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가족(immigrant family)의 미국 정착 과정을 그린 영화 ‘미나리’로 배우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win the best supporting actress) 가운데, 미국 최초의 한인촌에 관한 책이 나왔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장태한 교수가 재조명한 ‘파차파(Pachappa) 캠프’라는 한인촌은 ‘미나리’의 시대적 배경(historical backdrop)인 1980년대보다 약 80년 앞서 독립운동가(independence activist) 도산 안창호 선생에 의해 만들어졌다.

 

장 교수에 따르면, 도산(1878~1938)은 24세 때 제물포항을 떠나 1902년 10월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교육행정을 배우러 갔으나 생계 유지를 위해(in a bid to earn a living) 오렌지 농장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이후 그는 샌프란시스코 일대 농장 인부로 일하던 한인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건너온 한인들을 규합해 1904년 말 리버사이드라는 곳에 가족 중심 공동체 촌락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초기엔 ‘도산 공화국’으로 알려졌던(be initially known as Dosan’s Republic) 미국 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의 기원이 됐다. 당시 현지 한인들은 강(江) 주변이라는 뜻의 지명 리버사이드를 그대로 풀이해 ‘하변(河邊)’으로 부르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동쪽 80㎞ 지점의 리버사이드에는 전기(electricity)와 수돗물(running water) 공급이 되지 않았지만, 오렌지 수확 철(harvest season)이 되면 일자리가 많아 한인들이 모여들었다. 도산은 한인촌이 모습을 갖춰가자 공립협회라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establish the cooperative association).

 

이것이 그가 1907년 한국에서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anti-Japanese secret society) 신민회와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의 모태가 됐다.

 

‘파차파 캠프’의 한인 숫자는 한때 1000여 명에 달했다. 도산이 설립한 한인노동국(Korean Labor Bureau)를 중심으로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영어를 익히고, 일요일에는 주일예배를 가졌다(hold Sunday services). 결혼과 생일을 축하해주고 각종 모임을 통해 동포애를 나눴다(share fraternity).

 

도박과 폭음을 금지하는 자치 규약도 만들었다(set rules for self-governance prohibiting gambling and drinking binge).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fundraising activity)을 벌이고, 1911년엔 대한인국민회 북미 지방총회 대의회를 개최했다.

 

‘파차파 캠프’는 이렇게 미국 내 한인타운의 효시(first instance of Koreatown)가 됐을 뿐아니라 독립운동(independence movement)과 민주주의 정신(democratic idea)의 발원지가 됐다.

 

그동안 등한시됐던(be overlooked) 이런 역사와 묻혔던 과거(buried past)는 2001년 현지 동포들이 안창호 선생 기념 조각상을 건립하고(erect his memorial statue), 2017년 리버사이드 시 정부가 사적지(historic site)로 지정하면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파차파’라는 명칭은 한인촌이 생겨난 거리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인디언 단어로 추정되지만 그 뜻은 알려진 것이 없다.

 


https://news.ucr.edu/articles/2021/04/27/uncovering-buried-past-early-korean-american-history-riverside

 

https://en.wikipedia.org/wiki/Pachappa_Camp

 

https://www.nbcnews.com/news/asian-america/california-city-honors-first-korean-settlement-u-s-n738321