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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생생한 긴장감이 매력이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3-20 00:00

전 한화그룹 TV방송국 아나운서, 원음방송국 PD 이수연씨

전도유망한 방송국 PD(Program Director)가 이민을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평생 직장을 스스로 버리고 한국을 떠나 온 그들은 공통적으로‘쉬고 싶었다’는 다소 싱거운 이유를 댄다. 이수연씨도 그렇다. 모두가 가족들과 지내는 명절이나 연말이면 특집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특성상,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드는 것에 늘 미안함을 느끼다가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특히 엄마의 손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일과 양육 가운데서 갈등하던 그는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일도 찾아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밴쿠버로 왔다.

■ 시청률의 짐을 지고 사는 PD

◇ 똑같은 일을 오랜 기간 하면서도 똑같은 무게와 비중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이 편해지면 불성실해 지는 것 같아 청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는 그에게 6개월 단위로 개편되는 방송 일은 ‘체질’이었던 듯. 그러나 청취자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을 때‘나 혼자 하는 이야기’인 듯 보이지 않는 공허감으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는 이수연씨는 밴쿠버 생활이 마치 휴가를 얻은 듯 편안하다고.

방송국 PD라는 직업은 24시간 시청률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방송 시간에 따라 ‘들쑥날쑥’한 휴일은 자의든 타의든 주변의 가족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외롭게 만든다.
명절이나 연말 특집방송이 있을 때는 스텝들과 밤새워 원고작업과 아이디어를 짜내며, 더 신선하면서 감동적이고 더 흥미로운 화제거리만 있다면 휴일을 반납하고 달려 가야 하는 것이 P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그것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 투철한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방송이라는 일에 ‘미친 듯’ 매달리는 열정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전국 대학생 방송워크샵’을 기웃거리며 짬짬이 방송을 하던 때는 누군가에게 큰 해를 입힐 정도가 아니라면 이해를 받을 수 있었고, 또 그렇다 해도 ‘학생이니까’로 용납이 되던 일이 수습딱지를 붙이고 첫 출근하는 날부터 방송에서 실수는 곧 ‘방송사고’라는 큰 책임으로 되돌아오는 결과로 바뀌더군요. 누구나 이 수습기간이 힘들지만 생방송 PD와 아나운서인 경우 아무리 작은 방송국이라 해도 하루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일이 생기죠.”
신문방송학과 93학번, 웬만한 일에는 눈 깜짝 하지 않고 헤쳐나갈 것 같은 당찬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는 이수연씨. 방송입문은 한화그룹 사내 TV방송국 아나운서로 ‘수습 딱지’를 달았다. 시작은 그렇게 PD가 아닌 아나운서로 출발한 이 방송국은 한화그룹 관련 뉴스와 사원들의 소식 및 행사 등을 다큐멘터리 혹은 뉴스로 전하는 사내방송국이었다.

■ 1인 3역 해내며 경험 쌓아

“사내 방송이라는 영역을 쉽게 생각하고 겁도 없이 덤벼들어 직책은 아나운서지만 취재와 원고, 큐 시트까지 만들어서 뉴스를 전해야 하는 1인 3역을 감당하면서 힘들긴 해도, 덕분에 방송제작의 모든 분야를 두루 경험하고 배울 수 있어서 제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첫 직장이죠.”
작지만 하나의 사회이고 그 사회에 유일한 방송국이었던 그곳에서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하던 그는 한화그룹 내 스타였다.
“공중파의 앵커를 보고 헤어스타일이 어떻고, 무슨 옷을 입었는지 화제를 삼는 것처럼, 사내 방송은 또 그 안에서 공중파 아나운서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비교를 당하죠. 제가 전한 뉴스 내용은 금새 잊어버려도 외모나 움직임은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날마다 도마에 올라 와 그걸 극복하는 게 처음엔 힘들었어요. 나중에는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이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라 여겨지면서 조금씩 편해지더군요.”
시청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목선이 심플한 의상과 어깨를 닿지 않는 헤어스타일 등 아나운서들에게는 소위 ‘아나운서 스타일’이란 패션 흐름이란 게 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 힘들어 하던 그는, 사람들의 화제를 방송으로 집중 시킬 의도로 심플한 의상에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아야 하는 원칙에 입각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윗사람이 불러서 갔더니 ‘옷 같은 옷 좀 입어라’는 충고를 들었어요.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공중파 방송 아나운서처럼 명품을 입으라는 의미란 걸 나중에 알았죠.”

■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작지만 방송제작의 전 과정을 배우며 재미있게 일하던 첫 직장에서 원음 방송 PD로 자리를 옮긴 것은 98년. 원불교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98년 개국한 원음방송은 종교방송을 표방하고 설립되었지만 ‘생활 속의 종교’를 진리로 삼고 있는 교리처럼 대중들과 가까운 방송을 추구하는 곳.
원음방송에서 그가 맡은 첫 프로그램은 ‘이세인의 음악산책’. 이세인은 그의 세례명.
청취자의 신청곡을 받아 7080세대들의 음악을 매일 2시간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원고작업부터 연출, 진행, 음반 기기 오퍼레이팅까지 감당해야 했다. 새벽 5시 퇴근이 비일비재했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해냈다.
“방송 큐시트를 보면서 손은 장비와 CD를 올리면서 입으로는 멘트를 해야 하는 생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방송을 해 본 사람만이 알죠. 아무리 일 욕심이 많은 사람도 정말로 그 일이 재미있지 않은 사람은 체력적으로도 버틸 수 없어 하기 어려운 일이죠.”
만약 공중파 방송이었다면 작가 두 사람, 엔지니어 두 사람, PD와 조연출까지 5~6명이 투입되어야 할 프로그램을 혼자 해 내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건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요 중에서도 특히 7080 음악을 좋아한다.
“그 세대의 음악은 따뜻하면서 아날로그적인 인간애적 감성이 흐르죠. 어떤 음악보다 매력이 느껴지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요.”

■ 음악에 빠져 방송사고 낼 뻔

10년 동안 한 번도 방송사고를 내지 않았던 그도 청취자의 신청곡 ‘도시의 그림자’가 부른 ‘이 어둠의 이 슬픔이’라는 곡에 취해 다음 노래를 올리지 않아 방송사고를 낼 뻔 했다. 눈으로 CD를 찾으며 한 손으로 노래를 올리면서 세팅 될 때까지 큐 시트에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 하며 진땀을 흘린 일이다. 
똑같은 일을 오랜 기간 하면서도 똑같은 무게와 비중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이 편해지면 불성실해 지는 것 같아 청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는 그에게 6개월 단위로 개편되는 방송 일은 ‘체질’이었던 듯 하다. 그러나 방송을 하면서 청취자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나 혼자 하는 이야기’인 듯 보이지 않는 공허감으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 기억에 남는 게스트 가수 현숙과 길은정

방송 PD로 또 아나운서로 일한 10년 8개월 동안 그가 만났던 수많은 초대손님과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가수 현숙씨와 고인이 된 가수 길은정씨다.
포장이든 진심이든 가식이 없고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현숙씨는 안티가 없던 것이 인상적이었고, 원음방송의 ‘노래 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던 길은정씨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영정사진을 찍고 장지를 선택해 모르핀을 맞으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린 적 없이 소녀 같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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