 여행기로 펴낼 계획이다.  

■ 자전거로 전 국토 두 바퀴 종주

60년대 서울 인왕산 아래 작은 동네, 일본 탐험가들이 쓴 세계여행기를 읽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실린 미지의 세계에 심취해 세계일주를 꿈꾸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훗날 걸어서 대한민국 국토를 종주하고 서울에서 진도, 완도, 제주도를 자전거로 두 바퀴나 돌았다. 두 번째 자전거 여행에서 지목스님을 만나 자전거 세계여행을 꿈꾸게 된다. 바로 이호선씨다.

59년생, 우리 나이로 쉰 살이다. 초로기(初老期)에 접어 든 그는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해 8월 14일 오십의 나이에 자전거 하나에 의지한 채 여행길에 올라 인천, 천진, 북경, 홍콩, 네팔, 인디아, 파키스탄, 이란 등을 거쳐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땅끝 마을을 거쳐 6월1일 밴쿠버에 도착했다. 서울 마포 공덕동 집을 출발한지 90일만이다.

■ 90일 동안 30여 개국 여행

“여행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을 뜻합니다. 여행지에서 사는 사람들과 혹은 나와 같은 여행지를 찾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교차하면서 잠시 정을 나누고 세상에서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얼굴들을 통해 이별과 만남, 세상을 배워나가는 연습을 하는 거지요.”

90일 동안 그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온 곳은 일본, 홍콩, 터키,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모로코, 파키스탄, 이란 등 30여 개국.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파키스탄이다.

11월 11일 파키스탄에 도착한 그가 이란으로 가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11월 파키스탄은 계엄령이 선포되어 전시체제에 가까운 긴장감이 감돌았던 때. 우리나라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금지지역으로 지정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미 이란 입국비자를 소지하고 있던 그에게는 항공기를 이용, 파키스탄을 통과해서 입국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자전거 일주를 하고 있던 그에게 항공으로 통과한다는 건 의미가 없었다. “육로를 횡단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인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은 그는,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지 알 수 없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다.

“대사관 관계자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두 번 다시 이곳을 여행할 기회가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육로로 통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자전거로 들어갔습니다.”

■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두려움과 사투

“파키스탄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살벌한 전시체제였습니다. 길목마다 길에는 AK소총을 멘 군인들이 검문을 하고 있고, 탈레반이 출몰하는 위험지구에서는 무조건 차에 태워서 안전한 곳에서 내려주었지만, 사람을 만나면 수로(水路)에 숨었다가 나와 밤이 되면 경찰서에서 잠을 잤어요.”

낮 시간 곡괭이와 농기구를 들고 땅을 일구던 일반 양민이 밤이면 탈레반으로 변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위협하는 건 곳곳에 산재해 있었고, 하루 하루 피를 말리는 날의 연속이었다. 밤이면 비교적 안전한 경찰서에서 새우잠을 청했지만 내내 심한 불안과 공포에 충격을 받은 그는 불면에 시달리며 10년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어떻게든 이 나라를 빨리 빠져나가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서면, 또 다시 여행객들의 물건을 노리고 길을 막아서는 약탈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에게 세 차례나 자전거를 빼앗길 뻔 했던 그는 그때마다 지혜롭게 대처, 다행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빼앗으려는 사람들과 양쪽에서 잡고 대치하다가 차가 달리는 도로 중앙으로 끌고 들어가 자동차를 세웠어요. 노인이 내려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꾸짖는 것 같더니 흩어지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파키스탄을 통과한 그가 이란 국경에 도착했을 때 또 한 사람의 자전거 여행자가 그곳에 도착해서 ‘뻑뻑’ 소리 나게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연신 ‘후우 후우’연기를 내쉬면서 살아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에 담배를 잡은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어요.”

■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의 생생한 기록 출간예정

“비, 눈, 바람에 흡수되어 떠나는 여행은 우리의 짧은 인생을 풍요롭고 농밀하게 한다”는 믿음으로 철저하게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이호선씨. 스무 살이 되던 해 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홀로 도보국토종주 길에 나섰다가 간첩으로 오인한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 연행되기도 했던 그의 특별한 여행기는 멀지 않아 책으로 생생하게 엮어나올 듯하다.
그는 극도의 궁핍함과 가난에 찌들어 세상과 고립된 파키스탄에서의 기억을 그는 가장 ‘무시무시한 사건’,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통곡하는 가운데서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경찰관의 모습을 ‘끔찍한 사건’, 숲 속에서 볼일 보던 그에게 들개가 덤벼들던 일을 ‘황당한 사건’등으로 분류, 여행지의 감동과 느낌을 생생하게 기록해 두었다.

‘여행은 고행’이라는 합천 해인사 지묵 스님의 한마디가 그를 떠나게 만들었던 이번 여행에서 그는,  “가장 고독함을 느끼며 사람은 사람에 의해 실망하고 슬픔을 느끼지만 또한 사람에 의해 치유되고 희망을 얻는다”는 깨달음을 얻고, 결국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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